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4/02/19-23)

아브라함의 시험과 믿음

‘땅, 민족, 복의 근원’의 약속(창12:1-4)을 받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테스트 당했습니다.(1)’땅’에 관한 시험입니다. 가나안에 도착하자 척박한 남방 땅만 남았고, 곧이어 백년만의 대 기근이 찾아 왔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큰 수모를 당한 뒤 올라와서,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은 이방인의 땅에서 100년을 살 동안 감사로 단들을 쌓았습니다. 왜일까요? (2)’민족’에 관한 시험입니다. 약속의 땅에서 여종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99세에 늙은 사라가 낳을 이삭과 언약을 맺겠다고 하셨을 때, 그들은 웃었지만 순종하였습니다. 왜일까요? (3) ‘복의 근원’에 관한 시험입니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을 내렸지만, 아브라함에게는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는 명령 받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향하였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친구로 불릴 정도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약속의 영적 성격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약속의 본질은 자신의 후손으로 오실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지으실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이었습니다(요8:56-58). 이 소망을 갖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200년 동안 가나안 땅에서 땅 한 평 사지 않고, 장막을 치면서 살아갔습니다(히11:9,10). 가나안 땅, 이스라엘 민족 이 모든 것은 그 영원한 기업의 모형임을 안 것이죠! 그러므로, 척박한 땅, 위협적인 원주민들, 기근 등에도 불구하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부르고, 그분이 지으실 영원한 도성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살아갔습니다 (히11:16).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30)

잠언28:23절
“아첨하는 사람보다는 바르게 꾸짖는 사람이, 나중에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새번역)

23절은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꾸짖는 부모나, 잘못가는 친구에게 충언하는 경우를 말하지만, 그 문맥은 재물을 다루는 내용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당한 과정을 생략하고 성급하게 재물을 벌려고 하면 잘못되어, 형벌을 받는다는 교훈인 20절과 함께 생각해 보면, 두 종류의 친구가 떠오릅니다: 그릇 행동하는 친구에게 미움을 받을 각오로 충고하는 사람과 아첨하여 그 행동을 더욱 강화시키는 사람입니다. 또한, 인색하고 재물 얻기에 급급한 부자에게 빈궁이 찾아온다는 경고인 22절과 함께 생각해 보면, 그런 부자를 바르게 꾸짖어 행동을 고치게 하는 경우나, 혹은 듣기 좋은 말만 하여 미움받지 않으려는 경우입니다. 비록 삭개오 같은 예외도 있지만, 인색한 부자가 쓴 소리를 듣고, 회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기대할 수 없습니다(마19:22-26). 이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눅16:19-31)의 핵심적 가르침입니다. 그 부자는 문 앞의 거지 나사로를 돌보지 않고 죽었습니다. 죽은 뒤 음부에서 고통 당해 보니 형제들이 생각났고, 나사로를 보내 이들을 깨우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난다 하더라도 권함을 받지 못한다고 거절당합니다(16:19-31). 실로, 상대방이 싫어하지만, 그를 위해 충고하는 사람은 좋은 친구입니다. 그러나, 이런 친구는 희귀합니다. 오히려 성경을 읽고 스스로 깨닫는 경우가 더 많아 보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만들어 놓으신 이유 중 하나이며, 성경 만큼 좋은 친구는 없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잠언1:7) 

잠언28:24절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친히 십계명을 반포하셨습니다(출20장). 그 5번째가 부모 공경 계명으로, 지키는 자에게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이 약속되었습니다. 그렇면, 부모 공경 계명의 함의는 무엇이겠습니까? 잠언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말씀으로 뒷받침하고 있으며(19:26; 20:20; 28:24; 30:11, 17), 그 하나가 오늘 본문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은 제 8계명이며, 이로써 보호하려는 대상은 부모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입니다. 문제는, 타인도 아니고, 부모의 것을 도둑질할 경우입니다. 그 결과는 치명적입니다. 먼저, 부모의 재물에 피해를 입히고, 다음으로, 부모자식 관계라는 가장 친밀한 관계가 파괴됩니다. 더구나, 본문은 도둑질한 자가 ‘죄가 아니라’는 말을 적었는데, 그런 자녀들은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조차 없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들은 가족의 일원으로 자신들에게 속한 것을 단순히 가져간 것뿐임을 강변하여도, 그들이 타인-비록 부모라 하더라도-에게 속한 것을 훔쳐간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 자녀들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물론, 부모공경의 계명도 어긴 것이며, 또한, 탐욕을 내서 부모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므로, ‘탐내지 말라’는 계명과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계명도 어긴 것이 됩니다. ‘탐하는 자는 곧 우상숭배자’이기 때문입니다. 형법은 자식이 부모의 재물을 절취할 경우 형을 면제시키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5:5).

