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이덕주
디도서 3:5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1906년 10월 담임 목사 프레스턴(남장로교)은 남감리회 선교사 저다인을 목포로 초빙, 한 주간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300여 명이 모인 목포 부흥회에 대한 프레스턴의 증언입니다. “그(저다인)를 통해 성령께서 의로움, 절제, 심판, 죄의 악함, 죄를 씻음과 지옥 형벌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마치 말씀이 수술용 칼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헤쳐 깊은 곳에 감추었던 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영혼 깊은 곳에 들어 있던 암덩어리 같은 죄악이 드러났습니다. 수십 명이 일어나 자기 영혼을 무겁게 내려 눌렸던 죄를 자백하였고 건장한 사내들이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구주의 자비로운 사랑은 그들을 감쌌고 중생과 회개와 믿음과 헌신과 봉사의 능력과 그리스도인 됨의 기쁨이 치료하는 광선처럼 그들 속에 임했습니다. 예배당 안은 거듭남과 새로운 광명을 얻은 기쁨으로 얼굴이 환해진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으로 가득 찼습니다.”(프레스톤, ‘놀라운 집회’, The Korea Mission Field, 1906. 10월, 228쪽).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보다 3개월 앞서 목포 교인들은 ‘회개→중생→성결’에 이르는 기독교 본질 신앙을 체험하였고, 영적 각성을 통해 윤리적 갱신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목포 사회가 갖고 있던 기독교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씻고, 중산층과 지식인들이 교회에 나오게 되는 계기였습니다.그러자 남장로교 선교부는 목포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해 두지만 너희 생활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의롭지 못하면 너희가 절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5:20,현대인의성경)
전도서2:13절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솔로몬은 12절에서 자신의 지혜와 업적을 회상하며, 후대의 왕은 결코 도달할 수 없음을 기술하고, 본절은 그 지혜의 탁월함을 빛과 어둠의 비유로 강조합니다. 이는 인간의 이성을 통한 세속적 지혜이며, 죽음 앞에서는 양자가 동일합니다. 솔로몬 역시 세속 지혜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히 2장을 마무리 합니다. 본문은, “어리석음이 미치지 못하는 지혜의 탁월함이 분명히 있다”는 취지입니다. 해 아래에서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범사에 많습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속담과 같이, 지혜는 머리 속에 있는 ‘눈’입니다(14). 이 세상에 놓여 있는 수 많은 위험을 보고 피하며, 대응하고, 치료법을 내놓습니다. 지혜란 눈이 없다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은 불가능합니다. ‘지혜’는 때와 시기를 분별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바른 처신을 할 줄 아는 능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좋은 예로서, 그의 언행록이 논어입니다. 공자는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가르칩니다. 그의 교훈은 ‘인(仁)’ 즉,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라(克己復禮)’ 사상이 핵심이나, 죄와 사망을 이길 능력은 없습니다. 반면,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하여, ‘십자가와 부활’에서 가르침의 정점을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비할 바 없는 윤리적 지혜(십자가)와 주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능력(부활)을 경험하므로, ‘논어’ 보다 탁월합니다. 생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자 기톨릭에 귀의하고 세상을 떠난 이유입니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시편119:99).
