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3/11/13-17)

하나님의 현현을 체험할 때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피하던 중 벧엘에 이르러 잠을 청합니다. 꿈에 야곱은 하늘까지 닿는 사닥다리와 그 위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창28장). 이 사건은 75세의 야곱이 참된 신앙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전에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만, 수년 전 최윤지 자매가 한 간증입니다. 어느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수원 광교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아는 언니를 만났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중 언니 아버지의 믿음이 강건해 지게 되는 계기를 들었습니다. 언니의 친정은 여의도 침례교회를 나가고 있었고 아버지는 약사로서 이대 앞에서 약국을 운영하였습니다. 2010년 전후로 이대 앞에 재개발이 시작되자 언니의 부친은 대형병원과 그와 관련된 약국이 입점하면 자신의 약국이 설 자리를 잃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작은 의원이 들어오게 해 주세요!” 막상 재개발이 끝나자 자신의 건물에 작은 의원이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이름도 “학교앞작은의원” 이었으며 현재도 운영 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아버지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기 그리스도의 은총을 깨달은 분(A. M. Toplady)의 시가 있습니다.

내 손에는 드릴 아무 것도 없어요
다만 당신의 십자가를 붙뜰뿐입니다
벌거벗은 채로 당신에게 가오니 입혀옵소서
힘 없어 당신을 앙망하오니 은혜주옵소서
범죄한 나, 보혈의 샘으로 날라가오니
씻어주옵소서, 아니면 나는 죽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창28:16,새번역)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황선우는 자유형 200미터에서 2022항조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 주인공입니다. 그는 자신만의 수영법을 터득한 뒤 이렇게 성장했다고 말합니다. 5살부터 수영을 하던 그는 고등학생시절 , 왼 팔에 30%, 오른 팔에 70%의 힘을 배분하여 리듬을 타면서 수영하는 자신만의 영법을 터득하였습니다. 이는 미국 대표 선수들이 주로 하는 ‘로핑 영법(loping stroke – 엇박자 수영)’으로, 한쪽에 힘을 더 싣는 비대칭 스트로크입니다. 그는 수영을 너무 좋아해서, 취미조차 유투브로 다른 선수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찾아보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6일을 훈련하며 – 오전에 2-3시간, 오후에 2-3시간 수영 – 저녁 후에는 2시간 정도 체력단력을 위해 운동합니다. 확실히 수영은 그의 인생이요 사랑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 역시 같습니다. 우리가 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믿음의 바다에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믿음의 비밀을 터득하고,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하여야 합니다.  훈련 방법은 ‘은혜의 수단’이며, 훈련 장소는 세상입니다. 은혜의 수단인 성경읽기, 기도, 예배, 교제, 성만찬 참여, 침례, 봉사와 섬김을 통해 힘과 지혜를 받고, 각팍한 현실 속에서 주님의 뜻을 찾아 실현해 나가는 삶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복음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기초입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창조의 목적과 삶의 문법을 깨닫고 있습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창조된 것이고, 우리 삶의 문법은‘감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8).

잠언27:8절
“고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

히브리 원문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처럼”이 문두에 나와 “고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의 불안정한 처지를 의도적으로 부각시켰습니다. 어미새는 둥지를 지키며 알을 품고 부화시켜 새끼를 잘 길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절의 어미새는 둥지를 떠나 홀로 애처롭게 떠돌고 있습니다. 이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떠나 헤매이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에 대한 비유입니다. 한편,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고향은 가나안 정복 후 각 지파별 가족별로 분배받은 땅을 의미합니다. 모든 땅은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각 개인이 임의로 사고 팔 수가 없었습니다. 혹 빚으로 넘어가면, 가까운 친족이 대신 사주어야 하였고(고엘제도), 그렇지 못할 경우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을 기하여 원소유주에게 돌아가도록 규정되었습니다(희년제도). 이렇게 하나님이 주셔서, 양도할 수 없는 땅을 떠나 유리한다는 것은 큰 저주입니다. 비록 지금 가나안 땅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일부가 정착하였으나 성경의 이야기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세속국가 중 하나입니다. 복음의 시대에는 물리적 고향 보다도 영적 고향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내세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대신 모세율법을 고수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으로 방황하는 존재들입니다. 이는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아들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이며, 신명기는 그런 상황을 이미 예견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같습니다. 본절의 문맥상, 참된 충고를 듣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교회) 가운데 머무르지 못하고, 둥지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이 영적으로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여라” (잠3:7,새번역).

잠언27:9절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본절은 친구의 충고가 주는 즐거움을 ‘기름과 향’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기름’은 식용으로 쓰이는 기름이 아니라 감람유에 여러 향을 섞은 것으로 머리에 붓거나 피부에 바르는 화장용 기름을 의미합니다(룻3:3). 또한 ‘향’이란 침양이나 계피 등 향기로운 냄새를 발하는 물질을 가리킵니다. 당시 근동에서는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러한 향으로 집안을 단장하고 향유를 손님에게 붓는 관습이 있었습니다(눅7:46). 한편, ‘충성된 권고’의 직역은 ‘생명의 권고’로서, 중심에서 나오는 사랑의 권면을 말합니다. 솔로몬은 친구의 이런 충성스러운 권고를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하는 향과 기름과 같이 아름답다고 평가합니다. 전국시대 조나라의 명재상 인상여가 조나라 환관 무현의 식객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무현은 보배 ‘화씨지벽’을 우연히 손에 넣자, 보고 싶어하는 조왕에게 거짓으로 도난당하였고 말하였습니다. 거짓이 탄로나자, 무현은 연나라로 망명하려 하였고, 인상여는 그에게 충성된 권고를 합니다: “연나라는 조나라보다 약해 대인이 망명하면 곧 잡아 조왕에게 압송할 것입니다. 차라리 어깨를 드러내고 형틀에 엎드려 죄를 청하면 요행히 벌을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무현은 크게 깨닫고 조왕에게 화씨지벽을 바치며 사죄하니 용서받았다는 고사입니다. 주님은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눅1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최후의 심판과 하나님의 돌보심을 전제하신 권고로써, 우리의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눅12:7)

잠언27:10절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본절은 친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전단은 자신의 친구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친구도 버리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아버지의 친구에 대한 봉양의 명령은 일견 지나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솔로몬은 친구 관계가 가족 관계만큼이나 의미 있고 중요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는 친구로 맺어진 관계가 중요하며, 서로에게 특별한 책임이 수반됨을 함축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중단(中段)은 환난의 때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합니다. 즉 재난을 피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형제를 찾지 말라는 의미로써,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해 태어났다”(17:17)는 잠언과 상반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각 잠언은 각각의 상황에 따른 권면이며, 본절은 형제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라도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위급할 때 좋은 친구가 혈육 이상으로 도움을 준 사례는 고금에 많이 있습니다. 후단은 중단과 같은 권고를 한 이유로써,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친척이나 형제 보다, 이웃에 있는 가깝고 친근하게 지내는 친구에게서 오히려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웃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본 잠언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신앙의 박해 시기에는 친척들이 오히려 박해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순교자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 (1795-1839) 역시 친척들에게 모진 고문을 받은 뒤 순교당하였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