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3/9/18-22)

잠언26:3절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본절은 1, 2절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1, 2절이 앞부분에서 명백한 비유(여름의 눈, 추수시 비/ 참새와 제비의 날아감)를 주고 뒷부분에서 교훈을 주듯이, 여기서도 그렇습니다. 또 주제면에서는 3-5절이 같은데, 도덕적 바보에게 어떻게 말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가르칩니다. 3절은 어떤 말도 효과가 없어 매질만이 이해받는 유일한 언어임을, 4, 5절은 대답하지 않을 때와 대답할 때를 분별하라고 교훈합니다. 본절에서 말과 나귀는 인간의 언어를 모르기에, 주인의 뜻을 이해시키려면, 말에게는 채찍을, 나귀에게는 재갈이 필수적입니다. 솔로몬은 바른 말을 듣기 거부하는 미련한 자를 이들 짐승에 비유하면서, 막대기로 표상되는 물리적 힘만이 깨우칠 수 있음을 밝힙니다. 그러나, 물리적 수단을 통해 짐승들은 주인의 뜻을 행하나, 바보들은 깨우치지 못하고 결국 지혜와 선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방향(교만, 탐욕, 비방,악한행동,게으름)으로 마음과 삶의 행동양식이 돌이킬 수 없이 굳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잠언의 관찰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복음을 전해받지 못한 사람들은 듣고 믿는 것이 중요하나, 이미 복음을 들어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우리는 어리석어 깨닫지 못하고 고집을 부립니다. 아삽은 시편 73편에서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불평이 가득한 자신을 ‘주님 앞에 한 마리 짐승이었다’고 표현합니다. 만약 징계가 없다면 고침받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징계는 필수적입니다.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 (잠17:10).

잠언26:4절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4절은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 이유는 대화를 나누는 본인도 그처럼 미련한 자가 되지 않게 하고, 더 나아가 미련한 자의 교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12절의 문맥을 통해 읽으면 지혜자의 대답 자체가 도덕적 바보에게 합당하지 않은 영예를 주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것’이란 악의적인 말, 무식함, 불경건한 삶의 자세, 예의 없는 태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대화와 교제를 통해서 영향을 주고받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미련한 자와 교제를 갖게 되면 미련한 자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마음가짐, 태도, 삶의 방식과 언어 등 모든 방면에서 미련한 자를 닳아가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일단 상대방을 인격적인 대화의 상대로 인정한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기에, 본 잠언은 미련한 자와의 교제 자체를 금지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약 2300년 전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해 3번이나 이사를 갔다는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는 이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교육열에 있어 대한민국의 어머니보다 더 뛰어난 민족은 많지 않습니다만, 그리스도인의 교육에서는 반드시 신앙적 요소를 고려해야만 합니다. 먼저 규칙적인 예배 참석 등 부모의 믿음의 본이 중요하고, 이어 아이의 친구들의 신앙적 면모도 살펴서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도록 기도하면서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육의 목표는 “주님을 경외” 하라는 지혜의 정수를 갖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잠언17:12)

잠언26:5절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5절은 4절과 배치되는 말씀이나, 모순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두 구절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줌으로, 잠언의 제자를 보호하며 미련한 자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는 언행을 논어에서는 시중(時中)이라 하고 그 이상을 공자로 봅니다. 진정한 중용이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상황 속에서 적절함을 추구합니다. 공자는 ‘집기양단(執其兩端)’- 양쪽 끝을 잡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음-을 그 방법으로, 순임금을 그 모델로 제시합니다(중용). 지금 솔로몬은 4,5절에서 그 비책을 말합니다. 4절은 미련한 자가 이성 대신 감정을 앞세워, 분노, 조롱, 욕설이나 저주 등을 퍼불 때 적용됩니다. 이 경우에는 온유하게 인내하거나, 잠잠히 그 자리를 떠나야 하며,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는 비둘기 같이 순결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5절은 미련한 자가 논리를 갖고 공격할 때입니다. 이 경우에 침묵한다면 동의를 의미하기에, 신자들은 뱀과 같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미련한 자들의 논리 속에는 항상 궤변과 함정이 숨어 있어, 함정을 피하고 상대 논리의 모순을 논파하여 참된 진리를 들어냄으로써, 어리석은 자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어떻게 각 상황에 맞는 중용의 지혜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풍성히 주실 것입니다(약1:5). 다만, 믿음의 문제로 박해 당할 경우에는 염려 없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신뢰하면 됩니다. 성령께서 놀라운 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눅12:11,12).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잠언26:6절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26:6-10절은 교차대구의 구조로서, 그 중심에 8절을 놓아,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사자, 지배인, 선생의 지위 등)를 주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아래는 그 구조입니다.

  A      미련한 자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길 경우(6)
    B      미련한 자의 잠언(7)
      C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8)
    B′      미련한 자의 잠언(9)
  A′      미련한 자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길 경우(10).

6절은 통신수단을 은유한 ‘발’이 언급됩니다. 전화나 이메일을 사용하는 현대와 달리, 고대에는 인편만이 유일한 통신수단이었기에, 소식 특히 중요한 소식을 위해서는 신뢰받는 사람을 보내야 하였습니다. 만약 미련한 자가 그 책임을 맡는다면, 그 해악은 치명적입니다. 이는 마치 자신의 두 발(복수형)을 베어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임무의 경우 특별히 신임하는 사람을 선택하여 권한과 함께 파견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복음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해 이루신 아름다운 화해와 축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 복음의 전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며, 그들의 삶 자체가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에 주님은 약속과 심판 두 가지를 남기셨습니다. 즉, 주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구하면 모두 응답주시겠다(마7:7-11; 요일5:14,15)는 약속과, 만약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혀 불에 던져진다는 심판의 말씀입니다(마7:19).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6).

잠언26:7절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본문은 저는 자의 다리가 몸무게를 결코 지탱해 주지 못하는 것처럼, 미련한 자의 잠언 역시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함을 교훈합니다. 첫째, 그들의 말은 시의적절하지 않습니다. 모든 충고나 잠언은 상황, 사람, 시기 이 세 가지가 모두 고려되어야 효과적이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오직 잠언만 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잠언26:4절은 ‘미련한 자를 만날 경우 잠잠하라’, 5절은 ‘미련한 자의 말을 효과적으로 반박하라’는 상반된 교훈이기에, 지금 자신이 상대하는 바보의 유형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 잠언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 그들은 도덕적으로 너무 둔감하여 언행의 불일치가 드러나는 자들입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 가르치지만 자신은 도둑질을 하고, 우상은 가증한 것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신사의 물건이 탐나서 훔친다면 누가 그 사람으로부터 참된 교훈을 듣겠습니까?(참조 롬2:21-22). 이같이 인격에 결함이 있는 자들이 훌륭한 잠언을 말한들, 자신의 얼굴에 침뱉기이며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한편, 가장 미련한 자는 종교적 위선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자들(마23:24)로서, 이들의 교훈을 실행하면 도움은커녕 오히려 심판당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 전형적인 위선자들입니다(마7:21). 그렇다고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면, 무섭게 화를 내며 대들 것이기에, 잠잠히 그 자리를 떠나는 지혜를 간직해야 합니다(4절).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잠언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