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4/4/8-12)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어거스틴이 보기에 어머니 모니카는 온유한 마음을 바탕으로 서로 생각이 다르거나 불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목을 일구어 내는 큰 은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원수는 없고 친구만 있는 자리에서는, 그 원수에 대한 증오심으로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동원해서 독설을 퍼붓고 악담을 쏟아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모니카는 상대방에 대한 지독한 악담을 듣게 될 때, 그들 사이를 화해시키기 위해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말이외에는 어떤 말도 당사자에게 절대 옳기지 않았다는데, 사실 이런 분은 매우 드물다 할 수 있습니다. 1700년 전 어거스틴의 말입니다. “원수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하여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심하게 내뱉은 말들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옮길 뿐더러 심지어 하지도 않은 말들을 덧붙이는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많이 보았기에 어머니의 이런 행동은 지금의 나에게는 결코 결코 예사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악담을 삼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선한 말을 해서 사람들의 증오심을 없애려고 애를 쓰는 것이 마땅한데 어머니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어거스틴은 중요한 말을 덧붙입니다. “주님은 어머니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학교에서 어머니를 붙들고 가르치신 선생이셨습니다” 중생의 결과 성령께서 모니카의 마음에 오셔서 가르치심으로 주님을 본받아 행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주님이 심으신 의의 나무’입니다(사61:3)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8)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시편37:5,새번역)

모니카는 말이 아니라 행실을 통해 일생 남편을 전도하고, 마침내 삶의 끝자락에 선 그를 주님께인도하였습니다. 말씀을 실천한 반석 위에선 믿음의 여인입니다(벧전3:1-6). 또한, 모니카는 교회와 주교들을 잘 섬겼습니다. 어거스틴의 증언입니다: “어머니는 주님의 종들을 섬기는 여종이셨습니다. 어머니를 알게 된 주님의 종들은 한결같이, 어머니의 거룩한 삶의 열매라는 증거를 통해서, 주님이 어머니의 마음에 임재해 계신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어머니로 말미암아 주님을 크게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며 사랑하였습니다.” 이렇게 모니카는 “한 남편의 아내”였고,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를 공경하였으며, 자신의 집안을 경건하게 이끌었으며, “선한 행실의 증거를”를 보였으며, 자녀들이 주님을 떠나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보실 때마다 다시 산고를 겪는 것처럼 괴로워하며 양육하였음을 어거스틴은 고백하고, 그녀의 마지막을 기록합니다. “어머니가 주님 안에서 잠드시기 전에,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세례를 받게 하시고,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를 자식처럼 돌보아 주셨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의 은총으로 ‘주님의 종들’이라 불릴 수 있게 된 우리 모두를, 자녀가 부모를 섬기듯 그렇게 섬기셨습니다.” 모니카는 어거스틴과 함께 로마에서 귀국하던 중 세상을 떠납니다(54세). 모니카의 삶은 주님의 뜻을 행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열매들은 그 아들 어거스틴에 의해 세상에 밝히 드러나 우리의 귀감이 됩니다.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편37:6)

잠언29:13절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표면적으로 보면, 부자-특히 재물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그 부자-와 가난한 자들 간의 삶의 격차는 매우 커서, 부자는 안락하고 사치스럽게 살지만, 가난한 자들은 더럽고 궁색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본 잠언은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선포합니다. 잠언의 제자들이 지혜를 얻는 대목입니다. 만약, 주님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자연히 상호존중, 배려의 태도를 갖게 되어 그에 합당한 질서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창조주를 전제하지 않는 세상 지혜와의 차이입니다. 13절은 22:2절에 주어진 교훈의 변형입니다. 다만, ‘부자와 가난한 자”(22:2) 대신 “가난한 자와 포악한 자”로 바꾸어 공의를 근거한 통치질서를 다루는 문맥(12-14)에 적합하도록 맞추었습니다. ‘눈에 빛을 주신다’는 말은 ‘생명을 주신다’는 의미(제유법)입니다. 그러나 ‘포악한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부자는 포악한 자로 변하여 법률과 제도를 통해 가난한 자를 수탈하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포악한 자는 결국 정당한 심판을 받게 되지만, 그 전에는 ‘압제하는 자와 압제 당하는 자’ 모두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수혜자입니다(마5:44-45). 만약 포악한 자가 자신의 좋은 삶은 오직 하나님의 관용에 기인함을 안다면, 그는 압제를 버리고, 가난한 자와 가치와 몫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이는 복음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로써, 세리장 삭개오가 회개한 예가 있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는 포악한 자를 경멸하거나 질투하지 말고, 그들조차 심판이 임하기까지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를 받고 있음을 깨닫고 주님을 경외하여야 합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6:36)

