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본절에 감동을 받은 3세기 로마황제 알렉산더 세베루스는 황금으로 써서 벽에 붙였습니다 (황금률). 그러나 많은 교회가 항상 사랑의 공동체는 아닙니다. 때로 우리는 원한을 품고, 마음에는 악의와 질투가 자라며, 해를 입힌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복수조차 생각합니다. 주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란 칼과 총을 들고 당신을 쫓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제거하고, 당신의 평판을 나쁘게 하려 합니다. 실로 당신을 미워하고 삼키고 짓누르려고 작정한 사람입니다. 그럴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유익을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허나, 원수 사랑은 친구에 대한 사랑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친구와는 따뜻한 교류가 넘치지만, 원수에 대한 사랑은 서로 간에 주고 받는 따뜻함은 없습니다. 다만, 원수가 목마를 때 마시게 하고, 주릴 때 먹을 것을 주는 것과 같이 일방적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유익을 위해 일하는 수준입니다(롬12:20). 그리스도인은 원수의 불의에 대한 심판은 이미 주님 손에 맡겨 놓았습니다. 만약 이런 순종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면, 우리의 소금은 그 짠 맛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고(마5:13), 우리의 빛은 환하게 비추일 것입니다(마5:16). 마귀의 방법은 선을 악으로 갚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은 선일 경우에만 선으로 갚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방법은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며, 이때 황금률이 내포한 의미를 진정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존 스토트, 『온전한 그리스도인』, 111-113).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롬12:19)
잠언26:24-25절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23절의 “온유한 입술”이란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가장한 말’이고, ‘악한 마음’은 ‘속임을 품은 마음’임을 설명하고(24절), 이어 ‘매력적으로 보이는 말’은 ‘듣기에 좋은 말’을 의미하나, 원수의 경우 마음은 미움만 가득하니 유의하라(25절)는 교훈입니다. 먼저, 솔로몬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감정과 진의를 숨기면서 잠언의 제자들을 미워하는 자의 특징을 서술합니다(24). 그들은 표리부동하여 입술로는 멋진 계획과 장래를 말하나, 그들의 속은 맹렬한 증오나 속임으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친구, 연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늑대였다!’ 는 신파극과 같습니다. 25절이 지혜를 말합니다: 순진하게 믿지 말라! 우리에게 돈이 된다는 타인의 말에는 늘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심을 감추고 부정직하게 말하고 있다는 표식을 잡아내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범죄가 ‘사기죄’입니다. 그 만큼 인간의 탐욕을 이용한 범죄가 성행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사업이나 투자를 요청하는 경우에, 성공만 아니라, 실패의 경우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좋지 않은 투자란 징조입니다. 한편, ‘일곱’이란 완전수이기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란 모든 가증함(왜곡, 속임, 위선, 험당, 탐욕, 음행, 악함, 교만 등)을 의미합니다. 매사에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고, 도착되어진 것에 만족하며 노력한 만큼 받겠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그의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은 전쟁이요 그의 말은 기름보다 유하나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시55:21)
잠언26:26절
“미운 생각을 교활하게 감추고 있다 하여도, 그 악의는 회중 앞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새번역)
본절은 사람이 잠시 동안은 본심을 숨길 수 있어도 마침내 드러나고 만다는 교훈입니다. 23-25절은 ‘악한 원수’가 미움과 악을 감추고 있음을 묘사하고, 26-28절은 그들의 파멸을 말하되, 그 중 26절은 그들이 교활하게 감추고 있던 ‘미운 생각’이 드디어 회중 앞에 드러나서 파멸됨을 지적합니다. 설혹, 이 세상에서는 모두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는 하나도 남김 없이 밝혀질 것입니다(눅12:2;마10:26).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으나, 심판은 우리의 행위를 대상으로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벌거벗은 듯이 드러날 그 날을 생각하면 자연히 경건하게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지혜이지요! 한편, ‘교활’이라고 번역된 ‘맛솨온’은 친절한 언어로 사람을 속이는 자를 지칭합니다(위선자). ‘회중’의 원어 ‘카할’은 일반적인 모임이나, 또는 재판을 위한 모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자라면, 조만간 그의 악함이 많은 사람 앞에 드러나고 그 어리석은 자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임을, 후자라면 재판석에서 그의 악함이 밝혀지고 그에 합당한 벌이 내려짐을 말합니다. 본절의 좋은 예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마7:15)이므로 우리는 마땅히 경계해야 됩니다.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맺는 열매, 즉 가르침과 삶의 방식, 그들의 제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고전6:3).
잠언26:27절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본절은 구약성경 도처에 나오는 ‘인과응보’를 가르칩니다. 무릇 타인을 해하려고 덫을 놓은 자들은 자신이 만든 그 덫에 걸릴 것이므로 아예 악한 일을 꾀하지 말아야 합니다(시편7:15; 전10:8). 다만, 여기서는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인과응보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돌을 굴리는 자가 도리어 그것에 치인다’는 말은 악인이 의인을 해하려고 큰 돌을 힘껏 밀어 올렸으나, 오히려 그 돌이 뒤로 굴러 악인 자신을 치는 경우입니다. 성경의 예로는 하만의 사례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행차할 때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모르드개는 물론 유다 민족을 전부 몰살시키고자 하되, 특히 모르드개는 그냥 죽이는 것이 경하다고 생각하여, 높은 장대를 준비하고 거기에 매달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로 모르드개의 선행을 알게된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을 시켜 모르드개를 높이게 하고, 이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 자신이 달려 죽었습니다 (에스더7:10). 세속 역사의 예는 로비에스삐에르입니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수 많은 사람들을 단두대로 처형하였으나 마침내 자신도 잡혀 그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와 반대로 자신이 베푼 선행이 오히려 큰 축복으로 되돌아 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고(갈6:7), 행한 대로 받으며 (마16:27), 헤아린 그대로 헤아림을 받는 것은(마7:2) 하나님의 법칙으로, 어떤 신학자는 ‘거울의 법칙’ 혹은 ‘부메랑의 법칙’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잠언26:28절
“거짓말 하는 자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본절의 전단은 상대방을 미워하여 끝까지 해치려는 자를 말하며, 그의 수단은 거짓말입니다. 후단은 아첨하는 자를 경계하고 있는데, 잠언의 제자들은 그런 자들에게 속지말고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마7:15-223). ‘아첨하는’의 원어는 ‘할라크’로 ‘매끄러운’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첨하는 입’이란 진실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여 속이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의 종말은 패망입니다. 그러면 거짓말하고 아첨하는 자와 그 상대방 중 패망하는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양쪽 다 해당됩니다. 본문의 목적은 거짓말 하고 아첨하는 자를 경고하며, 또한 어리석게도 그 매끄러운 말에 속아 파멸로 들어서는 자도 경계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미 국무부 과장은 미국의 맹목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은 옳지 않다고 비판하고 사직하면서, “끔찍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면 어느 쪽이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민주주의의 체제 역시 많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만, 다른 정치체제 보다 낫다고 보입니다. 기타의 정치체제와 달리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권력에 대하여 소신 있게 비판할 수 있고, 자신이 행한 그 비판을 책임지는 정치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명예훼손, 손해배상 등의 책임).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 역시 하나님을 떠난 세상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갑니다. 당연히 거짓말, 아부 등이 횡행하게 되지만, 다른 편에서는 그런 환경을 통해 주님을 중히 여기는 자를 알게 합니다. 실로 그들은 주님의 자랑거리입니다(욥1: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7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