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실수
요한복음12:14절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종려주일에 주님은 감람산에서 어린 나귀를 타고 행진하시나, 제자들은 성경(스가랴9:9)을 성취하시는 사건임을 후에 깨닫습니다(요12:16). 대릴 윌터만 스튜어트의 외할아버지의 일화입니다. 대공황 시절 시카고의 추운 어느 토요일 목수인 할아버지는 아침에 20달러나 주고 안경을 사신 후 교회에 가서 중국의 한 고아원에 보낼 옷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윗 주머니에 넣은 안경이 부지중 떨어졌고 옷 상자는 중국으로 보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결국 안경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 인생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중인데 이게 뭐예요?” 라고 불평하였습니다. 몇 달 후 그 중국의 고아원 원장이 휴가차 미국에 와서 여러 교회를 방문하였고, 할아버지 교회에도 와서 설교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께서 작년에 보내주신 안경에 감사 드립니다. 공산당이 휩쓸고 지난간 후 제 안경을 포함해 고아원의 모든 것이 망가졌고 저는 정말 절망했습니다. 돈이 있어도 제 도수의 안경의 구입은 불가능했어요. 잘 볼 수도 없는데다가 두통이 저를 괴롭혀서 동료들과 함께 매일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보내 주신 옷 상자가 도착했고 그 상자 뚜껑을 열자 제일 위에 바로 이 안경이 놓여 있었고 도수가 꼭 맞았습니다. 안경을 보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 과정은 오직 할아버지만 아셨기에 뒷좌석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실수를 완벽하게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사랑하는 가족에게 읽어 주고 싶은 이야기, 55-57쪽」. 기도를 쉬지 마시고 주님의 일을 하다가 손해를 보아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전도서1:5절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5-8절은 계속 반복되나 인간 욕망은 충족되지 못하는 그 허무성을 해, 바람, 강물의 끝없는 순환을 통해 표현합니다. ‘해의 순환’을 다루는 본절에서, ‘뜨고..지되’란 계속되는 태양의 출몰을 말합니다. 태양은 무수히 나타났다 사라졌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고, 오직 무의미한 반복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태양 밑에서 사는 인간의 일상과 노동의 무의미성은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논리적 필연입니다. 이에 반하여, 성경은 태양을 포함하여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선포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그리고 통제 하에 있습니다. 따라서,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은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분명한 실체입니다(시19:1). 물론 태양이 뜨고 지는 모습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 현상으로 솔로몬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그 질서 아래 풍요로운 소산물이 나고, 인간과 동식물의 생존 기반이 됨은 변함이 없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이나, 무신론자들은 우연으로 치부합니다. 만약 삼라만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연 그 자체만을 떼어 놓고 본다면 태양의 움직임은 의미가 없고, 인간의 삶 역시 허무하며 매일이 지친 일상입니다. 후단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간다”란, 태양이 열심히 자신의 길을 가지만 순환과 무의미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그 밑에 사는 인생의 온갖 노력에도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짙은 허무를 재차 강조합니다. 태양은 고대에 가장 신성시 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배척하는 인생의 허무가 이 보다 강렬하게 기술될 수 없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전도서1:6절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6절은 ‘바람’의 무의미한 움직임을 관찰한 뒤 인생 무상을 토로합니다. (1)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킨다’는 구절은 ‘바람은 남쪽으로 불며 또한 반대로 북쪽을 향해 분다’는 뜻이지만,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2) ‘이리 돌며 저리 돌아’는 ‘돌이켜 불며, 돌이켜 불며, 계속 분다’는 뜻이며, 역시 그렇게 움직이는 이유는 모르고, 오직 바람의 무의미한 반복적 활동만이 있을 뿐입니다. (3) 후단은 내키는 대로 움직이던 그 바람이 결국 ‘그 불던 곳으로 되돌아 갑니다.’ 