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5:3절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하늘…땅’이란 표현은 우주를 창조하신 절대 주권자 하나님을 암시합니다. 어떤 왕이나 현자도 하늘에 올라가거나 땅 속에 들어갔다가 돌아와 우주의 가장 미묘하고 난해한 문제들을 궤뚫어 본 적이 없고, 우주의 신비 중 오직 일부분만을 드러내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국가를 통치하는 왕의 마음을 신하들과 백성이 헤아릴 수 없어야 한다는 권고입니다. 참으로 탁월한 비유입니다. ‘헤아릴 수 없다’의 원어 ‘엔 헤케르’는 오직 하나님께만 적용되었지만, 본구절은 그 단어를 ‘왕의 마음’에 적용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잠언은 왕의 통치를 묘사하고 있기 보다, 통치의 방법을 처방하려는 의도가 더 크게 담겨 있습니다. 왕은 마땅히 그렇게 사람들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만약 왕(지도자)의 마음이 쉽게 읽혀 예측가능하다거나, 상상력의 부족이 드러난다면 그의 통치와 권력에는 치명적입니다. 신하와 백성들은 더 이상 그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왕(지도자)은 각 분야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탁월한 통찰력을 갖추어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그의 통치에 구현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뛰어난 왕(지도자)의 마음이지만, 그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영적인 사람들 보다는 못합니다. 그들은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고전2:15-16).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가르침과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이 행하시는 섭리를 통찰하고, 왕에게조차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눅11:2)
잠언25:4,5절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
4,5절은 왕이 신하들을 대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이 두 구절의 히브리 원문은 모두 ‘제하라’를 뜻하는 ‘하고’로 시작하여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4절은 은에서 찌기를 제거할 것을 명령합니다. 은이 은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이유를 불문하고 은에서 찌끼를 제거하는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이는 5절을 위한 상징적 표현으로서, 왕의 통치가 올바르기 위해서는 왕의 앞에 있는 악한 자들(간신)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왕의 위는 의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서게 됩니다. 의는 국가 번영의 필수적인 길로서, 의로운 왕은 백성의 신뢰를 받게 되고, 그 왕위는 견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간신이 자신의 유익과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 왕을 이용한다면, 그 나라는 멸망으로 직행하고 오히려 왕이 권좌에서 제거될 것입니다. 본잠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먼저, 우리들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릇들로서(행9:15)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쓸 만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찌끼와 불순물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제거해야 할 ‘짜끼와 불순물’은 옛사람에 속한 성품 즉, 탐심, 교만, 질투, 음란한 마음 등을 일컫는 것입니다(갈5:19-21). 또한, 우리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해 행하신 아름다운 덕을 널리 선포할 책무가 있습니다(벧전2:9). 신실하게 살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야 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잠언25:6절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
25:6-15절은 궁중관리(신하)를 위한 잠언의 10계명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경계(6-10)와 교훈(11-15). 이를 통해 솔로몬은 겸손(6-7), 철저한 준비(8), 비밀유자(9-10), 적절한 말과 책망의 수용(11-12), 책임성(13-14) 그리고 온유함의 지혜(15)를 가르칩니다. 신하가 왕 앞에서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덕목은 ‘겸손’으로, 6절은 두 가지 명령을 내리고, 7절은 그 이유를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왕을 알현하는 신하들의 모임(조회, 잔치)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는 왕의 뜻에 합당한 질서를 유지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라’는 명령은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과시의 욕망을 어리석게 생사여탈의 권한을 가진 왕 앞에서 드러내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는 왕궁에서 자기 보다 높은 사람이 서야할 자리에 섰다가 뒤로 물러나는 치욕을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하로서 마땅히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야 하나, 이를 갖추었다고 교만하게 행동하면 부끄러움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행할 때 특히 하나님이 인사권이나 기타의 권한을 부여한 지도자의 앞에서 겸손하면, 스스로 높은 체하지 않아도, 높은 자리에 서려고 하지 않아도 왕과 다른 신하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7절은 6절의 명령을 간직하지 않았을 때 나오는 부끄러운 결과의 하나를 보여줌으로써, 궁중관리들이 올바른 신하의 태도를 갖추도록 교훈합니다. 성도들은 모두 한 주님을 섬기고 있기에, 우리 모두는 만유의 왕과 주님의 신하입니다. 여기에 본잠언의 영적 측면이 담겨 있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잠언25:7절
“이는 사람이 네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본절은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라’고 경계한 6절의 이유를 제시합니다. 효과적 전달을 위해, 솔로몬은 ‘..보다 낫다’는 비교구문을 사용하면서, 두 가지 경우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는 경우이며, 둘째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가리켜 낮은 데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당연히 전자가 낫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왕이 그 능력과 자질을 파악하고 그를 직접 높은 위치로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높여주실 때까지 겸손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벧전5:6,7). 본절의 교훈은 예수께서 청함을 받은 자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자, 혼인잔치를 상정하여 가르치신 유사한 형태의 교훈에서 반복됩니다(눅14:7-11). 주님은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고 한 마디로 요약하시고 몸소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자신이셨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여 당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또 다시 자신을 낮추사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러자 성부께서는 부활과 승천을 통해 그분을 지극히 높여주셨습니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뜻과 상관 없이 권세와 재물을 쌓아 스스로 높아지려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서 우리를 높이려는 욕망을 미워하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 길입니다. 후자의 길이 지혜요 영생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12:25)
잠언25:8절
“너는 급하게 소송하지 말아라. 훗날에 너의 이웃이 너를 이겨 부끄럽게 만들 때에, 네가 어떻게 할지가 염려된다”(새번역).
본절은 송사에서 피해야 할 태도를 교훈합니다. 여기서 ‘다투다’는 말다툼 보다도 ‘변론하다’ (사3:13)와 같이 법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기에 새번역은 ‘소송’으로 번역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남을 성급하게 고발하지 말라는 교훈이며, 충분한 준비를 거쳐 신중하게 소송하지 않으면 패배할 뿐 아니라 명예까지 실추되기에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치는 것이 지혜로우며(17:14), 설혹 법정에 가더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신중히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판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법관은 오직 확실한 증거에 근거하여 공정한 판단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세상의 재판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재판규범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는 계명이며, 재판장은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증거에 입각하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을 신중히 살펴보고 심판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과 화해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면 죄 사함 받고 심판을 면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한다는 의미는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마음에 변화를 주어 행동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문제는 인간은 완악하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에 의해 가르침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기까지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5: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