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3/10/4-6)

잠언26:11절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본절은 개의 더러운 행동을 들어 미련한 자의 특성을 밝힙니다. ‘개’는 히브리인들에게는 경멸의 대상으로, 아무 것이나 먹고 매우 사나우며 더러웠습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만, 그 후 주어지는 비판을 무시하면 실수가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바른 말과 교정을 싫어하기에,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이를 관찰하고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개를 떠올렸습니다. 개가 토하는 이유는 음식이 몸에 맞지 않아서이나, 개는 그것을 잊어 버리고 또 먹습니다. 어리석은 자 역시 저지른 죄를 혐오하기는커녕 오히려 동일한 죄악을 거듭함으로써 심판을 자초합니다. 본 잠언은 신약에 인용되어(벧후2:22) 교회 내의 거짓 교사들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그 거짓 교사들은 “올바른 삶의 길; 의의 도”(벧후2:21)를 알지만 이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진리에 반하는 이전 생활 방식으로 돌아간 자들입니다. 한편, 베드로는 개 이외에 돼지를 언급하는데, 돼지는 더러운 구덩이에서 나오면  그곳을 멀리하는 양과 달리 도로 그 구덩에 들어가는 습관이 있습니다. 본절이 적용된 성경의 대표적 예는 가룟 유다로서, 그는 맡은 헌금궤에서 돈을 훔치곤 하였습니다. 이를 유심히 본 마귀는 탐욕으로 가룟 유다를 사로잡아 예수님을 파는 도구로 사용하였음은 우리에게 큰 경고를 줍니다.“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단12:10)

잠언26:12절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본절(12절)은 “미련한 자들을 위한 거울”(1-12절)과 “게으른 자들을 위한 거울”(13-16절) 사이에서 야누스 역할을 합니다. 한편은 ‘미련한 자’라는 주제어를 반복하지만, 또 한편은 1-11절까지 미련한 자의 비유로 눈, 비, 동물, 물매, 가시나무, 나귀, 개 등 창조질서의 소재를 뽑아 사용해 온 흐름을 떠나, 16절처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란 구조를 도입하여 미련의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를 비교의 기준으로 내세운 ‘미련한 자’와 ‘게으른 자’가 최고의 바보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사용된 비교의 방법은 미련한 자를 밝히는 동시에 그들의 어리석음에서 구원할 방법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매가 합당하다는 교훈은 동시에 미련을 탈피할 방법을 알려 주며(3), 미련한 자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기 전에” 반박하라는 훈계는 지혜의 문을 열어줍니다(5). 비록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지만(11), 이같은 시의 적절한 신체적, 언어적 교정을 통하여 구해줄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자만심에 사로잡혀 있는 바보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만에 빠지지 않은 어리석은 자(1-11)보다 자만에 빠진 게으른 자(16)는 더 나쁘다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므로” 자신의 교정 가능성이 닫혔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의 전형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세상 지식인, 부자, 권력자들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고전3:18).

잠언26:13절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26:13-16절은 게으른 자들의 말도 안 되는 변명(13), 경직성(14), 나태함(15), 엄청난 자기기만(16)을 각 묘사합니다. 본절(잠언22:13과 같은 내용임)은 게으른 자의 어처구니 없는 변명을 들은 대로 적어 놓았습니다. 게으른 자는 일하기 싫어는 자입니다만, 현실은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일하지 않을 그럴듯한 핑계를 대야 합니다. 이때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자’라는 ‘놀라운 핑계’가 떠올랐습니다. 사자는 무서운 동물이지요! 그리고 그 당시 삼림에는 많은 사자가 있어 밭이나 들에서는 종종 만나지만,  사람의 왕래가 잦은 거리에 야생의 사자가 출몰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더구나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거리’에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환상 속의 사자’이기에, ‘게으른 자’의 말에는 거짓이 담겨 있습니다. 만약 밭에 나가 사자를 만나는 것이 싫으면, 장사나 기술을 익혀 자신의 집을 세워야만 합니다(창3:17-19). 사람의 모든 수고에는 실패할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나, 위험이 클수록 보답도 큰 법입니다. 그러나, 그런 핑계를 대고 일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수고에 의지해 살아가야만 합니다. 당연히 그는 사자뿐만 아니라 전쟁, 전염병, 질병 등 일하지 않을 ‘환상적인 구실’을 계속 찾아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가 인도하는 인생(독신)이나 공동체(지도자) 그리고 가정(결혼)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우리들은 게으름이외에도, 불신앙과 두려움 때문에 책임을 회피할 구실을 찾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오직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눈으로 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