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1-15
제 7 계명. 간음하지 말라
2016.1.11
제 7계명은 각 사회의 결혼제도와 관련하여 이해될 수 밖에 없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일컫는 야곱의 경우 4명의 아내가 있었으며 제 7계명이 시내산에서 선포되었을 때의 이스라엘의 상황 역시 일부 다처제였습니다. 이후 제정된 모세 율법만 보더라도 명백히 동거 목적으로 계집 종들을 살 수 있었습니다(출21:7-11). 이런 상황에서 7계명은 남편이 있는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질 때만 적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간음의 문제를 다룬 산상수훈에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 28)고 하심으로 행위에서 마음의 문제로 이전을 하셨고, 이혼에 관해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단수)와 여자(단수)로 지으시고”(마19: 4) 라고 말씀하심으로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일부일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암시하셨으며, 더 나아가 사도 바울이 집사와 장로의 임명 조건으로 “한 아내의 남편” (딤후3: 2, 12)을 두 번이나 강조하여 기록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명백히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일부일처에 근거하여 제 7계명을 이해하여야만 합니다.
2016.1.12
그리스도인은 성(性)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로 태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 (창1:27) 하셨다는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의 성(남성과 여성)이 하나님에 의해 고안된 사실과 이는 자녀 출산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두 배우자가 서로 만족을 느끼도록 결혼을 제정하신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입니다. 결혼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는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창2:24). 예수님도 앞에 언급하신 두 구절을 친히 소개하시면서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막10:6-9)고 결론을 내려주셨습니다. 바울 역시 남편과 아내의 서로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와의 관계를 반영한다는 아름다운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엡 5:21-33). 제7계명은 이런 진리를 배경으로 의의를 갖습니다.
2016.1.13
하나님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제정하신 것은 결혼이라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상황을 통해서만 우리가 성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밖의 다른 모든 상황에서의 성적인 쾌락은 금하시는 것입니다. 제 7계명에서는 오직 간음만을 구체적으로 정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기혼자가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맺을 경우(대개는 속임으로), 배우자와 원래 약속했던 정절을 부정하고 동시에 자녀들의 성장에도 심한 타격을 줌으로써 결혼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성적 부도덕 행위들도 결혼의 뿌리를 흔들어 놓는다는 점에서 제7계명 속에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016.1.14
제7계명 속에 함축된 여타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혼외정사와 혼전동거를 먼저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성관계들은 서로에 대한 헌신이 결여된 사랑을 경험하려는 시도일 뿐입니다. 한쪽 배우자는 오랜 기간 관계를 지속하기를 바라는 열망이 간절한 반면에 다른 쪽 배우자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이런 관계는 상대방에게 잔인한 처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동성 간의 결혼이 이성 간의 결혼 관계에 대한 합법적인 대안이라는 ‘동성애’ 단체의 주장을 그리스도인은 물론 모든 사람이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승인하신 ‘한 몸’의 체험은 오로지 이성 간의 일부일처 관계 속에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2016.1.15
7계명과 관련하여 일생 독신으로 사시다가 90살에 소천하신 존 스타트 목사님의 말씀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적인 충동이 너무 강력해 제어할 수 없다는 주장을 거부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동의하는 것은 인간 존재를 동물 차원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유혹을 받아도, 또 그 유혹이 아무리 강렬하다 해도, 하나님은 언제나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주장하는 간증입니다 (고전10:13). 따라서 우리는 성적인 자기제어가 가능하며, “음행을 피해야” 하고, 또한 그분이 “값으로 산 것”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지,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만 합니다(고전 6: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