잠언28:25절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부와 관련하여 ‘주님을 의지하는 관대한 자’와 ‘자기를 의지하는 인색한 자’의 차이를 다루는 25-27절은 주님과의 바른 관계라는 주제로 되돌아가서, 경건 대 불경건” 즉, 주님과의 관계가 행위의 원천임을 교훈합니다. 25절은 ‘욕심이 많은 자’와 ‘주님(야훼)을 의지하는 자’를 대조합니다. 욕심이 많은 자는 불경건하며, 타인과 늘 다투는데, 탐욕으로 사회적 경계선을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자는 선을 지켜 다툼 없이 풍족한 삶을 누립니다. 그 비결은 주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경건이란 정직한 노동, 만족, 섬김, 베품 등을 포함하며, 그는 주님을 경외하여 그분이 정하신 도덕적 경계를 견고히 하고, 자신과 타인을 정직하게 평가하여 도착된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웁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일생이 좋은 예이며,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알려면 이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읽어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았는데, 주님을 의지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 모두는 풍족한 삶을 누렸고, 성경은 그 원천이 언약의 주님임을 밝힙니다(창24:1;26:29;39:5). 그러나 ‘경건과 복’의 순서가 바뀌면 안됩니다. 사탄은 재앙을 염려하는 욥의 불완전한 믿음을 보고 주님과 욥을 싸잡아 비판하였습니다. 욥이 극한 시험을 이겨내자, 주님은 욥의 노년에 배나 축복하셨고, 욥은 장수하고 부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만, 욥은 친지들이 ‘케쉬타와 금고리 하나씩’을 각각 준 것을 미천 삼아, 갑절의 부를 일구어내는 근면과 기술의 소유자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6:6).

사무엘 마펫 선교사
로마서12:17절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사무엘 오스틴 마펫 선교사(1864-1936)는 26세에 미국 북장로교의 파송을 받았습니다(1890). 1893년 복음의 불모지 평양을 선교지로 삼고, 평양에 도착하자 곧 “여러분 예수 믿고 천국에 가야만 합니다”라는, 서투른 한국말로 복음 전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유교 전통과 미신에 젖은 조선인들은 거부하고 대신 박해를 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후에 목사가 된 건달 청년 이기풍이 벌인 폭행 및 상해사건 이었습니다. 그는 마펫 선교사를 못마땅하게 여겨 발로 옆구리를 차서 고꾸라지게 한 것은 물론, 짓고 있던 예배당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마펫 선교사의 턱에 돌을 던져 피투성이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겁이 나자 원산으로 도주하였으나, 마펫 선교사는 참고 이기풍을 관가에 고소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이기풍이 자신의 행동을 회개하고 평양으로 돌아와 용서를 빌자, 마펫 선교사는 용서하고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마펫 선교사는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평양신학교를 세우자 이기풍을 1기생으로 입학시켜. 한국인 최초 일곱 명의 목사 중 한 분이 되는 명예를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 파송하였습니다. 그러나, 1934년 70세에 은퇴 후에도 조선에 남아 일본의 통치에 항거하다가 미국으로 추방되었지만(1936년), 거처할 곳이 없었습니다. 이때, 지인의 배려로 남가주 몰로비아 시에 있는 집차고를 개조한 방을 얻어 조선을 기리며 선교사의 삶을 마쳤습니다(1939년). 주님과 조선민족을 사랑하여 일생을 드린 분으로 본이 됩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눅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