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4/1/8-12)

(고난과 섭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하기에 눈앞의 결과에 흔들리지 말라는 교훈이자만, 만유를 통치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을 갖습니다. 17살의 요셉이 형제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 갔을 때, 요셉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물론 절망과 원한 등으로 심히 괴로워 하였을 것이나,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기 전에 400년 동안 이방의 객이 될 것이다’(창15:13,14)는 말씀 역시 간직하였습니다(시편105:17-19). 그는 애굽에서 93년을 살면서 그 말씀의 일부가 성취되었음을 확인하였고, 이스라엘 후손들이 애굽을 떠날 때 자신의 해골을 메고 나가라고 단단히 맹세시켰습니다(창50:24-26). 비록 요셉의 고난은 자신의 교만, 야곱의 편애라는 허물이 한 축을 이루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성취되었습니다. 우리도 같습니다. 고난이 닥칠 때 우리는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불신자들보다 더욱 힘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왜?”란 질문 말입니다. 불신자들은 재수 없다라든지, 전생의 업보 등으로 합리화 하겠으나, 신자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의문이 차 오르며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이때, ‘자신의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에 굳게 서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주님의 뜻)을 이루고 있다’(롬8:28)는 말씀과 함께, 요셉처럼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시험을 이길 지혜를 구하여 받을 수 있는 기도의 특권, 교회의 중보기도 및 위로가 있기에 든든합니다(약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잠언28:6절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성실히 행하다’는 말은 ‘흠 없고 완전하다-blameless and whole)라는 의미이며, ‘굽게 행하다’의 원어는 ‘굽은 길을 가다’이지만, ‘두 마음을 품다 or 두 길을 가다’는 뜻도 내포합니다. 본절은 ‘성실하게 행하는 가난한 자’와 ‘굽게 행하는 부자’를 대비시켜, 불의로 가득 찬 이 땅에서는 두 마음을 품고 굽은 길을 가는 자도 부자가 될 수 있는 반면, 성실하게 일하며 흠 없이 완전한 길을 가지만 가난하게 살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잠언은 ‘부자’ 혹은 ‘재물’을 긍정적으로 묘사합니다(10:15;14:20;19:7). 다만, 이 ‘재물’이 불의나, 교만과 관련되었다면 질타를 받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도덕과 재물이 서로 배타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무엇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잠언은 아무리 ‘부’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더라도, ‘올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에는 비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올바른 삶’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가난’을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에, 본절은 ‘나으니라-better’로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르고 성실하게 사는 부자’는 ‘올바르고 성실하지만 가난한 자’보다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습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이시영 선생은 수 조원이 되는 토지를 팔아 만주에 독립운동기지를 설립한 뒤 일생을 가난하게 산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가난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 길을 보고 선택한 사람은 비상한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얻었습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

잠언28:7절
“슬기로운 아들은 율법을 지키지만, 먹기를 탐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욕을 돌린다”(새번역)

자녀가 슬기로운지 여부는 그들의 행동의 효과, 특히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아야 합니다. ‘율법’의 원어는 ‘토라’이며, 모세율법이나 그것을 토대로 한 현자나 아버지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본절은 4절의 교훈과 함께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4절-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에 따르면, 율법에 대한 태도가 사람들을 평가하고 친구를 선택 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아들은 나쁜 친구를 선택하며, 부모를 욕되게 하고 가족의 결속을 깨뜨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7), 하나님은 그의 기도조차 역겨워 하실정도로 관계가 틀어집니다(9) . 이와 같이 율법은 친구 선택, 가족과 하나님과의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도자이므로,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시119:105)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우리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후단의 ‘먹기를 탐하는 사람들’이란, ‘완악하고 패역하여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는 신명기21:18-21절을 반영하는 표현입니다. 모세율법은 그런 자를 돌로 쳐서 죽이라고 규정하므로, 본절은 더나아가 ‘먹기를 탐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만 해도 정죄받는다’란 뉘앙스를 전달합니다. 어느 저명 인사의 가정은 모두 교회를 다녔지만, 주님의 말씀을 간직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저러한 사건으로 가정은 파탄났고 그 자녀는 마음 둘 곳이 없어 금지된 약물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정치생명이 끝난 것은 작은 일입니다. 아직도 그는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

잠언28:8절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리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잠언에서 재물은 좋은 것이며, 종종 지혜와 하나님의 축복의 표지로 생각되지만(3:9-10;10:15,22),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는 몇몇 사람들은 불법적으로 재물을 축적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불법적인 방법 중 하나가 돈이나 곡식을 빌려주고 중한 이자- 30%에 달함-를 받는 것입니다. 모세율법은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부과할 수 있지만,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이자 자체를 금지하였습니다(출22:25;신23:20). 그러나 이 규정에 위반하여 가난한 동족에게 중한 이자를 부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느5:7,8). 모세율법은 법을 집행하는 구체적인 기관이 없이 다만, ‘하지 말라’는 규정만 두지만, 집행자는 이스라엘 공동체이거나 하나님입니다. 본 잠언은 이자 금지 규정을 위반한 자는 재물을 빼앗겨서 가난한 자를 친절히 대한 누군가에게 주어짐을 교훈하는데. 그 배후는 하나님이고, 그분의 방법은 섭리이며, 섭리의 매개자는 하나님이 부를 위탁하실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본절은 가난한 자에게 관대함을 강조하는 잠언의 여타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11:24;28:27). 그러나, 만약 사업을 위해 이자를 지급하기로 약정하고 자본을 빌리는 경우는 허용되었을까요? 당연히 허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변리를 취하지 말라는 전제는 가난한 자들의 궁핍한 상황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랍비 힐렐은 사업을 위한 경우 모세율법에서 정한 규정의 예외라고 해석하여 이자를 받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잠언13:22).

(요셉과 하나님의 섭리)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시편105:16,17)

하나님은 기근이 발생하기 20년 전에, 4가지 목적을 위해 요셉을 종의 신분으로 애굽에 보내셨습니다. 첫째, 닥칠 기근에서 아버지 집안을 구원하기 위해. 둘째, 그 당시 전 세계를 상징하는 근동지역의 모든 백성들의 삶을 보존시키기 위해. 셋째, 구속사적 측면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는 아브라함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넷째, 영원의 차원에서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 사건을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종의 형체로 오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는데, 실로 요셉의 일생은 그 모형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을 밝히 드러내는 신구약 성경을 가진 우리와 달리, 정작 당사자 요셉은 불행의 이유나, 섭리 등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기약 없는 종살이였지만, 하나님은 범사에 형통케 하시고, 요셉은 보디발을 성실히 섬겨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자들도 요셉과 같이 타인의 인정을 받는데, 이는 그들이 주님의 신실하심을 본받아 살며, 부활의 소망과, 주님의 돌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책임감 있게 노예생활을 하자, 하나님은 요셉 때문에 주인 보디발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음을 성경은 거듭 언급합니다. 고난을 통과할 때 주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고난이 끝나는 때는 모르지만, 흰개미가 결국 4미터의 집을 지어내듯이, 주님께서 이 모든 조각을 모아 원하시는 집을 지어가시는 도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믿음 가운데 안식하십시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