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31:18절
“사업이 잘 되어가는 것을 알고, 밤에도 등불을 끄지 않는다.”(새번역)
18절은 “현숙한 여인”이 부지런함의 이유를 알려줍니다: “사업이 잘 되어가는 것을 알았다.” 즉, “현숙한 여인”은 자신이 벌어들인 경제적 이익에 고무되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잠언은 ‘밤에도 등불을 끄지 않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음식물을 나누어 주고, 여종들에게 할 일을 맡긴다”는 15절을 고려하면, 도대체 이 여인은 언제 잠을 자고 휴식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잠언은 과장법을 사용하여 교훈을 주고 있다는 해석들이 많으나, 부지런한 사업가들의 삶이 실제로 그러합니다. 사업가들은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통상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책임감을 갖고 일합니다. 독일의 아우토반을 본받아,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하였습니다(1968.2.1). 난 공사를 앞두자 정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호출하였습니다. 박대통령이 지도를 보면서 걱정하는 사이 작업복 차림의 정회장은 졸고 있었습니다. 거의 매일 현장에서 밤을 새다시피 하며 작업을 독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박대통령은 언짢은 표정 대신, 잠이 깨기를 기다렸다가 죄송해 하는 정회장의 손을 잡고 “정 사장, 내가 미안하구만” 하였다고 합니다. 가난한 대한민국의 발전이란 공동 목표를 놓고 힘을 합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사업가의 덕목은 이익이 되는 분야를 누구보다 빨리 간파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습니다. 이와 같이 ‘현숙한 여인’은 밤새 직물을 짜서 팔아 많은 이익을 얻고 있었습니다. “등불을 끄지 않는다”는 표현은 그녀의 번영을 단적으로 알려줍니다.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잠언14:24).
잠언31:19절
“한 손으로는 물레질을 하고, 다른 손으로는 실을 탄다.”(새번역)
19절은 “현숙한 여인”의 실 뽑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묘사합니다. 그녀가 하는 가사일의 수행은 가정의 복지와, 소득 증대까지 고려한 생산활동입니다. 그녀는 옷감을 위해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고”(13) 물레질과 실을 만드는 작업으로 발전시킵니다(19). 부지런하고 유익한 그녀의 두 손은 궁핍한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손으로 변모합니다(20). 실로 가정, 공동체, 그리고 주님께도 보배와 같은 존재입니다. “현숙한 여인”의 중심에는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놓여 있고(30),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가정과 이웃에게 선을 행하기를 즐깁니다(시37:3). 따라서, 밤 늦도록 부지런히 옷을 만들고, 열심히 포도원을 가꾸는 동시에, 일찍 일어나 각 여종들에게 가정의 일을 나누어 주고, 그 날 할 일들을 위해 준비시키는 행동은 그녀의 즐거움입니다. 가히 가정의 CEO라 하겠습니다. 그 옛날 대갓집(큰 권세와 부를 가진 큰 집) 맏며느리는 약 100명의 식솔을 섬겼으며, 하루 쌀 한 가마니로 밥을 짓고, 계절을 따라 많은 필수품들을 빈틈 없이 준비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녀는 많은 지혜와 경험을 두루 갖추고 있었고, 거래하는 시장의 큰 손으로 존중받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갓집 맏며느리와 잠언의 “현숙한 여인”는 모두 ‘자신감과 위엄이 몸에 배어 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으며’(25), 그들의 가정은 다 번영하였지만, 특히 “현숙한 여인”은 인애의 법을 논하며 겸손의 덕을 갖추었습니다(26). 그 비결은 “주님에 대한 경외”이며, 모든 덕행의 근본입니다.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잠언31:29)
누가복음10:38절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마르다는 분주하였지만, 마리아는 오히려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르다의 열정은 불만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자신의 일에 성취를 내려고 몰두하는 분들의 공통적 특징이 책임감과 열정입니다. 창조적 가치의 실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임무만을 주요 목표로 내세울 때 관여된 사람들의 가치를 잊어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남이나 인격적 대화 존중 등 체험적 가치의 실현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마리아는 전통적 관습을 따라 언니를 도와 대접하는 일, 즉 여인의 창조적 가치의 실현을 소홀히 한 면이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두 섬김은 꼭 필요하며, 모두 주님을 사랑해서 각자의 가치를 추구한 것이지만, 서로 다른 가치의 통합에 이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다를 가볍게 꾸짖으신 것은 언니부터 이런 부분을 사랑 가운데 통합하기를 원하신 면이 있습니다. 본문의 일화는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셨기에’(요11:5), 창조적 가치와 체험적 가치가 사랑 안에서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가르치는 장면입니다. 통합을 위해서는 가치의 충돌이 일어나야 하고, 이어 더 높은 가치 안에서 각각의 위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은 진보와 보수가 격돌하고 국민의 심판을 통해 사회가 발전해 나갑니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은 사랑 안에서 통합에 이르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주님의 자기 희생의 사랑 가운데 가치를 통합하는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마태복음9:27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삶의 의미”의 발견을 위한 3번째 방법은 “자세적 가치의 실현”입니다. A는 공동 도서관에서 자발적 연구 작업을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하였는데, 이는 길을 건너는 공포가 있어 다른 직장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주변의 노력들조차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화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삶의 의미는 창조적 활동(창조적 가치의 실현)이나 사람 또는 사물을 체험함으로써(체험적 가치의 실현) 발견되나, 만약 이런 길들이 막히면, 사람들은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자세적 가치의 실현”의 중요성은 바로 고통에 대한 대처에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왜냐하면 의미는 창조적 가치나 체험적 가치들을 실현함으로써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자세적 가치들의 실현을 통해서도 찾을 수 있고, 자세적 가치의 실현은 고통 속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통 가운데서도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는 놀라운 주장입니다. 따라서, “행동이나 인내를 통해서 보석으로 만들 수 없는 곤경은 없다”는 괴테의 말을 되새기게 합니다. 프랭클은 괴테의 이 말을 즐겨 인용하면서 환자들에게 “직접적으로는 정신 분석의 방법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마음 자세를 바꾸게 하여 모든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심리학, 정신의학 등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입니다. 기독교는 중생(거듭남)의 종교로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행할 능력을 줍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마9:29,30a)
로마서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빅터 프랭클에게 박테리아 공포증에 사로잡힌 어느 어머니가 찾아 왔습니다. 그녀는 여러 명의 어린 자녀를 두었는데, 많은 염려 끝에 병에 걸리지 않도록 외출을 삼가하였고, 어떤 방문자도 집 안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손을 씻었고, 남편이 어떤 아이도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자신이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여 남편과 이혼하려고 하다가 자살을 기도하고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프랭클 박사는 그녀의 공포를 과장하여 시연하고 그녀의 염려의 문제점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나는 그 환자를 불러 임상 치료의 청중 앞에서 내가 한 행동을 따라도록 했습니다. 강의실 마룻바닥을 손으로 쓸며 “박테리아가 이보다 더 많아질 수 없습니다”라고 한 뒤, 그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습니다. 물론 환자도 따라 하였습니다.” 그런 역설적 의도를 깨닫자 환자는 충격과 함께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와 함께 마음 자세도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닷새 동안 같은 치료를 받자, 3년이나 병들게 했던 강박 관념과 피해망상증이 90%이상 사라져 버렸습니다. 징크스의 두려움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만유의 주님은 그 징크스에서 우리를 자유토록 하시기 위해, 그런 징크스를 통과시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라서, 자세를 바꾸어야 합니다. 징크스가 생기면 그런 우스꽝스러운 현상에 대하여 웃어넘기고, 그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됨을 믿고 감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