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5)- 결혼 생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
1700년 전 북아프리카의 결혼 생활도 순탄치는 못했습니다. 고백록의 한 대목입니다: “어머니의 경우보다 더 온유하고 점잖은 남편과 같이 살면서도, 남편에게 맞아서 얼굴이 퉁퉁 붓고 멍이 들어 다니는 부인들도 많았는데…” 모니카는 그런 부인들과 사적으로 대화 시, 남편들의 흉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 경우, “혼인 서약을 하고 성혼이 선포된 후에는, 부인들은 그것을 자신들이 종이 되었음을 선포한 것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면서 농담을 섞어 진지하게 훈계한 뒤, 그들의 혀를 꾸짖고, 그렇기 때문에 늘 자신의 처지를 명심하여, 교만해져서 주인에게 대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의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니카가 충동적으로 충고한 것은 아닙니다. 그 부인들은 모니카의 남편이 성질 사납고 화를 잘 내는 분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남편 파트리키우스가 자기 아내를 때렸다거나, 가정불화가 단 하루라도 있었다는 소문이 나돈 적도 없었고, 그런 일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어떤 증거도 자신들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놀라워 하면서, 그 비결이 무엇인지 넌지시 물어보았기 때문입니다. 모니카의 비결을 따라 살아간 부인들은 그녀의 말이 맞았음을 확인하고서 감사하였고, 그 비결을 따라 살지 않았던 부인들은 계속해서 남편에게 눌려서 고생하며 괴로운 삶을 살았다고 어거스틴은 기록합니다. 모니카의 비결은 사도들의 가르침(엡5:22-24;벧전3:1-6)을 그대로 실천한 열매로서, 인간 관계의 갈등이 생겼을 때, 주님의 가르침이 해결의 비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4).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6)- 결혼 생활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시편37:5,새번역)
고백록에서 새삼 느낀 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남에 대한 호기심과 수군거림이 존재하며, 특히 여자가 시집 가면 그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고 보여집니다. 인간의 타락을 웅변하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임을 잘 아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을 신뢰하고 선을 행하면서 온유한 심령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일하시고 이윽고 화평의 열매가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약3:18). 모니카의 시어머니 역시 악의적인 하녀들의 수군거리는 말을 듣자, 처음에는 며느리를 좋지 않게 보시고 화를 내었지만, 그녀가 인내와 온유함으로 잘 참아내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자 화가 누그러지셔서, 자기 아들을 불러, 하녀들이 자기와 며느리를 이간질시켜, 가정의 화평을 어지럽혔으니 벌을 주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남편 파트리키우스는, 모친의 당부도 있고, 이후 집안 사람들끼지 화목하게 지내게 하려면 적절한 징계를 통해서 가정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뒤, 모친이 지목하였던 하녀들에게 매질을 하였고, 또한 시어머니는 앞으로 자기에게 잘 보이려고 며느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험담을 하면, 이 같은 벌을 받게 될 것을 각오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자 험담이 사라지고 눈에 띄게 사이가 좋아져서, 서로를 위하며 화목하게 살아가게 되었다고 하니, 모니카의 지혜로운 행실은 우리의 가정 생활, 결혼 생활,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귀감이 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잠언29:10절
“남을 피 흘리게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흠 없는 사람을 미워하지만, 정직한 사람은 흠 없는 사람의 생명을 보살펴 준다.”(새번역)
‘피 흘리게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자기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자라도 해치는 자를, ‘흠 없는 사람’이란 의로운 삶을 추구하는 자를 말합니다. ‘흠 없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려고 매우 노력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 전형이 욥입니다. ‘미워하다’에 해당하는 원문은 상대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 증오심을 갖는 감정상태로, 실제 공격하여 해를 끼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아벨을 질투하여 살해한 가인의 모습입니다(창4:1-8). 이들이 왜 의인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겠습니까? 의인의 책망과 비판은 가시 같아 불의한 이익이 침해받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잡아 죽인 이유이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무슨 짓이든지 행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의인의 고난은 불가피하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의인은 반드시 하나님이 보살핌과, 자신의 바른 삶에 대한 보상을 믿고, 고난 중에 하나님의 뜻을 행한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고난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난이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10년의 도망자 생활에서 오히려 원수 사울을 두 번 살려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거저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말고의 귀를 붙여주셨고, 십자가에서 원수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신 뒤, 그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냥 거저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활을 통해 ‘주님의 의’를 빛 같이 드러내셨습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여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시편37:3,새번역)
잠언29:11절
“어리석은 사람은 쌓인 분노를 다 터뜨려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 분노를 억제한다.”(새번역)
‘분노’의 원어는 ‘루아’입니다. ‘루아’는 ‘호흡, 바람, 영, 생각’을 뜻하며, ‘분노’는 통상 ’아프’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마음’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즉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만 지혜로운 자는 마음을 다스리며 때와 상황에 맞추어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분노의 때가 가장 마음을 통제하기 어려워 바보와 현자를 결정적으로 구분짓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구약학자 롱맨 3세의 말입니다: “바보들은 잘 들으려고 하지 않기도 하지만, 확실히 말이 많다. 그들의 말은 문제를 일으키고 듣는 자들은 동요한다. 그들의 감정은 지성이 결여되어 있고, 그들의 감정은 종종 부적절하게 표현됨으로,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이에 반해, 지혜자는 냉철하기에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만 입을 연다. 그들은 또한 바보들의 말로 야기된 어지러운 상황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다.” 사실 어리석은 자는 환경이 조금만 어렵고 위험해져도 안절부절못합니다. 가나안 접경에 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떠오릅니다(민14:1). 그러나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깊은 호수나 바다 같아, 쉽게 동요되지 않고, 매사에 신중합니다. 어리석은 백성들과 대적하는 고라의 무리에 직면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한 후 행동하는 모세가 좋은 본보기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가 지혜롭다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준비하신 해결책을 찾아 나섭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인정 받은 이유입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여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시편37:3,새번역)
잠언29:12절
“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
12-14절의 주제는 공의에 근거한 통치 질서의 필요성입니다. 12절은 통치자의 부정적 이미지를, 14절은 긍정적 이미지를 각 다루며, 13절은 중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선포합니다. 이 구절은 ‘관원’으로 묘사된 통치자가 거짓말에 귀를 기울일 경우 나타날 사회적 혼란을 보여주고, 선악을 분별할 지도자의 통치 능력을 요청합니다. ‘관원’이란 ‘다스리다’는 의미를 내포하여 ‘통치자’로 번역 가능하고, ‘들으면’은 ‘듣고 따르다’는 의미입니다. ‘하인들’은 ‘섬기다’를 뜻하는 분사 형태를 번역한 것이나, 노예가 아니라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관직에 있는 자들, 즉 ‘신하’를 지칭합니다. 이를 통해 솔로몬은 국가의 통치자가 거짓말을 분별하지 못하면 신하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며 오직 악인들만 남게 된다는 경고를 합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적합합니다. 잘못된 통치의 출발점은 통치자의 느슨한 윤리적 사고와 행동임이 새삼 강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시편에서 통치자 다윗은 자신의 왕국에서 속임과 사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을 결단하고, 신실한 자를 살펴 함께 통치하려는 의사를 시로 피력합니다: “흠 없이 정직한 자들이 나를 섬길 것이다. 속이는 자는 내 집에 살지 못할 것이며 거짓말하는 자도 내 앞에 서지 못하리라. 내가 이 땅에서 매일 악인들을 제거할 것이니 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여호와의 성에서 추방될 것이다.”(시편101:6b-8 현대인의성경). 책임 있는 자리에 앉게 되면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의 성취를 사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잠언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