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길)
역경이 닥쳐올 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불평하며 좌절하는 길, 또 하나는 주님의 섭리를 믿고 인내하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중,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하고 묻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의 믿음대로 이삭 대신 숫양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시험을 통과한 후에야 볼 수 있었습니다(창세기22:13-14). 따라서, 미래가 닫혀 있다 생각될 때도 주님은 이미 해결책을 준비해 놓으셨음을 믿고 신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1957년 한국유리공업㈜를 창업하신 고 최태섭 회장은 13년 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세계적 수준의 판유리를 생산하였지만, 약속을 어긴 동성판유리㈜와 사활을 걸고 3년이나 덤핑 경쟁을 하였습니다. 기도하시던 최장로님은 결국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 직원에게 현실을 솔직히 알렸습니다. 이에 직원과 경영진은 혼연일체가 되어 위기를 극복하였고, 상대 회사도 인수하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건설붐이 일어나 회사는 기사회생하였다고 합니다. 최장로님의 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굴곡은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여건과 상황에 따라 일희 일비하며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여건과 상황에 감추어진 뜻을 읽고 그 어려움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뜻을 쫓으면 이익도 얻을 수 있지만, 이익만 쫓는 사람은 뜻도 이루지 못하고 이익도 얻기 힘들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무언가를 포기하면 그보다 훨씬 큰 보답이 머지 않아 뒤따른다는 믿음, 그것은 바로 나의 인생체험에서 나온 것이다”(최태섭 사랑에 빚진자 99-105). “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여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 (시편37:3)
(아담과 아브라함)
하나님은 지으신 천지만물을 보시고 심히 좋으셨습니다. 이는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이란 플랫폼을 통해 인간이 각종 선을 생산할 것을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아담을 이주시키셨습니다. 에덴 동산은 생명 나무를 가진 아름다운 정원이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 나무의 열매에 관한 특별 금지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때 아담은 순종이라는 특별한 선을 창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으나, 오히려 불순종하여 세상에는 죄와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요구하는 ‘선악과 나무’는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서 늘 존재하며, 대표적인 것이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이고 아브라함의 삶에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특별히 명령하시자, 그는 순종하여 다음날 일찍 일어나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미 이삭을 통해 그 자손(그리스도)이 오신다는 말씀을 근거로, 이삭이 불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은 우리 신앙생활의 모범답안이자, 주님의 믿음과 순종의 예표였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라는 성육신의 명령을 받아 순종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그 세대에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사53:8). 그러나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대권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고 당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원천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십자가의 말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자들로 정의됩니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37:31)
잠언27: 21절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본 잠언은 실 생활에서 많이 보는 은과 금을 제련하는 도가니와 풀무에 빗대어 칭찬을 통해 사람을 시험하고 단련함을 일깨웁니다. 전단은 17:3절과 동일하나, 후단의 작업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칭찬이라는데 차이가 있습니다. 장인은 은과 금에 열을 가하여 불순물을 제거함으로, 마침내 순금과 순은을 만들어 냅니다. 솔로몬은 칭찬과 사람의 인품도 그런 관계이기에, 칭찬이 주어졌을 때, 칭찬을 받는 그 사람은 인격적 온전함을 갖출 수 있는 계기로 삼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칭찬이 주어질 때 어떻게 해야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잠언은 명확히 설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칭찬의 말을 들을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자랑이나 교만이란 엄청난 유혹과 싸우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그런 충동을 이겨낸다면, 그 사람은 겸손한 인격의 소유자로 판명되어 주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타인의 칭찬과 비판에 동요하지 않는 사람은 지혜자이나,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이 아니라 타인의 칭찬을 추구하고 흐뭇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 타락의 전형적 증세입니다. ‘사도행전’과 요세푸스의 책 ‘유대 고대사’에는 모두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신의 소리’라는 아부를 듣고 내심 즐기다 주님께 죽임을 당한 왕 헤롯 안티파스를 증언합니다(행12장).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을 어리석음에서 구하거나 타락에서 지킬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의 몸에 아픈 가시를 두심으로, 어떤 칭찬이나 영광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늘 자신을 경계하고 겸손하도록 장치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잠언 17:3)
잠언27: 22절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시험하고 단련한다’(21)는 메시지가 계속됩니다. 타인의 ‘칭찬’은 양날의 검이라, 칭찬을 통해 현명하게도 되고, 혹은 ‘교만’이나 ‘자기속임’이라는 부정적 효과도 낳게 됩니다(21). 그러나, 22절은 그런 ‘시험과 단련’조차도 미련한 자를 개선시킬 수 없음을 밝혀, 그들의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런 교훈으로 무장하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행동하여 세월을 아낄 수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탐욕, 두려움, 또는 자기중심성이란 교만에 사로잡혀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란 참된 지혜를 거부하거나 무시합니다(12:15;18:2;26:11). 가룟 유다가 그렇습니다. 돈 궤를 맡은 것을 주님과 동료들을 섬기는 기회로 삼지 않고 재산축적의 수단으로 보아 헌금을 계속 훔쳐갔습니다. 마귀는 그 탐욕을 이용하여 주님을 은 30량에 팔게 하였습니다. 한편, 전단의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는다”는 표현은 신체에 가하는 벌을 비유하여, 바보에게는 채찍과 고난도 효과가 없음을 말하나, 청년들처럼 개선 가능한 경우도 있기에 주의하여야 합니다(22:15; 23:13,14; 29:15,17). 또한, “사람이 선하게 바뀌려면 고난은 필수적이라는 믿음은 치명적으로 큰 착각이다”(브리지)는 말은, 감옥에 있는 죄수들의 회개치 않고 더 굳어지는 마음을 볼 때 좋은 통찰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만이 미련한 자를 거듭나게 할 수 있습니다 (마19:26;막14:3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잠언27: 23,24절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23-27절은 이스라엘 주업 중 하나인 목축을 소재로, 근면 성실을 통해 번영을 성취하라는 교훈입니다. 23절에서 ‘형편’의 원어는 ‘얼굴,용모, 상태’를 뜻하는 ‘페네’로서 양떼 하나하나의 얼굴을 기억하듯이 각각의 상태를 주의깊게 살필 것을 명령합니다. 또 ‘마음을 두며’의 원어는 ‘너의 마음을 두라’는 의미로, 고용한 목동과 같은 타인만 믿지말고 자신이 직접 짐승떼를 돌보라는 가르침입니다(23). 부자라 해도 재물 관리를 소홀히 하면 삼대 가기 어렵고, 강력한 왕조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또 백성을 늘 마음에 두어 돌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면류관’을 빼앗아 타인에게 주어버리십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께 불복종하자, 하나님은 그의 왕위를 다윗에게 주셨고, 솔로몬 왕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하자 그 나라를 나누어 북쪽 10지파를 여로보암에게 주신 것은 그 좋은 예입니다. 마음은 자신이 보물로 여기는 곳에 머무릅니다(눅12:34). 따라서, 효자는 언제나 부모님을 생각하고, 애국자는 항상 나라의 안위에 마음을 두지만, 부자는 재물을, 권력자는 권세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주님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부지런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