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나는 평생 낡은 트럭만 가지고 있어서 항상 새 트럭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소원을 이루자 이런 일이 있다니…” 해튼 씨는 빨간 색의 새 트럭을 샀지만, 바로 병원에 가서 결장암 수술을 받았고, 간호사인 로버타 메스너는 한 주에도 몇 번씩 방문하며 돌보았습니다. 둘은 자주 트럭에 앉아 그들의 믿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해튼 부인이 혼자 남게 되는 것과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생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대화 후 로버타는 부엌으로 가서 해튼 씨의 상황을 알리면서, 해튼 부인이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도록 도왔습니다. 해튼 씨는 고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고, 점점 더 평안을 얻었습니다. 해튼 씨의 병세가 악화되어 로버타가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몸을 기울이자, 그는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시면서 내게 손을 내밀고 계세요. 나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거예요” 속삭였습니다. 그날 저녁 해튼 씨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간호사 로버타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방부제 가득한 병실에서 해튼 씨를 만났다면, 그의 진정한 속마음을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이 현재 있는 곳에서 만나야 한다.” 이것은 주님이 성육신 하신 이유 중 하나입니다. 성탄절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아기로 태어나신 날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두란노, 「사랑하는 가족에게 읽어 주고 싶은 이야기」,121-27쪽, 참조)
「빈 구유」
누가복음2:7절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성탄절이 끝난 직후, 앨리스는 남편과 세 자녀와 함께 성탄절 장식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남편 잭은 큰아들 네이트의 도움을 받아 트리를 치웠고, 사라는 다섯 살 된 둘째 아이 나탈리의 도움을 받아 예수 탄생 장면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사라와 나탈리가 부서지기 쉬운 인형을 조심스럽게 포장하는 동안, 나탈리가 외쳤습니다. “누군가 구유 속 아기 예수님을 훔쳐 갔어요!” 생각해 보니 이 번 성탄절은 주인공되신 예수님은 도난 당하여 사라졌고 빈 구유만 축하하였던 것입니다. 범인이 누군지 대략 추측이 갔지만, 남편 잭은 맏딸 사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음, 아기 예수님이 올해는 상자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신가 봐.” 라는 말을 하며 사태를 진정(?)시켰습니다. 앨리스의 집에서 일어난 ‘빈 구유 사건’은 우리 믿음 생활을 되새겨 보도록 합니다. 매년 12월 25일이 되면 우리는 당연하게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즐거워 합니다. 성탄절 음악, 맛 있는 음식들, 포장지로 싼 선물, 그리고 캐롤을 즐깁니다만, 정작 중요한 성탄절의 의미는 잃어버립니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를 만드시기 위해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이 성탄절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그 의미를 마음에 간직한다면, 성탄절의 메시지는 연중 내내 생생한 현실이 되어, 좀 더 화평의 삶을 이웃과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탄절은 “위로와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날로서, 먼저 천군과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
누가복음 2:25절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누가복음의 성탄절 이야기는, 여행 중 짐승의 우리에서 해산하고, 동방 박사들의 방문에 이어 헤롯이 죽이려고 찾았고, 애굽으로 피신하는 등, 혼란스럽고 심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성탄절 메시지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깊은 행복과 심오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므온은 ‘죽기 전에 그리스도 볼 것이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다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눅2:26,27). 그것이 소망입니다. 시므온과 같은 소망은 자기의 문제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단합니다. 따라서, 소망의 기초는 믿음이고,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은 시므온과 같은 경건한 주님의 백성들을 언급합니다. 첫째,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입니다. 그들은 밤낮 기도하였지만 늙기까지 자녀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체험과 함께 아들 요한으로 응답하셨습니다. 둘째,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동정녀의 잉태라는 인간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을 겪을 때, 이 두 분은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담고 순종하여 그리스도를 낳고 기르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셋째, 여선지 안나는 60년을 청상과부로서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던 중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경건의 비결은 하나님께서 이루심을 믿고, 하나님의 때가 도착할 때까지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런 사람 위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전도서 2:1절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1:12-18절이 인간이 높이 평가하는 지혜 추구조차 허무함을 역설한 것이나, 2:1-11절은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과 성공의 헛됨을 밝힙니다.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은, 사변적이라기 보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 움직이는 현실에 바탕을 둔 실제적 교훈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지금 전도자는 육체적· 정신적 즐거움을 포함하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기쁨을 경험해 본 결과, 하나님을 떠나면 모든 쾌락조차 무의미함을 선포합니다. 전도자의 의도가 중요합니다. 그의 쾌락 추구는 참된 만족 여부의 발견을 위해 절제하면서 시도한 것이지 결코 방탕이 아닙니다. 한편, “너는 낙을 누리라”에서 ‘낙’은 ‘토브=선, 좋음, 희락’의 번역입니다. 두 가지 해석이 주장됩니다. ① ‘선한 것을 발견해 내라’ ② ‘쾌락을 즐겨라’ 전자는, 쾌락 탐구를 통해 의미 있는 삶의 발견을 시도하였음을, 후자는, 쾌락의 추구를 심도 있게 시도하였음을 뜻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이 ‘웃음’ 혹은 ‘술’ 등과 같은 구체적 쾌락 추구 수단이 등장하는 것을 보아 후자가 타당합니다. 결론은, ‘이것도(쾌락 추구) 헛되도다!’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이미 내린 결론을 또 다시 검증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쾌락’을 추구할 경우 지혜자 솔로몬과 달리 방탕으로 치닫게 될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절제 없는 쾌락은 사망의 길입니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