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4/6/3-7)

여호수아10:12절
“여호수아가 주님께 아뢰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그가 외쳤다.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러라!”
(새번역)

‘아얄론 골짜기’는 기브온과 해안평야를 연결해 주는 쉐펠라(=’겸손’or’낮음’), 즉 낮은 지역의 5개 골짜기 중 가장 북쪽이며 가장 넓은 지역(평지)를 말합니다. ‘쉐펠라’는 동서 15㎞, 남북으로 60㎞에 이르며 100-400m에 이르는 산들과 골짜기들로 구성되어 있고, 지중해를 따라 뻗어있습니다. 말이 골짜기이지 낮은 산들을 가진 넓은 평야로서, 벧호론 비탈길로 연결되어 예루살렘의 북쪽 기브온에 이르는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입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아얄론 골짜기와 벧호론 비탈길은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초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거민들과 격렬한 전쟁을 벌여야만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전쟁이 여호수아 9-10장입니다. 야간 행군까지 감행하면서 길갈(-250m)에서 기브온(900m)까지 가파른 산길을 단숨에 올라와야만 했던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 인천 상륙작전보다 더 고도의 전략과 전술이 펼쳐졌던 이 전쟁의 하이라이트는 여호수아가 기도하고 외치는 본문이며, 우박을 쏟으시고 태양과 달의 운행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이 개입하자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신자들이 가나안이란 세상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전쟁입니다. 세상과 육신과 마귀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사령관은 부활하신 예수(=여호수아)이고, 승리의 비결은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롬8:13,새번역).

사사기16:4절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평지’로 번역된 ‘쉐펠라’ 지역은 블레셋 평야와 이스라엘 산지 사이에 있습니다. 제일 북쪽은 아얄론 골짜기, 그 남쪽으로 소렉, 엘라,  벧 구브린, 라기스 골짜기가 차례로 동서로 달리며 각각 유명한 성경 사건의 현장들이 된 것도 이 지리적 특성 때문입니다. ‘쉐펠라’는  두 민족의 최전선이자 완충지역이었습니다. 소렉 골짜기 역시 그 중 하나로 삼손과 블레셋 여인들(들릴라)이 함께 자라고 만난 장소였습니다. 인간이 만나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내용은 언제나 사랑과 배신입니다. 삼손 사후의 ‘아벡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기고, 그 언약궤는 블레셋의 도시를 돌다가 소렉 골짜기를 통해 벧세메스로 돌아갑니다. 벧세메스는 소렉 골짜기 상단에 위치한 언덕(‘텔’이라 부름)으로 블레셋을 막는 이스라엘의 주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삼손이 살았던 소라는 텔 벧세메스의 오른쪽 널찍한 골짜기 건너편의 나지막한 산기슭에 위치하였고, 그 밑으로 내려가면 들릴라의 집이고(삿16:4), 좀 더 걸어가면 삼손의 첫 번째 부인 블레셋 여인의 고향 딤나(삿14:1)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사사기 13-16장의 현장입니다. 4월에 소렉 골짜기를 여행한 김상목 목사/작가는 “드넓은 소렉 골짜기는 온통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 황금물결의 장관이었다… 삼손이 요염한 들릴라와의 데이트 장소가 보리밭이었다니!” 삼손은 사랑에 들떠서 달려갔던 이 길이 죽음과 파멸의 길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어쩌면 이 순간 삼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편128:1)

잠언30:12절
“더러운 것을 씻지도 않고 깨끗한 체하는 무리가 있다.”(
새번역)

