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4:4절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본절의 ‘보배’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 ‘황금과 진주’ 같은 물질적인 보배를 지칭하는 경우입니다. 솔로몬은 주님께 받은 지혜로 엄청난 부와 재물을 쌓았다는 것은 이 해석의 좋은 예입니다. 둘째, 훌륭한 인격이나, 인간관계,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옳바른 관계가 구현된 삶과 같은 영적, 도덕적 의미라고 보는 경우입니다. 본절은 둘 다 의미합니다. 문제는, 두 번째 의미의 보화에 의하여 수반되지 않는 첫 번째 의미의 보화만으로는 본절의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악한 자가 남을 속이거나 약탈하여 황금이나 진주 등을 가진다 하여, 그것을 칭찬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인간은 속기 쉽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잠언 서두부터 긴급히 금지명령을 내립니다(1:10-19). 그 길의 종착지는 파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혜자의 면류관은 재물이다”(14:24)는 말처럼,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가 아니기에 극단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하겠습니까? 주님의 뜻을 행하고자 기도하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놀라운 지혜와 지식이 주어집니다(잠2:6, 약1:5). 그 지식을 따라 부지런히 일하여 자기 집을 세우고, 그 집에 합당한 보배들 – 존중받는 남편, 예의 바른 자녀, 품위 있는 삶, 넉넉한 재물, 양식과 옷, 곤궁한 자를 위한 자비 등 -로 채워야 합니다.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 능력 있는 아내”(31:10-31)은 본절을 구현하였으며, 비결은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는다.”(잠31:30)
잠언24:5,6절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5,6절은 ‘힘’(5)과 ‘전략’(6)을 갖추려면 ‘지혜’가 필요함을 교훈합니다. 3-4절은 성공의 3요소로 ‘지혜,지식,명철’을 밝히고, 5-6절은 그것들로부터 파생된 덕목인 ‘힘과 지략’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힘’과 ‘전략’은 어떤 일에도 요청되지만, 특히 전쟁 시에는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혜의 배후에는 주님 자신이 서 계십니다. 따라서, 잠언이 말하는 지혜와 지식의 전제는 주님에 대한 경외입니다.한편, 전쟁에 관한 본 잠언은 적의와 배신이 판을 치는 현실 세계에서 승리을 위한 패러다임이라 하겠습니다. 먼저 5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이 의지하는 방벽을 허느니라” (21:22)와 같은 취지로, 단순한 물리적 힘보다, 지혜와 지식의 힘이 더 강함을 교훈하며, 그들 사이의 관계는“지혜 없는 힘은 눈 빠진 거인과 같다”는 속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BC 3세기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부력의 원리, 지렛대, 도르래 혹은 나선펌프의 원리를 발견한 분입니다. 그리스의 병사들이 탄 전함이 모래톱에 걸려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지렛대 원리를 활용한 기중기로 쉽게 바다로 끌어낸 일과, 그의 조국 시랴큐스가 1차 포에니 전쟁에 휘말려 로마와 전쟁할 때 투석기 등으로 로마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힌 일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더구나 그때 아르키메데스는 70 중반의 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도운 시라큐스라 할지라도 결국 로마에게 함락당하였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주님을 경외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그 어떠한 지혜도, 명철도, 계략도, 주님을 대항하지 못한다.” (잠언21:30,새번역)
잠언24:7절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가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본절은 “지혜”라는 단어로 3-6절과, ‘미련’이란 용어로 8-9절과 연결되어 ‘지혜는 능력의 원천’(3-6)이라는 교훈을 돋보이게 하고, ‘도덕성의 결여는 바보의 특징’이라는 교훈( 8-9)의 근거가 됩니다. 주제는 미련하여 능력없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경고로써, 전단은 원인을 후단은 결과를 제시합니다.전단은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가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는 미련한 자는 ‘경건과 겸손’이라는 날개가 없어서, 공동선을 위해 필요한 ‘하늘의 지혜’에 도달할 수 없음을 은유합니다. 미련한 자의 결핍되고 미성숙한 모습을 보게됩니다. 무릇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이는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 이기 때문입니다.’