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길과 믿음의 길(1)
어느 인류학자가 뉴기니의 여자들에게 남편의 이름을 묻자, 비명횡사한 남편들을 읋었습니다: “첫 남편은 엘로피족 침략자들에게 죽었고, 두 번째 남편은 나를 탐내던 남자에게 죽었고, 그 남자가 세 번째 남편이 되었는데, 두 번째 남편의 동생이 죽여서 복수하였어요.” 아담 이후 노아의 대홍수까지 인간의 역사도 그러했습니다. 그 때는 엄청난 혼란과 폭력의 시대였습니다. 그 원인의 하나로 하나님의 아들들(천사들)이 사람의 딸들을 마음대로 아내 삼은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천사의 영역과 인간 영역이 결합되었고, 네피림 즉,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이 고대의 유명한 용사들이었으나, 동시에 타락한 자들로서 자신의 욕망충족을 위해 살아간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부패와 폭력이 가득찬 세상에 대홍수를 보내사 심판하심으로 멸망시켰습니다. 바벨탑 사건도 같습니다. 홍수 후 노아의 자손들이 번성하자, 모여서 높은 탑을 쌓아서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사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세상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곳이지, 하나님은 불필요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모여 만든 도시와 국가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인간 사회에는 권력투쟁만이 존재하고, 살아남은 권력은 항상 부패하였음을 역사는 증언합니다. 이에 반하여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길을 가르칩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걸어간 그 길입니다. 한편, 창세기는 이스마엘이나 에서와 같이 세상에 동화된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이야기도 적고 있음을 유념하여 바른 믿음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2:1).
세상의 길과 믿음의 길(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창12:2, 새번역)
아브라함 등 족장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 분을 경외하는 믿음의 삶이었습니다. 이들은 에덴 동산이 아니라, 혼탁하고 위험하며 이기적인 세상에서, 그러나 세상과는 다르게 살아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그분의 계명을 간직하여 그 계명의 길로 갔습니다. 세상이 보면 경건하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자들이요, 하나님을 만나려면 이분들을 먼저 만나야만 하는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실로, 하나님 나라의 2인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약속과 함께 고향을 떠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약속에는 땅으로 상징되는 물질의 축복, 이름으로 대표되는 명예의 축복, 민족이란 말로 표현된 자손의 축복, ‘복의 근원’으로 언급된 생명나무의 축복을 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도 몰랐지만 묻지도 않고 가나안 땅으로 떠났습니다. 물론, 지금 가고 있는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그런 사실은 아브라함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땅에서 자신과 후손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였습니다. 많은 조사를 한 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은 가나안이라고 해석한 것뿐입니다. 오랜 여행 끝에 도착한 그 곳에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확증하였습니다(창12:7). 그때 아브라함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 아브라함의 방식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대접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우리도 그러해야만 합니다.“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31)
잠언28:21절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재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은 빵 한 조각 때문에 그런 죄를 지을 수도 있다.”(새번역)
21절은 재판의 공정성을 강조합니다. 전반부는 공정한 결정과 판결을 촉구하고, 후반부는 재판 과정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뇌물을 콕집어 경계합니다. ‘빵 한 조각’이란 작은 이익을 말하며, 한 끼의 식사대접으로도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깨우칩니다. 많은 사람이 뇌물에 약합니다. 사사요 선지자인 사무엘이 늙자 그 아들들이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였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몰락하고, 사울의 왕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형법은 뇌물죄란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129조)라고 규정하여, 뇌물죄의 성립은 ‘공무원 또는 중재인’, ‘직무와 관련성 그리고 ‘대가 관계’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규정의 구체적 적용은 해석에 달려 있어, 재판관의 양심과 독립성은 보장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헌법에 이를 보장하는 규정(103조)을 두었으나, 실제의 재판과정에 존재하는 압력과 유혹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따라서, 근본적인 힘은 법관 자신의 신념에서 나옵니다. 만약, 그 법관이 주님을 경외한다면 그 이상의 자격조건은 없을 것입니다. 요사이 연일 보도 되었던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의 경우 형법상 뇌물죄와는 관련성이 없으나, 대통령과 국민을 위해 냉정하게 거절해야만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신부들로서, 우리를 들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려는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정직하게 맡겨진 직무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계1:6). 마지막 심판은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낼 것입니다. “감추어진 일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일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눅12:2, 현대인의성경)
잠언28:22절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선한 눈을 가진 자(22:9)에 비추어, ‘악한 눈이 있는 자’란 인색과 탐욕으로 재물 쌓기에 급급한 자입니다. 통상 재물을 쌓으면 부자가 되지만, 후반절은 ‘빈궁이 임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염두에 둔 교훈입니다. 잠언은 “재물은 사라지는 법, 독수리처럼 날개가 돋쳐 날아가 버린다”(23:5, 현대인의성경)는 사실을 익히 알고, “부자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자제하는 지혜를 가져라”(23:4)고 합니다. 더 나아가, 전도서는 죄인들에게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에게 넘겨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냅니다(전2:26). 신약에서의 진정한 재산은 하나님 나라를, ‘빈궁’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함을 뜻합니다. 여기 두 종류의 쌓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해 지상에 재산을 쌓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는 문제가 되는데, 탐욕 때문에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할 우려가 심히 큽니다(눅12:13-21). 다른 하나는, 자신을 위해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선행을 뜻하며, 재물은 손해를 보지만, 현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내세에서 영생을 상속받는 자들입니다(막10:28,29). 주님을 영접한 세리장 삭개오가 대표적이나, 이런 은총은 부자일수록 받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근심하며 떠난 부자 청년처럼(막10:17), 모든 소유를 팔아 필요한 자들에게 주고 홀가분하게 당신을 쫓으라는 권유를 들으면, 심히 근심하면서 살다가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정말 어렵다.”(눅18:24,현대인의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