심히 요동치던 바람이었지만 종래는 시작하였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태어나서 삶의 의미를 모른 채 이리 저리 살아보려고 노력하나, 결국은 모두 다 무덤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존재입니다. 1985년 경 제가 공군에서 복무할 때 동작동 국립묘지에 단체로 참배를 간 적이 있습니다. 어느 중년 여성이 한 비석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아들이 공군 전투 조종사로서 훈련 중 순직하였습니다. 그때 함께 있던 조종사가 인사드리며 아들과 동급생이라고 하니, 그분은 “이렇게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이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그때, 당신의 아들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믿음을 갖고 세상을 바라 본다면, 세상은 의미와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고, 허무는 물론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고고학으로 읽는 성경」
열왕기상11:5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솔로몬 왕은 성전 건축과 부국강병을 이루었습니다. 왕위에 오르자 재판이란 왕의 직무를 위해 ‘듣는 마음’, 즉 분별력을 구하였지만, 감동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넘는 ‘지혜와 지식’(대하1:10)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동식물을 포함한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갖고 부국강병을 이룩합니다. 그는 다윗 같은 믿음이 아니라, 세상 지혜로 주변국가와 정략적 결혼을 통해 평화를 구축하였고, 이에 따라 여인들과 함께 이방 신들이 이스라엘로 들어오고 솔로몬까지 굴복시킵니다. 시돈 여인과 여신 아스다롯이 그 예입니다(왕상11:1). 베니게의 신화에 따르면, 아스다롯은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난 여신으로 아세라, 바알랏 게발과 함께 엘의 부인이 되었고, 7명의 딸과 2명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스다롯은 풍요와 다산, 전쟁의 여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주요 성지는 키프로스, 시돈, 두로, 그리고 비블로스 등 베니게 사람들의 도시이지만, 이스라엘 라기스에서도 금판(BC1600-1200)에 새겨진 아스다롯이 발굴되었습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허무한 이야기이나,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쉽게 넘어갑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우상숭배와 관련하여 벌과 축복을 부기하셨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에 이르는 복을, 당신을 미워하는 자(예, 우상숭배자)에게는 자손 3∼ 4대에 걸친 벌을 주십니다(출20:4-6). 오늘날은 황금이라는 우상, 즉 탐욕이 더 문제로, 세상 지혜로는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만유의 주님되심을 믿는 자만이 이길 수 있는 것은(요일5:5), 주님은 금생과 내생의 복의 저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하나님 없는 인간- 장폴 사르트르
시편14:1절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네가 네 자신의 주인이 되라”고 주장하였던 니이체를,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1905-1980)가 이어받습니다. 그의 작품 「구토」의 내용입니다: “어느 날 연금생활자 로강탱은 바다에서 돌을 줍다가 구토를 느낀다. 그렇게 시작된 구토는 나무뿌리를 보고도, 카페에서도, 파이프나 포크를 보고도 일어난다. 목적 없이 던져진 존재의 본질, 그것이 구토를 일으키는 원인이었다.” 사르트르는 “종이를 자르는 가위는 용도가 있지만, 인간은 용도가 없다. 가위의 창조자는 제작자이지만, 인간에게는 창조주가 없기 때문이다. 목적 없이 던져진 너 자신을 받아들여라(실존), 그리고 자유를 가지고 목적이나 용도를 스스로 창출해 가라(본질). 너는 너 자신의 주인이 되라!” 고 주장하여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인본주의적 삶을 세워가자는 주장입니다. 그는 무신론적 실존철학에 근거하여 공산국가 소련에 후한 평가, 알제리독립전쟁무기지원, 월남전 반대를 외쳤으며, 시몬 보부아르와 51년 동안의 계약결혼, 많은 여성편력으로 비판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실로 하나님 없는 자유를 구가하였습니다. 문제는 존재하시는 하나님으로, 반항하는 사르트르를 데려가심으로 그의 철학에 철퇴를 내렸습니다. 시간, 공간, 엄청난 우주, 양자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시며(요1:1), 세상은 그분의 뜻에 따라 지음받았습니다. 성경은 거기서 출발합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당신을 계시하셨고, 아들의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담당토록 하셨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