SBC 매일성경

2016. 9. 26 30

예수님은 먼저 보았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늘 주위를 돌아봅니다. 예수님의 눈은 결코 도움이 필요한 장면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등장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 둘 다 강도 만난 자를 보았으나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진실로 보셨습니다. 그는 추한 실재 가운데 있는 인간의 궁핍함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반드시 그를 움직여 마음에 동정심을 일으켰고 그는 동정 어린 섬김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동정은 말로만 그친 적은 결코 없었고, 행동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는 보셨으며, 느끼셨으며, 행동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본받는다면 이웃 사랑의 핵심적인 부분을 실천하게 되고 이 경우 논어를 비롯한 동양의 고전들이 그렇게도 많이 주장하는 인(仁) 사상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동정심에 비롯한 섬김은 요한 일서에서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저술한 요한 일서를 보면 사도는 예수님의 교훈을 잘 배워 온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직접 듣고 보아 온 사도 요한은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였습니다. 오늘은 그가 배운 놀라운 구절을 먼저 보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6 18).

 

어제 본 요한 일서 3:16-18은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자기 희생 때문이었다는 놀라운 주장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세상은 결코 사랑의 의미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반박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모두가 사랑의 의미를 알고 있기에 예수님의 가르침 같은 것은 필요없다. 그러나 요한은 이런한 비난 앞에서도 자기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사랑은 이상적인 사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좋고 고상한 것이지만, 모든 사랑은 어느 정도 다른 속셈으로 얼룩져 있으며 이기적인 것과 비이기적인 것이 뒤섞여 있습니다. 장구한 인류 역사 속에서 오직 한 행동만이 더없이 순수한 사랑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주신 사건입니다. 그는 아무 가치도 없는 우리 같은 죄인들을 위해 모든 것 즉, 그분 자신을 주셨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적인 행동입니다.그래서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지금 사도 요한은 골고다에서 비유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미 마가 다락방에서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만 그분의 섬김의 절정은 바로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바로 골고다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말한 우리의 목숨을 버리라는 부르심은 결코 영웅적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어떤 사람은 이런 부름을 받기도 합니다). 목숨을 내놓는 것은 당연히 평범한 섬김의 행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려 할 때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버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는 것도 없고 섬기는 것도 없는 곳에는 우리가 아무리 크게 나팔을 불어도 결코 사랑이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가르치시기를 주님과 같이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한데도 이것 보다도 못한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핌합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그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강력한 논조로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 재물을 가졌으며 그리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필요를 보는 한편, 또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든 자를 보는 한편, 약과 의료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지를 보는 한편,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굶주림을 보는 한편, 식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을 보는 한편,전문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핵심은 그가 자신이 가진 것과 본 것을 연결할 것인지, 아니면 둘을 명확히 구분할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역시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만 합니다. 그는 병고치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으며 병든 자를 보시자 고치셨습니다. 당신을 따라 온 군중들이 주린 것을 알자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먹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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