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한 부자 청년이 주님 앞에 와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한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은 십계명 중 두 번째 돌판에 적힌 계명들과 이 계명들을 요약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이행하라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영생이란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계십니까? 이에 따라 여러가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대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만약 영생을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삶으로 정의를 내린다면 우리는 생명 나무 과실이나 이른바 진시황이 찾고자 한 불로초만 있으면 됩니다. 굳이 하나님이 필요없고 주님의 죽으심도 필요없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생명나무과실이나 불로초조차 불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부 부활하여 영원히 죽지 아니할 몸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받아 자신들이 살았을 때 저지른 죄 때문에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는다는 것만 차이가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된다면 아무도 생명 나무 과실이나 불로초를 찾아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로, 모두 다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면 부자청년이 묻고 주님이 대답한 것처럼 선한 일을 하여 심판받을 여지를 만들지 않으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율법 하에 있습니다. 율법 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율법에 규정된 온갖일을 항상 하지 않으면 율법의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율법의 저주를 받은 전형적인 모습이 십자가 위에서 죽어 매달리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이런 율법의 저주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십계명을 포함한 도덕적 율법의 잣대를 통과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율법의 행위로는 그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으니 율법을 통해서는 죄에 대한 지식이 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성경이 영생을 줄 수 있다고 믿고 보물을 찾듯 혹은 영생으로 가는 마법적인 문구나 논리나 예언의 성취를 발견하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고 거기서 영생의 방법을 얻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헛되이 성경을 읽은 것입니다. 전형적인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젖혀놓고 성경이 규정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동일하게 정죄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의 법 아래 살지 않으면 율법을 범한 죄에 대하여 용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넷째,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그의 은혜 아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영생입니다.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받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내 양은 내 말을 듣고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나니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7-28)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에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신 자마다 영생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그들을 다시 살리사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왜냐하면,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먼저 말씀하시고 이를 다 지켰다는 청년에게 소유한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영생의 본질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인 삼는 대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고 계명을 굳게 지키며, 지금도 그렇지만 부활하여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 이것이야말로 영생의 삶의 중핵입니다.
Heinrich Hofmann – Christ and the Young Rich Ruler (1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