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4/11/25-29)

디모데후서3:15절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제 책장에는 한자가 섞인 선친의 성경이 있습니다. 한자는 뜻이 명료하고, 깨달으셨던 글귀들도 적혀 있어 은혜가 되었습니다. 겉표지는 낡아 가죽으로 바꾸어서 틈틈히 읽고 있습니다. 짐 킴스탁은 240km 떨어진 딸의 대학을 다녀온 그날 밤 자신의 대학 때가 떠올랐습니다. 짐을 데려주신 후, 아버지는 오랫동안 침묵하시다가, “나도 네 형들도 대학에 다닌 적이 없단다. 대학에서는 모든 것이 다를 테고 어떤 일이 생길지 나로선 알 수 없으니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하지 마라는 말은 못하겠다. 돈도 넉넉하게 보내 줄 수 없지만 모든 일이 다 잘되리라고 믿는다. 아주 힘들 때 이 수표를 사용하거라. 그런 후 내게 편지로 얼마를 썼는지 알려다오” 이어 아버지는 낡은 당신의 성경책을 주셨습니다: “너만 원한다면 이 성경 말씀이 너를 도와줄 거다.” 짐은 대학 내내 고학 하였지만, 졸업 후 경제적으로 성공하였습니다. 딸 생각이 났습니다. 이틑날 짐은 딸에게 다시 갔고, “너만 원한다면 이 성경 말씀이 너를 도와줄 거야”라는 편지와 함께 아버지의 성경책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된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마리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입니다(눅11:28). “하나님의 말씀”이란 보화는 도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어렵지 않습니다. 성경에 모두 기록되어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다만, 읽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두란노, 「사랑하는 가족에게 읽어 주고 싶은 이야기」, 94-97쪽, 참조)

전도서1:11절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헤롯 대왕은 유대인의 환심도 살겸, 자신의 치적을 남기고자 호화스러운 유대성전을 지었으나 주님의 말씀과 같이 AD66년 경 완성되자 마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졌습니다. 또, 기부자 세브란스를 기념하여 ‘세브란스 병원’이라 명명되었지만, 인간의 선행이나 업적 등의 기념이 하나님 없는 삶의 무의미를 치료하지는 못합니다. 인생은 “바다를 가는 것 같다”는 어떤 작가의 말 대로 자취조차 남지 않습니다. 따라서, 11절은 “업적을 남기려는 노력의 무의미”를 선포합니다. 우리가 새롭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이전에 존재했던 것의 반복이나, 오래된 것들이 우리에게 새롭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잊었거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본질은 미래에도 동일하여, 현 세대 역시 장래 세대에 기억받지 못할 것입니다. 좀 우울하지만, 3천년 전 전도자의 말은 사실입니다. 본절은 서론을 매듭지으면서, 과거나 미래 보다, 현재가 중요함을 교훈합니다. 현재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겠습니까? 인간의 역사 보다도, 영원하신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이어야만 합니다. 창조된 세상이 애써 부인하고 무시하는 그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만민을 심판하실 분입니다(전12:14). 따라서, 무의미한 인생 가운데 의미있고, 참으로 기억되는 삶이란, 그분의 뜻을 행하는 아름다운 삶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께 기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일2:1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1,2)