(약3:17,18). 그 결과 “그는 성문에서 입조차 열지 못한다’는 진술이 이어집니다. 미련한 자는 상식으로 보아 합당한 것들도 고칠 수 없는 도덕적으로 미성숙한 자들로서, 공동체의 화평과 발전을 위한 토론 장소인 성문에서 지도자로 인정 받지 못합니다. 그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그의 의견은 치우쳤으며, 그는 타인을 배려하고 공공의 이익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잘 말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발언조자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가 사려분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만-, 입을 닫고 잠잠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도 조용하면 지혜로워 보이고, 입술을 다물고 있으면 슬기로워 보인다.” (잠언17:28,새번역)
잠언24:8절
“늘 악한 일만 꾀하는 사람은, 이간질꾼이라고 불린다.”(새번역)
8, 9절은 7절의 ‘미련한 자’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그들은 부도덕한 행실의 소유자입니다. ‘악한 일을 꾀하는 사람’이란 ‘의도적으로 남을 해치려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악인’을 말합니다. 참된 지혜의 목적은 효율적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목적은 이기적인 욕망 달성이고 그것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합니다. 이것이 거짓된 지혜입니다. 그에게 사람이란 짐승이나 물건과 같이 목적 달성의 수단입니다. 또 그의 눈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타인에 대한 배려나, 부모공경, 살인·간음·절도·거짓증언 등을 금지하는 하나님의 계명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간질꾼으로 불린다’고 표현된 것입니다. 한편, 이 표현은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사악한 생각들의 주인이라고 부른다’는 의미이며, ‘비방거리,’ ‘속담과 이야기거리’ (신28:7;왕상9:7)로 바꾸어 말할 수 있어서 그들의 비참한 운명을 짐작하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우상숭배로 향한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대표적입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여로보암은 남유대 왕국과 대결할 종교를 창안한 뒤, 황금송아지를 벧엘과 단에 세웁니다. 이 죄는 선지자들의 책망에도 불구하고 200년 동안 계속되다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하나님은 신명기의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브라데스 강 북쪽에 흩으셨고, 본토의 사람들은 타 민족과 혼합되어 사마리아 사람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지혜자와 미련한 자를 가를 단 하나의 잣대라면, 만유의 통치자이신 주님을 두려워하는가 여부이며, 이는 ‘경건’이란 말로 요약됩니다.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욥28:28)
잠언24:9절
“어리석은 사람은 죄짓는 것만 계획한다. 오만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미움을 받는다.”(새번역)
어리석은 사람의 뿌리깊은 문제는 자신의 ‘어리석음’입니다. 그는 사회 구성원들과 현실적으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대신, 어리석게도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타인을 과소평가합니다. 이 때문에, 지혜에서 힘과 전략(5-6)이 나오지만, 어리석음에서는 ‘죄와 사회적 경멸’(9)이 맺어집니다. 전단은 반사회적 행동과 그 원인을 밝히며, 후단은 전단의 ‘어리석은 사람’이 ‘오만한 사람’이며, 그 사회적 결과는 ‘미움’임을 알려줍니다. ‘오만한 사람’은 그 행동이나 태도가 타인을 염두에 두지 않는 거만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타인을 무시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하여 확립된 사회질서에 순응하는 대신 비방하며,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자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계획하는 모든 것은 사회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고, 잠언은 이를 ‘죄’라고 규정합니다. 그 결국은 사회적 ‘미움’이요 ‘경멸’로써, ‘어리석음은 사람을 공동체로부터 단절시키게 합니다’(클리포드). 역사상 예는 16세기 금은보화를 위한 탐욕 때문에 신대륙으로 떠난 4명의 피사로 형제들입니다. 불과 200명을 이끌고 잉카제국을 정복하였지만, 무자비하고 악랄한 수탈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첫째와 셋째는 살해당하고, 둘째는 원주민 수탈을 금지하려는 스페인 총독의 지시를 거부하다 처형당하였으며, 막내는 잡혀 스페인 감옥에서 20년을 지내다가 죽었습니다. 한 심리학자는 이들은 ‘정직성과 정서성’이 매우 낮아, 거만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유형이라고 분석하였는데, 지금까지 그 악명이 남아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