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를 위해 주신 달란트는 무엇일까요?

“그는 각각 그 능력을 따라, 하나에게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라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측면에서 볼 때 다섯탈란트를 받은 사람으로 정치가로서는 징기스칸, 시이저, 나폴레옹등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고, 기업가로서는 록펠로나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학자로서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등등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연전에 SKT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그 사장이 신문에 인터뷰하기를 “나는 두 탈란트를 받은 사람이다. 다섯 탈란트라면 빌게이츠와 같이 세상을 바꾸고 주도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지만 나는 이 사람들에 의하여 창출된 것을 따라가는 정도의 사람이다”라고 한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의 경우 다섯탈란트라면 어느 정도의 일을 하여야 그렇다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신학적으로는 마틴 루터나, 칼빈 정도는 되어야 하고, 목회적으로는 존 웨슬레나, 조지 화이트필드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조지 화이트필드는 한 번 즉석 설교에 수천명이나 구원을 받았다고 하니 과연 그러하며, 존 웨슬레는 감리교를 시작하신 분으로 그럴만 하다고 생각되고 루터나 칼빈은 그 영향력이 말할 것도 없이 다섯탈란트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영향력을 평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달란트를 재면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기준은 외적인 것이나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내적인 것이기 때문이며 그 목표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영광을 많이 드러냈는가?” 의 측면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평생 소아마비를 앓게 된 휴유증으로 한 쪽 다리를 절면서 살고, 맡겨진 일이라고는 가정을 돌보고 자기가 운영하는 소규모 사업체를 돌보는 정도라고 하여도 이 분에게 주신 탈란트는 다섯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이 분은 다섯 탈란트를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적으로 주님의 뜻을 중심으로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우리는 보이는 세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의 전형적인 예가 바로 욥입니다. 욥이야 말로 다섯탈란트를 받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욥은 매우 정직하게 살았으나 보이지 않는 세계 즉, 하나님과 사탄과의 내기로 인하여 전재산이 없어졌고,, 10명의 아들 딸들은 전부 하루 아침에 집이 무너져 죽었고, 갑자기 전신에 악창이 났습니다. 아내 역시 욥을 버렸습니다. 이에 집에서 쫒겨났고 재에 앉아 몸을 긁을 수 밖에 없는 철저히 패망한 사람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수하였습니다. 이런 자세가 주님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사탄은 패배하였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과 대화를 나누시고  곤경을 돌이키게 하셨고 나중에는 갑절이나 복을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그를 가리켜 말하기를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고 할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흔한 부자 중의 하나로 생각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또한 순교자의 삶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박해의 시대에 태어나서 숨죽이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핍박자들에게 잡혔습니다. 모진 고문을 당하였으나 그리스도의 길을 충성스럽게 견디어 갔던 것입니다. 전도한 것도 별로 없습니다. 돌아다니면서 교회를 세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알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천사들의 세계에서는 주님께서 얼마나 영광을 받으셨는지 모릅니다. 제가 CBS의 새롭게 하소서의 간증 프로그램에서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자매님이 자신이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게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여러 병원에 가도 안되고 절망하던 중에 전도관 박태선 장로가 기적을 행한다고 하여 거기에 참석하고 여러 사람이 병을 고친 것을 목격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영 비 성경적이라 이런 사람이라면 아무리 내 다리를 낫게 하여준다고 해도 싫다라고 생각하고는 거기서 나와 버렸다고 합니다. 사회자는 “허 대단한 영분별력이십니다”라고 감탄을 한 것이 생각납니다.그 후 이 자매님은 평생 다리를 절면서 살았습니다. 다리 대신 그리스도를 선택한 분이죠! 그리스도의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달란트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전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철저한 실패입니다. 만약 주님께서 달란트를 맡은 종들 중 하나였다면 주인은 예수님을 부르셔서 야단을 치셨을 것입니다. “아니 내가 네게 기적을 행할 달란트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묻어두고 너 자신이 죽도록 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오래 살았어야지?”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조롱과 천대를 받으실 때도 무한히 참았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류의 대속과 새로운 생명인 부활을 소망하시면서 십자가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타락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난 우리 아담의 후손들은 반드시 십자가라는 길을 거쳐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자기 부정의 길을 가지 않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이런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하나님의 백성을 낳고 기르는일, 즉, 제자도가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먼저 제자가 되고 다음으로 제자를 만드는 것 이것이 주님의 일이며 그 나머지는(부자, 돈, 지위, 지식등) 이를 위한 재료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무슨 재능을 가지고 있던 어떤 일을 성취하였던간에 제자도를 이루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은 시작도 안된 것이며 따라서 달란트를 남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