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4/1/22-26)


(기도, 응답, 그리고 믿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빌립보 교회는 AD51년 경 사도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중 세워졌고, 자주옷감 장사 루디아와 그 가족, 점치는 귀신에게서 놓여난 여종, 그리고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 가족이 교인이었고, 목사는 의원 누가였습니다. 8년 후 사도 바울이 가이샤라 감옥(가택연금)에 있을 때 선교물품을 보내준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감사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그들도 여러 걱정 근심이 많았기 때문에, 사도는 감사의 태도를 갖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걱정 근심을 초월하는 마음의 평화가 응답으로 오니 염려말라고 권고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심을 믿어야 합니다(히11:6). 그때 우리 마음은 평화를 누리고 걱정 근심에서 놓여나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훈현 9단과 창하호 9단이 둔 6회 삼성화재배 결승 제3국으로 기억됩니다(2001년). 창9단이 조9단의 대마를 포위하여 사는 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기사들이 걱정할 때, 조9단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 한 집을 더 만들고 승리하였습니다. 조9단은 그 한 집을 이미 70 수 전에 보아두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70수 동안 조9단이 계산한 그 길을 한 수도 틀리지 않고 진행한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신뢰가 그렇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이겨내지 못할 상황은 없습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항상 기뻐하며 사랑(관용)을 베풀 힘의 근거를 갖습니다. 진실로 주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시46:1)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잠언28:12절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잠언28:12-28절은 “‘부’의 지배와 획득 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르치는 단락이며 12절과 28절은같은 내용으로, 본 단락의 서론과 결론입니다. 본문은 13-18절(주님과 통치자), 19-24절(수고하는자, 약삭빠른 자와 재물), 25-27절(주님을 신뢰하는 관대한 자, 인색한 자와 재물)의 3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잠언이 가르치는 지혜의 본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잠1:8). 지혜자는 그 가르침을 마음에 간직하여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을 준행하고,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그것을 버리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한편, ‘의인’과 ‘악인’의 기준은 하나님의 뜻인 율법의 준행 여부입니다. 그렇다면, ‘의로움’과 ‘악함’은 각각 지혜와 미련함의 윤리적 측면을 드러냅니다. 전단에서, ‘의인이 득의(得意)한다’는 것은, 의인이 바라는 통치가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들은 율법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자로서, 이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 국가는 번영하고 백성들은 행복을 누리며, 열방 가운데서도 영광을 얻게 됩니다. 열왕기와 역대 기자는 다윗, 솔로몬, 여호사밧, 히스기야 시대의 통치를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 후단은, 하나님의 율법에 ‘귀를 돌려 듣지 않는’ 어리석은 악인이 권력을 잡아 학정을 하는 시대를 말하며, 므낫세의 55년 통치가 그 예입니다. 우상숭배는 물론, 선지자 이사야를 포함하여 무죄한 자를 또한 많이 죽였습니다. 공동체의 번영 없이 개인의 번영은 없습니다. 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4/10)에서 도덕성과 능력을 갖춘 분들이 뽑히도록 기도하면서 투표해야 할 것입니다.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잠11:10)

잠언28:13절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에서 ‘죄를 자복한다’는 표현이 유일하게 등장하는 12절은, 하나님의 자비와 참된 회개를 요청합니다. ‘악한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은, 사람들 간의 관계, 일터, 그리고 일상의 삶을 망가트리는 매우 어리석은 짓입니다. 만약 악함이 공공연히 드러날 경우는 물론, 은밀히 행해지더라도 결국 형통하지 못합니다. 그런 운명을 역전시키려면, 자신의 악을 고백하고 악한 행동을 버렸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과 공동체의 자비와 동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웃의 허물은 덮어줄 수 있지만, 자신의 죄를 덮지는 못하고 다만 숨길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 같이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깨닫고 고백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시편19:12). 숨은 허물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타인의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만약 비판을 듣고 잘못을 인정한 뒤, 행동을 고칠 수 있다면 그는 복있는 사람입니다. 다윗과 삭개오가 그렇습니다. 다윗 왕은 밧세바와의 간음을 은폐하려고 충성스러운 장군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일년이나 숨겼으나 선지자 나단의 지적을 받자 인정하고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부자였으나, 주님을 영접하는 과정에서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는 비난을 받자, 즉시 회개하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고, 토색한 것들은 4배로 갚겠다고 주님과 사람들 앞에서 약속하였습니다. 교부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에 따르면, 훗날 그는 전 재산을 나누어주었고, 가이샤라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잠언28:14절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경외’로 번역된 원문은 두려움과 공포로 떤다는 의미를 갖는데, 전단을 직역하면, ‘늘 두려워 떠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모순어법이죠! 우리는 언제나 스트레스 없는 삶을 열망하는데, 어떻게 ‘늘 두려워 떠는 자가 복이 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두려움을 일으키는 대상에 대하여 사람들은 항상 깨어 대비토록 하여, 화를 미연에 방지 하거나, 또는 화가 닥쳐도 그 피해를  최소한에 그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그 반대입니다. ‘완악하게 한다’는 원어는 ‘마크쉐’로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할 때 보여주는 가혹한 태도를 지칭합니다, 소가 목에 힘을 주고 일하지 않으려고 버팅기는 모습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굳어 있으면 새로운 방법이나, 개선책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비록 개선책이 나와도 반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따라서 재앙을 당하고야 정신차리게 됩니다. 좋은 예가 모세를 통해 시현되는 하나님의 재앙들을 친히 겪어 보고도 마음이 굳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보내려고 하지 않는 바로의 모습입니다. 바로는 자신의 아들을 포함하여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잠언의 취지는 주님을 두려워(경외)하여 악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두려워 하는 자는 죄를 멀리하고 따라서 벌도 없기 때문에 사자처럼 담대합니다. 실로 경건한 두려움과 참된 행복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대조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굳어 있는 자는 재앙을 늘 두려워 하여 자기를 지킬 우상을 만드나 소용 없습니다. 늦어도 마지막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잠언28:1).

시편23편, 관계의 축복(1) – 목자되신 주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

시편23편은 다윗의 시로서, 하나님과 시인과의 관계를 “양과 목자”의 관계에 비유되어 있고, 출애굽사건과 광야의 경험, 그리고 영원의 삶까지 노래합니다. 시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 (가) 양과 목자(1-3절)-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섭리, (나)여행자와 동반자(4절)- 인생의 길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다) 손님과 연회의 주인(5,6절) – 언제나 풍성하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골리앗과의 전투, 사울의 집요한 추적, 피를 보지 않고 통일하고자 7년의 인내, 주변 국가들과 끊임 없는 전쟁, 압살롬의 반란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낸 다윗은 본 시를 통해 감사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고난 속의 노래, 밤의 노래는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경험하여 부르는 신비로운 노래입니다. 인생의 밤이 오면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구원하시는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일생만 놓고 보면 이 시와 그리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고, 부하를 죽이고 그 부인을 빼앗았으며, 가정을 파탄에 몰고 간 사람이며 결국 사망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한편 6절은 ‘살리로다’라고 통상 번역되지만, 히브리어 원문은 ‘내가 그 집에 돌아갈 것입니다’는 의미입니다. 즉 땅의 ‘길’, ‘골짜기’, ‘위협’이 끝날 때 영원한 하나님의 집으로 진정 귀환할 것입니다. 모두 죽었는데 어떻게 영원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활을 암시한다 하겠습니다. 다윗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서 죽은 모든 자들이 갖는 축복입니다.”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