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이란 하나님의 뜻이 새겨져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그 뜻을 이루고자 성경을 통하여 구체적인 삶 가운데서 분별할 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최영의 (배달)씨를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분은 맨 손으로 소의 뿔을 짜르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손 날을 세워 따닥하고 치면 소의 뿔 두개가 전부 잘라진다고 합니다. 대단한 기술과 힘입니다. 곽선희 목사님의 친구 중에 당수를 배운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학창 시절 어느 날 학교를 갔다 오다가 소에게 일격을 가했는데 그만 소가 죽어 버렸습니다. 그 소임자가 친구 아버님에게 가서 소 값을 물어내라고 야단 법석을 떨었습니다. 친구 아버님은 자기 아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너 왜 가만히 있는 소를 죽였냐?” 하고 물으니 “소가 나를 째려 보아서 기분이 나빠 죽였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소 값을 물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를 안 친구는 아버지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여기까지 저를 사랑하셨으니 이제는 제가 올바르게 살겠습니다” 후에 그 친구는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행동을 고치는데는 은혜를 주는 것이 최고입니다. 감사함이 나오면 저절로 행동은 고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알코올중독과 같은 것은 다른 조치를 쥐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백년간 애굽 땅에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 노예살이가 얼마나 심했으면 쇠풀무라고 이야기 하였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력이 전혀 없이 오직 모세를 보내사 이들을 당신의 기적으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물과 만나를 내려주시면서 생존하게 하신 뒤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고 그 후에 가나안 땅을 그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구속하시고 또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연한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이 새겨져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 뜻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냥 노예살이를 벗어나게 하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 정도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너희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길에 행할 때에든지 자리에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앉았을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들은 하나님께 반역하여 결국 국가가 멸망하여 바벨론의 포수로 끌려갔고 돌아와서 다시 번성하였으나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죄를 저질러 온 세계에 흩어지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기억과 하나님의 말씀의 암기만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그 만큼 악하고 우리 주변에는 마귀가 진을 치고 밤낮 우리를 유혹할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하고, 세상은 살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 당신 사이에 놓여있는 율법의 정죄 즉,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외치는 율법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을 포함한 도덕적 질서는 당신이 천지를 창조하신 바로 그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에서 한 획이 떨어지느니 천지가 없어지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보내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육신 속에 있는 죄를 정죄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의 삯을 다 청산하셔서 율법의 정당한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의롭다하심을 모든 자에게 보여주셨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역시 의롭다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우리의 죄 값을 지고 죽으셨다는 소식을 참으로 깨달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당신의 율법을 두시고, 우리의 생각 속에 당신의 법들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빌트인 (built in) 되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이런 사람들 즉, 중생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중생한 사람들은 성경 구절을 암기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에 이미 하나님의 뜻이 새겨져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그 뜻을 이루고자 성경을 통하여 구체적인 삶 가운데서 분별할 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된 특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들어오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사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깨닫게 하시는 것으로 그 가르침에 굳게 서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삽화: 신예현, putting the good work into practice (2016) lifeisy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