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4/02/26-29)

누가복움6:29a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누가복음6장27-36절은 원수 사랑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악에 대하여 사랑, 선행, 축복, 기도로 갚으라는 말씀은 언뜻 이해 되지 않지만,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심판을 전제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모욕적인 상황을 주님 심판에 맡기고 오히려 선을 베푸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원수가 되는 4가지 예 중 하나이며, 특히 박해 받을 때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첫째는 빰을 치는 자입니다. 이것은 모욕의 의미를 갖습니다만, 이때 ‘저 빰도 돌려대라’고 명령하시는 취지는 모욕 당하는 상황에서 맞서 싸우지 말고 온유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는 취지입니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마침내 땅을 기업으로 받기 때문입니다(시37:11;마5:5). 그러나 온유는 겁먹은 태도와는 다릅니다. 유대인들이 체포된 주님에게 침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고, 조롱하자, 주님은 그들에게 보복하지는 않았지만, 태도가 건방지다고 손바닥으로 친 자에게는 때린 정당한 이유를 당당히 되물었습니다(요18:23). 위압적인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도 그를 위해 선한 증거를 주셨고, 로마 군인들의 조롱과 채칙에는 인내하셨지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는 주님을 그대로 본받아 저항하지 않고 온유하게 수용하였으며, 그 모습을 본 많은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250년이 흐르자 기독교는 로마제국을 정복하였습니다(AD325). 이 반면 로마에 무력으로 저항한 유대인들은 AD 70년, AD117년, AD 136년 세번에 걸쳐 철저히 진압됨으로, 유대 땅을 잃고 전 세계로 흩어졌다는 역사 또한, 위 말씀을 뒷받침합니다.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6:28b)

잠언28:26절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26절은 25절의 ‘신뢰’를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까지 확대합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자는 안전을 확보하려고 이기적인 지혜에 기대지 않습니다.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 본 구절은 ‘자기의 마음(or 의견, 생각)을 믿는 자’와 ‘지혜롭게 행하는 자’를 대조하였습니다.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주님 혹은 현자의 교훈에 의해 인도 받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바보들만 모인 낙원에 살고 있어서, 다른 생각을 말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대조적으로, ‘지혜롭게 사는 자’는 자신의 총명을 신뢰하지 않고(3:5,7), 하늘의 계시인 성경을 의지합니다. 인간은 ‘자기 중심성’의 한계로 매사에 공정하고 균형 있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결정을 내릴 때, 성경 말씀에 비추어 항상 재검토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잠언은 자신의 꾀를 믿지 말고 성경의 가르침 배후에 서 계신 주님을 의지하도록 늘 깨우칩니다(22:29). 만약 그런 가르침과 믿음이 결여 되면, 아무리 유능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어리석은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왕이 좋은 예입니다. 솔로몬이 자기 지혜를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자, 미련하게 되어 우상숭배로 나아갔습니다. (8:5;19:8).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생각(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은 ‘지혜롭게 행하는 자’로서 구원을 얻기 때문에, 벌 받을 일 없습니다(1:32-33). 따라서, 반드시 배워 마음에 담아 놓아야만 합니다.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잠언3:5,새번역).

잠언28:27절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은 모자라는 것이 없지만, 그를 못 본 체하는 사람은 많은 저주를 받는다.”(새번역)

본 잠언의 주제는 ‘자비와 풍부한 삶’ vs ‘인색과 부족한 삶’의 상호성으로, ‘탐욕을 품은 삶과 경건한 신뢰의 삶’의 결과를 다룬 28:25절을 이어 교훈합니다. 27절에서 ‘자비한 자’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표현되었고, 그들의 부족함 없는 삶의 비결은 25절에서 밝힌 ‘주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물론, 주님의 뜻을 행하였다고 당장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주님께서 갚아주심을 믿고(마6:4,6), ‘지금 도착되어진 것들에 만족해 합니다. ‘경건에 기초한 자족’은 탐욕스러운 인간에게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부호 록펠로도, 조금 더 가졌으면 좋겠다고 토로했을 정도로, 탐욕은 늘 모자르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혜(마음,생각)을 의지하는 인색한 자(26절)가 가난한 자들을 못 본 체하고 창고문을 닫아버림은 당연합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주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가르십니다. 한 쪽은 형제 중 가장 어렵고 미천한 자를 도와 주고, 다른 쪽은 그런 자들을 못 본 체한 신자입니다. 전자는 축복받아 모자람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고, 후자는 저주를 받아 영벌에 처해집니다. 모두 놀라니, 주님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고,…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마25:40,45)고 대답하셨습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눅16:19-31)의 가르침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잠언28:26)

잠언28:28절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

잠언28:12-28절은 “‘부’의 지배와 획득 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르치는 단락으로, 28절은 결론입니다. ‘의인’과 ‘악인’의 기준은 하나님의 뜻인 율법의 준행 여부입니다. 창조와 섭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으뜸 가는 지혜이며, 그분의 뜻이 율법(십계명)으로 계시되었기에, 잠언은 율법을 행하는 자를 의인과 지혜자로 규정짓습니다. 지혜자는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을 준행하지만,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율법을 버리고 자신의 뜻(생각)대로 살아 갑니다. 이같이 ‘의로움’과 ‘악함’은 각각 지혜와 미련함의 윤리적 측면입니다. 전단은 하나님의 율법에 ‘귀를 돌려 듣지 않는’ 어리석은 악인이 권력을 잡아 학정을 하는 시대를 말하며, 므낫세의 55년 통치가 그 예입니다. 우상숭배는 물론, 선지자 이사야를 포함하여 무죄한 자를 또한 많이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워 숨게 되는데, 수탈과 권력의 남용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그 반면 그들이 멸망하면 숨어 있던 의인들이 나타나고,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의인들을 통해 사회는 발전되고 평화는 정착되며 공공의 이익은 크게 증진될 것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악인의 패망을 보고 기뻐 외치고, 새롭게 권력을 잡은 의로운 통치자의 개혁을 생각하고 즐거워하기 마련입니다(잠11:10). 지혜는 지혜자 개인은 물론 공동체에도 큰 혜택을 끼칩니다. 공동체의 번영 없이 개인의 번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와 정부를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