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의 길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톰이라는 분이 어느날 밤 결혼한 아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려고 진통 중에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아내와 이를 상의하니 당장 가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땅이 커서 가까운 도시가 보통 3-4시간 걸립니다. 비행기도 이미 끊어졌고 차를 운전하고 이 밤에 가려니 쉬지 않고 달려도 9시간을 여러 산등성이를 넘어 가야하는 문제에 봉착하였습니다. 가려고 준비하는데도 여러시간 걸리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중에 아내는 불과 20분만에 출발 준비를 마쳤고 당신이 운전하는 것이 힘이들면 자신이 운전하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중간에 10분만 쉬고 내내 달려 9시간 걸려 도착을 하니 비로 이미 출산을 하였어도 그렇게 늦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톰의 아내를 채근하였을까요? 사명감입니다. 할머니로서의 사명감이 어머니로서의 사명감이 그녀를 몰아세운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길을 걷는데 무슨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최고의 사명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이에 대하여 상반된 예가 비스가 산과 관련된 두 사람의 이야기로써 민수기와 신명기에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산과 얽힌 일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모리아산과 아브라함이요, 호렙산과 모세, 그리고 갈멜산과 엘리야인 것입니다. 비스가 산은 사해 북쪽끝에서 동쪽으로 20킬로미터 지점에 서있는 느보산의 남서쪽 바로 밑에 위치되어 모압평지를 바라다보는 좋은 장소였습니다(신34:1). 모압평지는 사해의 북동쪽으로 요단강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 편에 위치한 땅이었으며(민22:1)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진공하기 직전에 여기서 캠프를 쳤던 것입니다. 여기 비슷한 시기에 비스가산에 오른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 하나는 발람이요 다른 이는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산에 오른 이유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발람은 모압왕 발락의 초청으로 모압을 방문하였습니다. 발람은 유브라테스 강 북쪽 갈그미스 밑에 위치한 브돌이 고향이었습니다 (비스가산에서 북동쪽으로 약 650킬로 떨어짐). 모압 왕 발락이 하나님의 뜻과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을 정도였기에 그는 돈을 요구할 수 있었고 그 돈 때문에 발락의 요구대로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가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중의 한 곳이 바로 비스가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을 축복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비스가산은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준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 후 오래지 않아 모세가 비스가산에 올랐습니다(신34:1). 모세는 신광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땅에서 죽어야만 하였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산 위에서 가나안 온 땅을 볼 수 있었고 결국 여기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던 그의 일생을 마감하였던 것입니다(신34:1-7). 모세가 바라본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약속의 땅으로 온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하신 바로 그 땅인 것입니다. (A Visual Guide to Bible Events, 50-51 참조).
여러분 누구의 길을 따르겠습니까? 발람의 길입니까 아니면 모세의 길입니까? 모세의 길을 따라가야합니다. 모세는 장성하였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좁은 길을 걷는 비법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상주시는 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비법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신이 자신을 높이고 성공시키려는 것과 정반대의 마음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께 칭찬과 상을 받으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 역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