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5:9절
“이웃과 다툴 일이 있으면 그와 직접 변론만 하고, 그의 비밀을 퍼뜨리지 말아라.”(새번역).
8절의 ‘철저한 준비’에 대한 권면에 이어 9-10절은 ‘비밀유지’의 품격을 교훈합니다. 고귀한 인격은 승소보다 중요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제자들은 이웃과 어떤 문제가 있어 다투거나 소송 사건 등으로 변론할 때 문제가 되는 사안을 벗어나, 불필요하게 다른 사람의 허물이나 약점, 비밀 등을 들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사사건을 넘어 형사사건으로 비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란 가까울 때는 좋게 행동하다가, 무엇인가 뒤틀려 버리면 해를 끼려는 완악한 마음을 갖습니다. 본인은 그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지만, 도리어 반대의 경우가 허다하며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인격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툼이 있을 시 먼저 주님 손에 그 사건을 맡기고, 비밀을 누설하면서까지 보복하고 싶은 감정이 있다면 절제하도록 기도해야만 합니다. 잠언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 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제어하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가르칩니다(16:32).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주님의 영께서 계십니다. 얼마 전 억울하게 기독교 계통 조직의 대표의 직위에서 해제된 분이 있었습니다. 일단 변호사를 통해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하였고, 이사진들을 검찰에 고발하여 형사사건화 하자고 권고받았습니다. 물론 이사진들은 여러 문제점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심히 갈등하고 있을 때 전화를 통해 함께 대화를 나눈 뒤, 형사적 고발을 포기하였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잠11:9)
잠언25:10절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10절은 9절에서 준 경계의 이유를 제시합니다. 전반부는 소송의 내용을 듣고 비밀을 누설한 자를 신실하지 못하며, 험담을 퍼뜨린다고 정죄하는 자로 재판관이 대표적이며, 후반부는 누설한 순간부터 누설자에게 돌아오는 수치스러운 평가(악평)에 관해 말합니다. 소송 중에, 상대방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이 사건의 논증을 위해 불가피하다면 이해될 수 있지만, 인신 공격과 같이 소송과 상관 없는 상대방의 비밀을 폭로한다면 그 자신을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법정의 공의를 흐리려는 부당한 행동으로 비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듣는 자 중의 하나인 재판관과 배심원은 물론, 공의로운 판결을 기대하는 모든 사람이 이 같은 비열한 행태에 대해 격분하고 비난할 것은 자명합니다. 그 결과 재판까지 불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자의 행동이 나오는 이유는, 그의 언행이 지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식이 있습니다. 그 지식은 재판 결과도 공의로운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재판상 소송 기술이 필요하지만, 그런 점을 제외한다면 아무리 긴박한 경우에도 논지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삼가고, 쟁점되는 문제의 핵심만을 짚어감으로써 소송을 승리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또한, 일상의 경우에도 이웃의 허물에 대해서는 입을 무겁게 가져가면서, 오히려 듣고 보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덕스럽고 아름다운 말과 행동이 나와야 하겠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신분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바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잠언25:11절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11,12절은 ‘적절한 말과 책망의 수용’에 관한 잠언이며, ‘은 쟁반과 금 사과’라는 비유를 갖고 효과적으로 교훈합니다. 성경학자 키드너는 이를 “멋지게 말하면, 멋지게 받아들인다”고 요약하였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이란 “상황에 알맞게 잘 표현된 말”을 의미합니다.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의 원문은 ‘은쟁반에 금사과를 새겨 놓았다”는 말인지, “은쟁반에 금사과가 담겨 있다”는 말인지 불분명합니다. 더구나 ‘사과’에 해당하는 원어 ‘탐푸헤’는 오렌지, 석류, 모과, 살구 등으로 해석되기도 하여 문장 자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하여는 의견이 나뉘지만, 합당한 말은 이처럼 아름답고 귀하다란 메시지는 확실합니다. 그러나 경우에 합당한 말이란 쉽지 않아서, 분별력과 인격이 동시에 요구됩니다. 성경의 예는 사사 기드온입니다. 그는 경우에 합당한 말을 통해 다툼을 종식시켰습니다. 기드온은 므낫세 족속으로 300명의 용사만을 이끌고 미디안 족속을 쳐부순 뒤, 도망가는 미디안 족속을 섬멸하기 위해 에브라임지파에게 사자를 보내었습니다. 뒤늦게 전쟁에 참여한 에브라임지파는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죽이는 전과를 올리고 기드온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을 먼저 부르지 않았다고 크게 다투었습니다. 이때, 기드온은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으니 내가 한 일은 너희만 못하다”(삿8:103)고 말하여 그들의 화를 가라앉혔습니다.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온유하며 지혜로운 대답입니다.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지만,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 (잠15:1,새번역)
잠언25:12절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은, 들을 줄 아는 사람의 귀에는, 금귀고리요, 순금 목걸이이다”(새번역)
본절은 11절과 함께, 바른 행동을 위한 지혜자의 책망을 ‘금귀고리와 순금 목걸이’에, 듣고 행동을 고치는 자를 금으로 장식한 귀에 비유합니다. 슬기로운 책망을 선하게 듣고 순종할 수만 있다면, 미인이 보석으로 꾸민 것처럼 아름다고 귀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금고리와 금사슬’처럼 희귀합니다. 양약고구 충언역이 (良藥苦口 忠言逆耳)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는 “좋은 약은 입에 쓰고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로써 이런 진리를 웅변합니다. 유대 선지자의 책망과 기적을 보고도 황금송아지 예배를 그만두지 못한 북왕국 여로보암 왕은 그가 죽자 그 가문 전체가 죽임을 당하였고, 선지자 엘리야의 책망에 불순종하였던 아합의 가문도 모두 멸망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병을 고치려고 선지자 엘리야에게 온 아람 장군 나아만은 요단 강에서 일곱 번 씻으면 낫는다는 선지자의 말에 분노하였으나, 그 종들의 충고를 듣고, 마음을 고쳐잡은 뒤 요단강으로 가서 몸을 씻고 완전히 치유를 받았습니다. 한편, 도피 중인 다윗이 갈멜의 부자 나발의 교만하고 무지한 행동으로 격분하여 나발의 가문을 죽이고자 하였을 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다윗을 맞아 적절한 말로 진정시킴으로 가족도 구하고 다윗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살인도 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같이 하나님의 교훈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맺히는 이슬이요 채소 위의 단비’(신32:2)가 됩니다. 성경은 이 보배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책망과 교훈을 마음에 간직함으로 의의 열매를 맺어가야 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더 낫다”(전7:5,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