전도서2:14절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13절은 지혜의 탁월을 밝히고, 본절은 탁월에 대한 강조와 한계를 설정합니다. 전단에서, 지혜자는 미련한 사람과 달리 눈이 세 개나 있습니다. 두 개는 얼굴에 달려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나머지 하나는 머리 속에 있어 사물과 사건의 의미를 깨닫게 해줍니다. 미련한 자는 세 번째 눈, 즉 머리 속에 눈이 없는 ‘지혜의 맹인’으로, 어둠 속에서 헤매입니다. 후단은, 현격한 차이를 갖는 지혜자나 미련한 자나 모두 죽을 운명임을 한탄합니다. 지금 솔로몬은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은 지혜를 언급하나, 성경적 지혜는 하나님을 전제하고, 세 가지 유익을 줍니다: (1) 도덕적 차원 :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나게 하나, 미련한 자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는데”(잠2:13), 어둠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상태입니다. (2) 현실의 차원: 지혜는 인생의 길을 볼 수 있게 하는 빛과 같으나, 미련한 자는 어두운 방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살아갑니다. 그는 ‘성공적인 삶의 방법’(=지혜)을 모릅니다. (3) 영적 차원: 지혜는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즐겨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여 축복을 받게 하나, 미련한 자는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성경적 의미의 지혜자 판정 기준입니다: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②이웃과 화목한가? ③자신의 일에 능숙한가?(잠22:29). 신약에 이르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계14:12)가 진정한 지혜자인데, 그는 죄사함과 영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암몬 신 몰렉
예레미야32:35절
“힌놈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세워 몰렉 신에게 그들의 자녀를 제물로 바쳤다. 그들이 이런 끔찍한 일을 행하여 유다를 죄 가운데 빠지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며 내가 생각한 일도 아니다.”(현대인의성경)
암몬의 신은 밀곰(왕상11:5) 혹은 몰록(왕상11:7), 때로는 몰렉이고도 불렸는데(레18:21), 여기서는 몰렉이라고 호칭하겠습니다. 몰렉의 어원은 임금이란 의미의 ‘멜렉’과 같은 어원입니다. 몰렉은 바알과 유사한 신으로 암몬뿐 아니라, 베니게, 베니게의 식민지 북아프리카까지 영향력을 뻗쳤습니다. 성경은 몰렉 숭배를 넘어, 그 종교적 관습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레위기에 따르면 몰렉의 제사에는 아이들이 희생제물로 바쳐졌습니다(레18:21). 성경은 그런 인신공양의 대가는 죽음임을 선언합니다(레20:2-5). 이렇게 극명한 죄악임에도, 솔로몬은 몰렉을 위한 신전을 예루살렘 성전 바로 옆에 서 있는 감람산에 지어 암몬 여인과 함께 경배했고, 그 몰렉 신전은 300년을 존속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동쪽과 남쪽에 골짜기가 있어 마치 언덕의 형태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그중 동남쪽의 골짜기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는 지명이 붙었고, 골짜기 가운데 몰렉에게 제사지내는 곳을 ‘도벳’으로 불렀습니다. ‘도벳’은 ‘북’의 뜻을 가진 ‘토프’의 파생어로서, 아이들이 희생제사로 바칠 때 나오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북을 쳤던 것 같습니다. ‘도벳’은 유다 임금 요시야에 의해 파괴되었고, 어떤 사람도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왕하23:10). 정당한 국가권력은 악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게 하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2).
여호수아14:12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개’란 의미)은 민수기13:6절에 처음 등장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보낸 12명의 정탐꾼 중 유대 지파의 대표로서(40세), 40일 동안 적지를 탐지한 용감한 스파이였습니다. 갈렙의 혈통에 관해서는 쟁론이 있습니다. (1)에돔 족장 그나스(창36:11) 후손이라는 설. (2)가나안의 그니스 족속(창15:19)설, (3) 유대지파에 속한 사람의 이름이 그니스였다는 설 등이 있지만, 유대지파의 대표로 선출된 것으로 보아 정통 유대인으로 판단됩니다. 아마, 그니스 족속의 여자가 조상 중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실상 야곱의 12아들의 아내는 요셉만 제외하고 모두 가나안 여인입니다. 갈렙 앞에는 늘 ‘여분네의 아들’이란 수식어가 붙는데, 동명이인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갈렙의 명성은 혈통(가문)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처럼, 가나안 정복 시 보여준 충성과 용기 때문입니다. 다만, 갈렙의 영웅적 행동의 근거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야훼께서는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려고 이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킨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갈렙은 주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갈렙의 순종은 믿음의 정체성에서 나왔고,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에 따른 경험(이적)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고 옳은 일을 하였으며 약속된 것을 받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습니다.”(히11:33,현대인의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