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31:8-10)
다윗이 블레셋 다섯 방백 중 하나인 가드로 망명하자 더 이상 왕 사울이 쫒기를 그쳤으나 이제는 블레셋과의 마지막이자 아주 중요한 전투를 맞이하게 되었다. 블레셋은 모여서 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아벡으로 군사력을 집결하여 수넴(길보아산 북서쪽 15킬로미터)에 진쳤고 사울은 길보아산(갈리리바다 남서쪽45킬로에 위치)에 진 쳤다(삼상28:4). 결국 이들은 이스르엘 평원에서 접전을 하여 사울은 패배하고 길보아산으로 퇴각하다가 이 산에서 아들 셋이 죽고 본인은 자살하고 만다(삼상31:1-6). 사울이 패배한 이스르엘 계곡은 드보라와 바락의 시대에는 가나안인들이 철병거를 가지고 진을 쳤다가 훈련받지도 못하였고 무장도 불충분한 이스라엘 군대에게 패배한 곳이었다(삿4). 또한, 기드온은 길보아산 기슭에 있는 하롯샘에, 상대방 미디안은 북편의 모레산 앞 이스르엘 계곡(길보아산에서 약10킬로) 에 진을 쳤지만 기드온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불과 300명의 군사로 수 많은 미디안 군대를 이겼던 곳이다. 이스르엘 계곡은 경제적인 면에서는 물론 국가 안보의 면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비옥하고 충분한 습기로 농작물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평야였고, 넓은 평원내에 높낮이가 심하지를 않아 여행하기가 상대적으로 편리하였기에 고대 상인들이 동서 남북에서 와 집결하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국제간선도로가 이지역을 통과하였고 이 계곡을 지배하는 자가 이 주변의 국가들의 경제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농업과 무역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국방의 문제였다. 만약 이 지역을 상실한다면 사울 왕국의 북쪽 삼분의 일은 차단될 것이고 블레셋은 계속하여 이 계곡을 타고 남진하여 사울 왕의 다른 지역도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이 전투에서 사울왕은 엔돌의 무당에게 묻는 등 하나님에 대하여 철저한 불신앙과 반역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결국 그는 죽고 그 시체는 길보아 산에서 동쪽으로 약 10킬로 떨어진 벧산이라는 이스라엘 경내 블레셋 점령지 성벽에 못박혔던 것이다(삼상31:8-10). 이런 것은 이스라엘과 그들의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동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이끌 능력있는 왕을 원했지만, 여호와께서는 당신에게 순종하는 마음을 가진 지도자를 원하였다. 사울은 이 두 요구에 적합하지 못하였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88-89 참조).
Pieter Bruegel the Elder, The Suicide of Saul, 1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