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사랑 이야기와 복음
이사야42:1절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위국헌신군인본분”을 쓴 안중근 의사처럼, 최진립(1566-1636)은 병자호란 때 순국하여 군인의 본분을 다하며(69세), 300년 간 경주 부자 최씨 가문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억울한 귀양살이를 겪어서, “사람이 왕후장상의 씨가 아니면 권세와 부귀를 모두 가질 수는 없다. 권세의 자리는 칼날 위에 서 있는 것과 같기에 위험하니…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마라.”는 유훈을 남깁니다. 상민으로는 부나 가문을 세우기 어렵기에 진사까지는 허락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3대 최국선에 이르자 부자가 되었지만, 큰 흉년이 들자 부자의 책임을 절감합니다. 그는 창고를 열고 굶주린 사람들을 돌보면서 빚문서를 불에 태웠습니다(1671). 그리고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정립합니다. 최씨 가문의 부의 끝은 일제 때 백산상회를 운영하면서 독립자금을 상해로 보내고, 전 재산을 팔아 육영사업에 힘쓴 최준 선생입니다. 경주 부자 최씨의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안중근과 최준의 이야기는 일본인이, 최진립의 이야기는 중국인이, 최국선의 이야기는 소작인들이 거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류와 민족을 포괄하는 정의와 사랑의 이야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 나라 이야기, 즉 복음입니다. 복음은 듣고 회개하여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롬1:16,17).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사2:2).
시편84:10절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자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란 카피로 유명한 前제일기획 부사장 최인아 씨(1961)에게 28년 간 조직에서 살아남은 비결을 묻자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분별력”이 그 비결임을 밝힙니다. 2006년 자신을 냉철히 평가하고자 산티아고의 순례자의 길(35일, 800킬로)을 걸었고, 일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복귀한지 6년 후 부사장직에서 사직합니다. 디지털 물결이라는 변화의 시대에 역량 부족을 자인하였기 때문입니다. 현재 ‘최인아 책방’을 운영하면서 작가로 변신하였습니다. 최인아 씨는 재능을 기반으로 소신껏 살아왔습니다. 신자의 삶은 어떻게 다르겠습니까? 첫째, 만족의 삶입니다: 84편에서 시인은 자신의 직무(성전과 제사업무)에 만족하여, 성전의 하루가 다른 날보다 천 배나 값짐을 고백합니다. 둘째 주님을 배워가는 삶입니다. 시인은 주님의 선하심을 여러 번 경험하기에, 시인은 ‘복이 있다’고 3번 말합니다: (1-4절) 주님을 갈망하여 성전에서 섬기는 자들이 받는 축복/ (5-8절)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시온의 대로를 따라 순례의 길에 오른 자들이 받는 축복/(9-12절) 주님을 신뢰하여 그분 안에서 쉬는 자들의 축복입니다. 셋째, 주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1). 신앙의 길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영적인 갈망 때문에 시작되며, ‘눈물 골짜기’ 같이 메마른 곳을 통과할 때의 경우에는 기도하여 응답을 받는 등 주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삶입니다(6). 이것이 영생의 본질로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편84:7).
잠언30:1,2절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잠언은 솔로몬이 젊은이를 위하여 말한 강화집(1-9장),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단편 경구 선집(10-29장), 그리고 아굴과 르무엘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주는 훈계(30,31장)의 3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를 꿰뚫는 주제어는 ‘주님(야훼)을 경외하라’입니다. 30장은 아굴의 잠언입니다. 아굴(의미: ’수집하는 자’)과 그의 아버지 야게의 정체는 모르나, 솔로몬 시대의 현인 중 한 분으로 추정되며, 대상은 이디엘과 우갈 두 아들이고, 타락한 인간의 부정적 모습에 초점을 두어 훈계합니다. 30장의 구조입니다: 전반부(1-9)는 아굴 자신의 신앙고백과, 경건한 지혜자로 살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의 조건을 다룹니다. 중반부(10-23)는 비방, 불효, 위선, 교만, 압제, 탐욕, 불순종 등 어리석고 악한 행동의 기본 유형을 제시합니다. 끝으로 후반부(24-33)는 인생이 귀감으로 삼을 표상들(개미,사반, 메뚜기, 도마뱀. 사자 등)을 제시하며 권면을 마칩니다. 한편, 2절에서 아굴은 이성 없는 ‘짐승’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의 어리석음을 강조하는데, ‘참으로 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자다’라고 의역되고, 후단에서 재차 강조됩니다. 그 당시는 물론 후세에도 지혜자로 알려졌을 아굴 자신의 겸손을 읽을 수 있고, 본잠언의 독자들은 참된 자아성찰을 행하여 주님을 경외하도록 이끕니다.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하나뿐인 지혜다”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이 생각납니다. “미련한 사람은 명철을 좋아하지 않으며, 오직 자기 의견만을 내세운다.”(잠언18:2,새번역).
잠언30:3절
“나는 지혜를 배우지도 못하였고,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아는 지식도 깨우치지 못하였다.”(새번역)
아굴은 또 한 번 자신을 낮추는 말을 하는데, 지혜롭게 되려고 하는 자들은 먼저 자신의 무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잠언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최악의 바보로 평가합니다(29:12). 그러므로 아굴은 어리석은 자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이는 특히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여서, 누구든지 참된 지혜를 얻으려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자신 무지와 죄악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2절에서 아무런 이성의 빛도 없는 짐승에 자신을 비유한 아굴은, 3절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분’ 즉 하나님을 아는 어떤 지혜와 지식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굴은 잠언의 가장 큰 주제인 ‘야훼를 경외(두려움)’하는 것이야말로 지식과 지혜의 시작’(1:7)임을 또 한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굴의 겸손어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우리에게 주는 통찰이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여기는 자는 그 분야에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찾아낼 때까지 애를 써야 합니다. 그래야 위험까지 대비하는 지혜를 갖게 됩니다. 바울은 베드로, 바울, 아볼로 등이 고린도 교회에서 놀라운 역사를 행하였더라도 그 사람들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모든 것의 원천되시는 주님만을 경외하라고 가르칩니다(고전3:18-23). 따라서, 사람이나 직업 등을 고려할 때도, 강점은 물론 약점이나 위험성까지 반드시 찾아내어 저울질한 뒤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3:18).
잠언30:4절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4절의 다섯 개의 질문은 인간 지혜의 무지와 도달불가능한 하나님의 지혜를 깨우치려는 수사법입니다. 질문의 의도는 두 아들이 무지를 깨닫고, 자신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지혜만을 신뢰하도록 이끄는 것으로, 마지막 질문을 제외하고는 즉각적으로 ‘그분은 하나님이다’는 답이 떠오르게 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욥에게 하신 연속적인 하나님의 질문들이 생각납니다(욥38-39장):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욥38:2-4새번역).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그때까지, 무죄하나 고난 중의 욥은, 자신의 사건을 들어달라고 하나님께 강력히 호소하고 있었으나, 막상 하나님이 나타나사 말씀하시자, 욥은 자신이 당한 일들을 하나도 진술하지 못합니다. 대신 하나님이 쏟아내시는 엄청난 질문들을 숨죽여 듣다가 하나님의 광대한 지혜를 깨닫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욥의 무지를 깨닫게 하사 당신을 경외하도록 이끄신 것입니다. 욥기의 끝은 “하나님은 욥을 기쁘시게 받으셨고 그의 곤경을 돌이키셔서 배나 축복하셨다”이지만, 결국 믿음의 이야기만 남았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특권은 믿음의 이야기, 주님을 경외하는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며, 하나님의 특권은 그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축복하시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