잠언29:14절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12-14절의 주제는 공의에 근거한 통치 질서의 필요성이며, 솔로몬은 ‘가난한 자를 성실하게 판단하는’ 통치자의 긍정적 이미지(14)를,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는 통치자’(12절)의 부정적 모습과 병치함으로 교훈의 효과를 극대화시켰습니다. ‘신원(伸寃)’에 해당하는 원문은 재판한다는 의미를 갖는 ‘쇼페트’입니다. 이 잠언이 왕의 직무로서 재판이나 판결을 예로 든 것은, 고대에 왕의 주요직무 중 하나가 백성들에 대한 공의로운 재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본 구절을 통해 사회의 모든 약자를 돌보라고 임명받은 왕에게, 그 임무를 부지런히 수행한다면 강력한 통치질서를 확립하게 됨을 약속합니다. 거짓 증거를 듣는 왕과 대조적으로, 이 현명한 왕은 증인들의 성품을 주의깊게 살펴 정의와 진리를 확립하는 지혜자입니다. 또한, 14절은 ‘포악한 자에게도 빛을 주신다’(13절)는 말이 초래할 수 있는 오해를 없애고, 왕이 힘없는 자들이 압제당하는 현실에 관심을 쏟아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도록 동기유인을 제공합니다. 솔로몬 통치 초기에 한 아들을 갖고 서로 다투는 두 창녀의 소송을 성실하게 재판하자 솔로몬의 왕위는 일생 견고하였지만, 통치 말년은 우상숭배라는 거짓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많은 건축과 사치를 위해 무거운 조세와 부역을 백성에게 부과하였습니다. 백성들은 큰 불만을 갖게 되었고 왕국은 그의 사후 분열되어, 솔로몬은 자신의 잠언을 실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같이 세상 권세는 일시적이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나라에 좌정하시어 공평과 정의로 영원히 보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시편45:6).

잠언29:15절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15-23절은 하나님의 말씀(모세율법)을 통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대상으로 자녀, 백성, 종을 들면서, 중점은 인간의 죄성 억제입니다. 교육이 죄성을 제거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반복적인 교육은 죄성 억제에 큰 효과가 있습니다. 15절은 본능대로 살아가게 내버려둔 자녀는 하나님이 세우신 도덕질서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그 결과 부모에게 닥쳐오는 불행(욕과 수치)을 지적합니다. 어리석음을 벗어나서 지혜롭게 되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교정이 요구되는 이유이며, 종종 ‘채찍과 꾸지람’이 수반되야 합니다. 잠언이 체벌의 필요성을 반복하여 언급한 근거입니다. 만약, 부모가 교정이 힘들어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 자녀는 제멋대로 자라나서 가정에 욕을 끼칠 것입니다. 잠언 29장은 3절에서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지혜로운 아들을, 15절에서는 ‘어머니’를 부끄럽게 하는 어리석은 아들을 대조시켜, 훈육이란 수고의 열매의 아름다움을 보게 합니다. 다윗은 훌륭한 왕이었지만 자녀들을 한 번도 꾸짖지 않고 제멋대로 자라도록 하여, 첫째, 둘째, 셋째가 모두 비명횡사하였습니다. 야곱도 12 아들을 낳고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여 그 가정에 근친상간, 집단학살, 질투, 인신매매(요셉), 불효, 속임이란 불행한 사건들이 발생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인생 채찍과 사람 막대기로 징계하여 순종을 배우게 하셨고, 결국 희생할 줄 아는 유다와 용서할 줄 아는 요셉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양육은 쉽지 않으니,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들은 자녀의 감정을 건드려 화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잘 기르십시오.”(엡6:4,현대인의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