전도서1:12절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12절은 본론(1:12-12:8)의 시작이며, 전도자의 충고는 12:8절,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에서 서술 방식이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뀔 때까지 계속됩니다. ‘나 전도자’와 같은 자전적 도입은 이집트, 시리아,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형식을 따른 표현이나, ‘되어’로 번역된 동사 ‘하이티’가 완료형이기 때문에 세 가지 견해가 주장 되었습니다. (1) ‘되어’의 완료형은 “전에는 왕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왕이 아니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기에 본문의 전도자는 솔로몬이 아니다. 솔로몬은 죽기까지 왕으로 통치하였다. (2)솔로몬이 저자이나, 이를 통해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솔로몬의 생애를 추측케 한다. 죄를 지은 솔로몬은 회개하고 다시 왕 위에 오를 때까지 왕이 아니었던 기간이 있었다. (3) 솔로몬이 저자이나, 솔로몬은 삶의 마지막에 왕위에서 쫓겨났고, 회한에 잠긴 솔로몬이 남긴 글이라는 탈무드의 전승을 따른다. 그러나 히브리 동사의 완료시제는 과거에 행동이 완료되어서 그 효과가 현재까지 미치는 모습을 묘사하므로, 저자는 솔로몬이고, 죽을 때까지 왕 위에 있으면서 이 글을 남겼다는 전통적 견해가 옳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왕’이라는 표현은 통일 왕국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으로, 솔로몬만이 가능합니다. 그 아들 르호보암 이후 왕국은 분열 되었습니다(BC930). 권력, 부, 지혜를 극한까지 누린 왕 솔로몬은 인생이 그토록 원하는 부, 권력, 명예, 지식 추구의 허무함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의 해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이 비결을 우리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전1:18).

「라기스」
열왕기하18:17절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라기스 골짜기는 평지에 위치한 다섯 개 골짜기 중 가장 남쪽에 있습니다. 드넓은 남방지역과 해안 평야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이 골짜기는 완만한 경사지를 이루며 해발 천 미터 산지에 자리잡은 헤브론에 이르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텔 라기스’는 이미 여호수아의 정복 이전에 가나안 족속들의 요새였고, 왕 르호보암에 이르면 이중 성벽을 갖춘 견고한 성으로 세워져 유다 왕국의 남방 지역을 통제하는 요새가 됩니다(대하11:5-12; 23). 따라서, 라기스 성은 유다 왕국의 마지막 보루여서, 열왕기, 역대기,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등의 전쟁 기록에 적혀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많은 유물이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발굴되었습니다. 산헤립 연대기가 그 좋은 예입니다. 주전 701년 경 유다 왕국과 앗시리아 사이에 일어난 라기스 전투는 열왕기18장, 19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 천리 떨어진 앗시리아 수도 니느웨 성의 산헤립 궁전에서 같은 내용이 적힌 유물이 발굴되었습니다. 이것이 ‘라삼 실린더’로 불리워지는 원통형 돌인 산헤립 연대기로서, 높이 약 38cm, 직경 약 15cm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치열하였던 전투는 27미터의 부조에 상세히 조각되어 있습니다. 근동 최 강대국 앗시리아와 충돌한 왕 히스기야가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국운을 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천사 한 명을 보내어 앗시리아 군대 185,000 명을 죽여 구원하십니다.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벧전5:7,새번역).

시편37:4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그리스도인은 성례전적 시각- ‘주어진 모든 일과 사물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해리 블레마이어). 그런 삶은, 삶의 즐거움, 고된 노동, 그리고 근심 없는 휴식이란 3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먼저, ‘삶의 즐거움’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갔을 때, 둘째 딸 라헬을 보자 사랑에 빠집니다.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이나 고된 노동을 하였지만, 수 일(a few days)처럼 여겼습니다(창29:20). 라헬을 아내로 얻어 가정을 세울 기쁨과 소망 때문에 즐거웠던 것이죠! 우리의 계획을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이를 믿고 기뻐하십시요! 그리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걷되, ‘하나님의 뜻’ 행함을 즐거워 해야 합니다(시편119:16).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여러 번 결혼하고 이혼하여 사생활은 좋지 않습니다만, 그의 재담이나 지성은 놀랍습니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할 때 유명세가 싫어 거부하려고 하자, 그러면 더 유명하게 된다는 말에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후에 BBC 인터뷰에서 자신은 이미 상을 받았으며 그것은 “발견하는 즐거움이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물리학 연구의 즐거움이 예상치 못한 노벨상까지 이끈 것입니다. 파인만은 “저도 공부를 열심히 한 평범한 사람이에요. 기적은 없어요, 여러분.”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물리학은 없어질 것이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남습니다.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그 안에는 ‘주님의 뜻을 행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시편1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