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4/2/5-8)

고린도후서11:3절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사탄은 에덴동산의 관리자 하와를 유혹합니다. “왜 선악과를 따서 먹지 않냐? 그것에는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 네가 만약 선악과를 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하와는 속아넘어 갔습니다. 선악과는 아담과 하와가 주님을 사랑하는지, 동산 관리인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 삶에 만족하는지를 시험하는 도구였습니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2인자였고, 가정을 이루어 즐겁게 살아갔으나, 사탄과 대화 후 불만족 하게 되었습니다. 풍부한 과일과 좋은 기후가 보장되었기에 먹고 사는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피조물이 어떻게 하나님처럼 될 수 있겠습니까? 전혀 없습니다만, 아담과 하와는 마귀에게 속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이제 마귀의 시험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마귀의 목적은 만유의 주님과 그분의 복음을 떠나게 함으로 인간으로 죄사함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지는 자는 이기는 자의 종입니다. 가인은 질투에 져서 살인죄의 종이 되었고, 가룟 유다는 탐욕에 져서 배신자가 되었고, 제자들은 두려움에 져서 주님을 버렸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주님을 고백하여도, 고백과는 다르게 세상을 따라간다면 역시 치명적인 패배입니다. 어떻게 유혹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시119:11). 주일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자 결심하십시오. 이것이 경건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119:105)

잠언28:18절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이 잠언은 의인(의로운 통치자)과 악인(악한 통치자)의 특징적 삶을 대조합니다. ‘성실하게’로 번역된 히브리어 ‘타밈’은 ‘완전한, 온전한’을 뜻하며, ‘주님을 모신 신실한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후단의 ‘굽은 길’은 ‘비틀어진 길들’이란 의미로,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태도를 총칭합니다. 세상이란 하나님의 길이 자신의 이익과 맞으면 걸어가고 틀리면 여지 없이 불순종의 길을 택하기에 구불구불한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계명의 한계를 넘어 이웃을 해치지 않도록 일관성 있게 걸어가기에, 그 길은 곧고 바릅니다. 따라서 의인의 길과 세상의 길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문제는, 자기 부정이라는 좁은 길을 택하는 사람은 그 수가 적어, 불순종하는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시기와 박해를 받게 된다는 점입니다. 누가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겠습니까? 본 잠언은 구원자가 하나님이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모세율법에 따르면, 불의를 당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을 듣는 사람은 반드시 도움을 줄 의무를 규정합니다(신22:27). 오늘날 말하면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요! 하물며, 자비롭고 정의로우신 주님께서 압제 당하는 의인의 외침을 듣는다면, 어떻게 그리고 신속히 도와 구원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는 이런 원리를 쉽게 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편, 악인은 넘어져 패망하기 마련인데, 굽은 길로 가다보면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이나 함정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귀결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언18:10).

잠언28:19절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따르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28장의 3번 째 단락(28:19-24)은 교훈의 방향을 수직축(주님과 통치자)에서 수평축으로 이동하여, 부를 성급하게 이루려는자와 열심히 일하는 자 사이를 비교합니다. 18절의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19절에서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자로,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방탕을 따르는 자’로 구체화되어집니다. 본 절에서 솔로몬은 고대 농업 사회를 전제하여 개미와 같은 근면과 지성을 갖고 삶의 근본되는 토지를 경작하라고 충고합니다. ‘토지’란 자신의 경제적 기초가 되는 기름진 땅을 말하고, 타락한 아담의 후예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얻는 수단을 뜻합니다(창3:17-19). 이 반면 ‘방탕을 따르는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가치없는 것들을(fantasies) 추구하는 자’를 말하고, 이는 성급하게 재물을 벌려는 태도나 도박처럼 정당한 노력 없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모습을 지칭합니다. 이들은 삶에 필요한 식량을 얻지 못하여 찌들게 가난하게 될 것인데,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생활양상에 대한 통계도 이 교훈을 뒷받침합니다. 본 잠언과 거의 유사한 12:11절은 ‘궁핍함이 많다’ 대신 ‘지혜가 없다’로 기술하여, 이들은 분별력이 결여된 자들임을 보여줍니다. 타락 이후에는 물론, 에덴 동산에서조차 주님은 정직한 노동을 요구하는 창조 질서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은 그분의 뜻을 알기에 뜻밖의 횡재를 얻어 큰 부를 이루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산업이 뿌리를 내리고 맺어지는 열매로 부요한 삶을 이루려고 합니다. 분별력 있고 지혜로워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밭을 가는 사람은 먹을 것이 넉넉하지만, 헛된 것을 꿈꾸는 사람은 지각이 없다.”(잠언12:11, 새번역).

잠언28:20절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20절은 경제 생활과 관련한 지혜를 계속 제시합니다. ‘충성된’에 해당하는 원어 ‘에무노트’는 ‘견고함, 확실함’을 뜻하는 ‘에무나’에서 파생되었으며, 주님 앞에서 성실 근면하게 사업 혹은 일에 임하는 자세를, ‘복’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뻬라코트’는 ‘행복’ 또는 ‘번영’을 뜻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정직한 자의 삶은 고지식하여 성공과 거리가 멀 것 같지만, 솔로몬은 ‘복’ 즉 번영을 겸한 행복으로 충만한 삶으로 선언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축복 때문입니다. 후단의 ‘속히 부(富)하고자 하는’이란 ‘부(富)하기를 서두른다’는 말입니다. 잠언은 ‘부’나 ‘재물’을 주님의 축복으로 보아 긍정하지만, ‘부’를 인생의 목표로 삼은 뒤, 정당한 과정을 무시하고 탐욕에 사로잡혀 추구하는 행위는 잘못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추구하면 자연히 법률을 어기게 마련입니다. 범죄자가 얻는 수익에 대하여 모든 국가는 벌금이나 몰수형을 가지고 있어 이득을 가졌다 하더라도 원하는 바를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후단은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고 선언합니다. 좋은 예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여리고 성 전투에서 페르시아산 외투와 금덩어리 하나를 숨긴 아간입니다. 아간과 그 가족은 탄로가 나자 모두 돌로 처형당하였습니다. 잠언의 다른 구절도 그렇지만, 여기에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암시도 담겨 있습니다. 모든 부요의 원천은 주님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제자들에게는 노력한 만큼 얻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