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사랑을 실천한 목포·순천 이야기」- 이덕주
사도행전 4: 31절
“그들이 기도를 마치니,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고,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하게 되었다.”(새번역)
1903년 광주가 새로운 도청 소재지가 되자 남장로회 선교부는 목포에 있던 벨, 오웬, 변창인과 김윤수를 광주로 보냅니다(1904. 12). 노련한 복음전도자들이 떠나고, 내한한 지 두 달밖에 안된 프레스턴이 목포 선교를 맡게 되자 고민이 컸습니다. 프레스턴의 1905년 선교 보고입니다. “…벨과 오웬 가족이 광주로 떠난 후 목포와 남쪽 지방 사업은 제 몫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다음 주일 저는 처음으로 한국말로 설교했습니다….저로서는 최선을 다해 설교하였으나, 교인들은 능숙한 선교사의 설교를 듣다가 제 설교를 들으며 ‘이젠 글렀다’는 눈치였습니다. 그때부터 교인들은 마음의 불안을 씻고자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목사를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기 시작했고 자발적으로 모여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영적으로 각성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놀라운 축복이 임하였고, 지금까지 그런 현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교인이 지난 해 보다 배가 늘어(현재 2, 3백 명) 예배당을 확장해야 할 형편입니다”(1905. 9월, 프레스턴). 위기가 기회가 되었으며, 그런 열기는 계속되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보다 3개월 앞서 영적 각성을 통한 윤리적 갱신을 이루면서 호남지역 최초로 교회 자립을 달성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주에 살펴보겠습니다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한국 선교는 ‘교회-병원-학교’ 라는 삼각 선교와 네비우스 박사(1890년)의 자치, 자전(自傳), 자립을 중심한 토착화 전략의 열매라 하겠습니다.“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언24:6)
전도서2:11절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솔로몬은 전술한 4-10절에서, 사업적 성공과 번창, 많은 쾌락과 즐거움을 누렸다고 진술하나, 본절에서 그런 삶을 돌아보면서 곰씹고 성찰합니다. 성찰의 결과는 가장 흔한 세 가지 문구 – ‘무의미함, 유익이 없음, 해 아래’-로 표현되며, 매우 부정적입니다. 솔로몬은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발견했지만, 그의 탐구 목적인 ‘의미’와 ‘유익’은 얻지 못하였습니다. 즉 그는 열심히 일하여 얻은 성과가 영원한 결과를 낳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실, 솔로몬이 온갖 지혜를 쏟아 만든 성전, 낙성식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하늘의 인정을 받은 그 성전조차 지금 누가 기억합니까? 이와 같은 성찰은 솔로몬을 지혜자로 만들고, 누가복음 12장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와 구별시키는 중요한 차이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주님은 자신에게 형과 유업을 나누게 해 달라는 사람의 요청을 거절하신 뒤, 탐심의 헛됨을 한 부자의 비유로 알려줍니다. 그 부자는 풍년이 들어 곡식 등으로 재산이 더욱 불어나자 부족한 창고를 탄식합니다. 그는 창고를 넓히려는 생각에 골몰하며, 자신의 부요를 즐거워 하나, 하나님은 부자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그의 어리석음을 탄식하십니다. 부자는 마땅히 그 재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등 하나님을 부요하도록 만들었어야 합니다. 다만, 솔로몬의 성찰의 지혜는 행함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역시 헛되다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전도서2:12절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2:12-23절의 단락은 죽음 앞에서, 지혜(12-17)와 수고(18-23)도 무의미함을 말합니다. “내가 돌이켜”란 어구를 사용하여, 솔로몬은 즐거움과 쾌락으로부터 이미 다룬 지혜와 어리석음의 주제로 돌아갑니다(1:12-18절). 전단에서 지혜, 망령됨, 어리석음 세 낱말이 등장합니다. 통상 성경에서 지혜(호크마)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혜’(시111:10)를 의미하나, 본문에서는 인본주의적 지혜, 즉 하나님을 배제한 이성의 통찰을 뜻합니다. ‘망령됨’의 뜻은 ‘도에 지나친 상태’ 혹은 ‘미친 짓’입니다. ‘어리석음’은 지혜와 대척 관계에 있는 낱말로서, 성경은 영적·도덕적으로 미련하고 악한 행동을 지칭하나, 여기서는 인간의 이성조차 따르지 않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후단은 ‘그 왕의 후계자가 행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무엇이 있는가?’