이 잠언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더러운 죄악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만족해 하는 사람을 정죄합니다. ‘더러운 것’이란 ‘배설물’이나 ‘토한 것’을 의미하며, ‘씻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씻겨지다’, ‘깨끗하게 되다’라는 수동적인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그의 눈에는 깨끗하고, 그의 더러움으로부터 씻겨지지 아니하였다”가 되어, 상반절과 하반절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이해됩니다. 즉, 자신을 제대로 살피지 않아 진상을 깨닫지 못하고, 그 결과 온갖 더러움(=불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아굴은, 오물이 감지되면 곧 씻어내지만 보다 중요한 영적· 도덕적 더러움은 깨닫지 못하여 불의에 그대로 머무르는 사람의 행태를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본절은 위선과 자기 의에 대한 경고, 그리고 어리석음과 무지로 인해 범죄의 우려를 함께 전달하는 메시지라 하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 ‘참회록’ 속의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자신을 성찰한 뒤 마땅히 회개하여 주님의 피로 죄를 씻어야 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고 우리아를 죽인 뒤, 1년이나 위선을 행하였습니다만, 선지자 나단이 그 죄를 폭로하자, 다윗은 즉각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다윗을 용서하셨으나, 다윗의 집안은 그 죄의 값으로 풍비박산 되었습니다. 또, 어리석어 계속 죄를 범한 대표적 인물은 삼손입니다. 결국 들릴라의 배신으로 맹인이 되었고 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삼손 역시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의 죽음을 통해 원수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

잠언30:13절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교만을 경계하는 본절은 “그의 눈이 얼마나 높으며, 그의 눈꺼풀이 얼마나 높은지!”로 직역됩니다. ‘눈’과 ‘눈꺼풀’이 들린 모습을 통해 교만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영적인 어리석음과 교만에 관한 교훈(12절)의 취지를 확대하였다고 보입니다. 즉, 영적으로  의롭다고 뽑내며(12절), 재산이나 미모, 학식, 권세, 지위, 명예, 가문, 친분관계 등 남보다  좀 낫다고 하여 으시대는 자들(13절) 말입니다. 이 교만한 자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견해는 모두 옳고 지혜로우며 자신의 번영은 영원하다는 ‘확증편향’입니다. 그래서 공작새와 같이 자신의 것들을 드러내며 이웃을 업신여기고, 상석에 앉지 못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이들이 잠시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것 같아도 실상 가장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란 본시 하나님 앞에 동등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 재물 얻을 능력, 시기와 우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높은 자리에 올라가거나, 많은 재물을 벌거나 큰 학식 등을 갖게된 것 뿐입니다. 이를 깨닫고 겸손히 자신에게 도착되어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자에게 지혜가 있다 하겠습니다. 주님은 만유의 창조자이시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사시고(고후8:9), 심지어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 겸손히 십자가의 길로 가셨습니다(사53:12). 그 의를 보신 정의의 하나님은 주님을 다시 살리사 지극히 높이셨습니다(빌2:5-11). 따라서,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정직한 삶을 보시고 높이시도록, 주어진 은사를 갖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십계명과 산상수훈은 훌륭한 안내자입니다.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잠16:18,새번역)

잠언30:14절
“사람들의 이빨이 칼 같고 턱이 작두 같은 세상이구나. 불쌍한 사람을 지상에 하나 남기지 않고 가난한 사람을 세상에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다.”(공동번역)

본절에서 아굴은 약자를 착취하여 치부하는 자들의 탐욕을 밝힙니다. 13절이 ‘눈’과 ‘눈꺼풀’이란 소재를 통해 인간의 교만함을 표현한 반면, 14절은 ‘치아’라는 소재로 인간의 탐욕과 잔인한 압제를 묘사합니다. 원문을 살려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그의 이들은 검들이며 그의 어금니들은 도살용 칼들이다”가 되어, 개정개역보다는 공동번역의 문구가 좀 더 매끄럽습니다. 이 악인들은 마치 야수가 강한 이로 먹잇감을 부스러뜨리고 찢어 삼키는 것처럼 가난한 자들을 희생물로 삼고 있습니다. 춘향전에 나오는 변사또라고 보면 맞습니다. 춘향전의 저자는 변사또의 학정을 심판할 자로 이몽령을 상정하고, 장원급제시킨 후 당해 지역 암행어사로 내려보냅니다.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에 사무치는 그때, 이몽령은 잔치에 나가 시를 짓습니다. “금준미주천인혈 옥반가효만성고 촉루락시민누락 가성고처원성고- 금잔의 좋은 술은 천 백성의 피요,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요, 촛물이 떨어질 때 만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드높더라” 그리고 곧 출도하여 변학도의 악행을 바로잡습니다.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조선시대 소설이라고 치부될 수 있지만, 성경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만유의 주재되심을 선포합니다. 때가 왔을 때, 공정하신 주님은 악한 자를 벌하실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두려움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딤전5: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