(NIV)를 묻고,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 뿐이라고 대답합니다. 해 아래 새 것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틀어 보아 솔로몬의 지혜, 권세, 부를 능가하는 왕은 없습니다. 그는 전무후무한 지혜와 권세, 업적을 갖추었으나, 미련한 자의 죽음을 결코 피할 수 없었으니 애통해 할 만합니다(15).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허무 그 자체입니다. 솔로몬 보다 더 큰 분이 오셔서 죄와 사망을 이기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시켜야 하는데, 그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믿음을 굳게 잡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1:10).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앗수르와 암몬
열왕기상 11:7절
“(솔로몬이)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아브라함의 시대에 바벨론 유역의 4개의 왕국은, 사해 부근의 왕국들(소돔, 고모라 등)이 조공을 중단하자, 1,800km를 원정하였다는 기사처럼(창14장).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 간의 항쟁의 역사는 깊습니다. 암몬 왕국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속국이었습니다. 기원전 853년 카르카르 전쟁이 발발합니다. 성경에 언급은 없지만, 아람, 이스라엘, 암몬을 포함한 12개의 가나안 지역 왕국이 연합하여 제국 앗수르(살만에셀 왕 3세)와 싸워 패배한 전쟁으로, 쿠르크 석비(1861년 출토)에 전모가 적혀 있습니다. 그 석비는 북왕국 아합이 2,000대의 병거를, 암몬 임금 루후비의 아들 바아사도 병사를 보냈다고 밝히는데, 그 암몬 임금의 이름은 암몬 연대기 작성의 기초입니다. 120년이 지나서, 앗수르는 아람과 북왕국을 멸망시키고 남왕국 유다와 암몬을 속국으로 삼았습니다(주전722 경). 디글랏 빌레셀 3세의 기록은, 당시 암몬 임금은 사니푸, 그의 아들은 푸두-일루였고, 암몬의 조공액은 유다의 5분의 1임을 보여줍니다. 암몬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게 멸망당합니다(주전259년). 최약체인 암몬 왕국은 가증한 우상 몰렉(밀곰)을 믿었으나, 북왕국 이스라엘(주전722년 멸망)이나 남왕국 유다(주전586년) 보다 오래 생존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북왕국은 벌써 주님을 떠났고, 남왕국은 모세율법, 선지자들(이사야, 예레미야), 성전을 가졌으나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눅12:47,48a).
여호수아14:9절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도박’은 ‘요행수를 바라고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일에 손을 대는 것’이고, ‘투자’는 ‘이익을 얻으려고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으로 정의됩니다.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도박은 오로지 돈만 벌려고 하는 행태로 도파민 쾌감을 갖게 하지만, 투자는 몰입의 ‘여정’을 즐기게 함으로 게임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둘다 현재에 시간, 돈, 노력을 희생하고 장래의 보답을 받으려는 외형을 갖고 있으나, 차이는 ‘자기 철학’의 존재 여부입니다. 만약 투자에 대한 자기 철학이 없다면 끝까지 도박에 불과합니다. ‘자기 철학’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입니다. 사람은 여정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인천에서 부산을 갈 때, 중간 중간의 휴게소, 경치좋은 곳 등을 감상하고, 함께 탄 가족, 친구들과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산까지 가는 여정을 즐기는 중에 사람은 성장하며, 돈은 결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모든 것-공부,직장,결혼,교육,자녀출산 등-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살아가는 신앙 생활은 어떻습니까? 기복신앙은 과정은 신경 안쓰고 오직 복이라는 보상만 바라기 때문에, 도박에 가깝고., ‘성경적 믿음’은 하나님과의 동행에 신경을 쓰지, 보상은 주님께서 주심을 믿기 때문에 투자에 가깝습니다. 신자의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의를 재생산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휼륭한 예가 믿음의 사람 갈렙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물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입니다. 옛날 사람들도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히11:1,2 현대인의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