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3:11절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10절은 고아로 대변되는 약자의 권리를 침범하지 말라고 훈계하고, 11절은 그 중요한 이유를 적고 있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힘 없는 자를 보호하기 위해 확립하신 사회적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주님 자신이 친히 압제자들을 벌하사, 그들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고아의 아버지요, 과부의 보호자이시기에, 그들이 믿음으로 호소하여 오면, 그들의 사건을 성공적으로 해결하실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속자’란 히브리어 ‘고알람’의 번역으로, ‘가족 보호자’라는 의미며, 본절에서는 주님 자신을 지칭합니다. 이 단어는 동사 ‘속전을 주고 구출하다(구속), 복수하다, 친족의 역할을 하다’는 동사 ‘고알’에서 파생되었고, ‘고엘-친족 구속자’ 역시 여기서 나왔습니다. 고엘 제도가 작동하는 상황은 대략 4가지입니다. (1)가난 때문에 팔린 친족의 밭이나(레25:25), 빚으로 종이 된 사람을 되사오는 경우로(레25:48), 가까운 친족의 의무였습니다. (2)주님에게 드린 재산이나 짐승을 다시 가져오는 경우, ‘고엘’은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소유자로서 1/5을 더하여 되사야(구속)합니다. (3)친족이 살해당하였을 때 가까운 친족은 ‘피의 보복자’로서 행동하며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야 합니다. (4)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고엘’로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역할이며, 큰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속해 내신 사례가 적절합니다. 우리가 강할 때는 공의로운 주님을 두려워 하여 행동을 삼가해야 하나, 우리가 도움을 호소할 길이 없을 때, 만유의 주님이 계심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야훼께서 거만한 사람의 집은 헐어버리시고 과부의 밭 경계선은 지켜주신다.” (잠언15:25,공동번역).
잠언23:12절
“12훈계를 너의 마음에 간직하고, 지식이 담긴 말씀에 너의 귀를 기울여라.
23:12-24:2은 ‘순종하는 자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잠언의 제자들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교훈하는 단락입니다. 12절은 출발점으로 ‘훈계를 간직하라’는 당부가 먼저 오고, 이어 훈계의 내용이 각각 등장합니다: 자녀의 징계문제, 정직의 장려, 죄인의 형통에 대한 질투 금지, 음식 탐하는 자와 교제금지, 부모에 대한 순종과 공경, 지혜와 지식의 추구, 음녀와 술를 멀리하라는 가르침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12절의 ‘마음’은 핵심 단어로서 잠언의 제자와 부모를 단단히 연결해 주는 고리입니다. 지금, 아버지는 아들이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증거는 후단으로, ‘너의 귀를 기울여라’는 표현을 보면,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미련한 자로 생각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잠언은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라’고 이미 가르쳤기 때문입니다(23:9). 마음과 귀는 서로 협력하여 일하는데, 마음은 귀를 열고, 귀는 마음을 형성합니다. 즉, 마음이란 속사람의 기관은 신체의 귀를 열어 듣게 하고,열려진 귀는 마음 자신을 새롭게 형성할 수 있는 ‘지식이 담긴 말씀’과 훈계가 들어오는 통로가 되어 마음 자신을 재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기 마련입니다(잠언18:15). 따라서, ‘부주의한 마음은 부주의한 귀를 만든다’는 학자 브리지의 지적은 합당합니다. 솔로몬은 부여받은 왕의 직무를 잘 수행 하기 위해 ‘듣는 마음’(왕상3:9)을 달라고 주님께 요청함으로 이 양자를 결합하고 있음은, 그가 왜 지혜자인지를 보여줍니다.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잠언19:27)
잠언23:13,14절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훈계의 목적은 아이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채찍’이란 단어를 보아 잠언은 아이들에 관한 어떤 환상도 없음을 알려주지만, 그렇다고 ‘주마가편’의 고사성어와 같이 아이들에게서 최고의 능력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지혜란 무수히 반복되어 교훈된 후에만 아이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게 되며, 이 과정 중에 ‘채찍’과 같은 글자그대로의 각인도 필요한 법입니다. 만약 훈계를 멈추는 부모가 있다면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부모이며, 그들의 자녀들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잠언의 최고의 교육의 방법은 주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갖게 하는 것으로 어린 시절부터 시작됩니다. 종종 회초리도 동원되어야, 아이의 마음에서 미련을 벗겨낼 수 있습니다. 만약, 주님을 경외하여 모든 것을 행하려는 마음을 품지 못하면, 그는 자기 중심적으로 살다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거나, 패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다윗은 자녀들에게 채찍은커녕 ‘왜 이런 일을 하였느냐?”는 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첫째, 둘째, 셋째 모두의 비명횡사였습니다. 여기에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채찍질은 몸과 마음에 고통을 주지만, 아이에게 생명의 교훈을 갖게 하고, 채찍이 없으면 일시적인 고통이 없지만, 그 아이는 죽을 운명(영원한 심판도 포함)에 처해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경외하라’는 계명을 간직하지 못하면 바보입니다(욥28:28). 따라서 훈계의 상황에서는, 자녀들에게 사랑의 매라도 가하여 그들로 지혜를 얻어 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들에게 매를 들어야 희망이 있다. 그러나 들볶아 죽여서는 안 된다.” (잠언19:18,공동번역)
잠언23:15절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맹자는 군자 삼락을 말합니다: 첫째는 부모와 형제자매가 무고한 것이고, 둘째는 하늘이나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고,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즐거움입니다. 첫째 즐거움은 하늘에서 내려주어야 하고, 둘째는 인격수양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셋째는 맹자의 지식을 나누어줌으로써 갖는 기쁨입니다. 여기 맹자와 같이 제자를 두어 가르치는 선생이 있습니다. 그의 마음이 즐거울 때는 제자가 배운 그대로 행하거나, 가르침을 넘는 이치를 터득하여 지혜를 보여줄 때입니다. 여기서 ‘지혜’란 남보다 빠른 두뇌회전이나 높은 IQ가 아니라, 선악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능력을 말합니다. 잠언의 제자는 사태를 파악하여 결정할 때 만유를 통치하시는 주님을 우선 고려합니다. 그러므로, 잠언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임을 선포하고(1:7), 가장 먼저 악한 친구들을 멀리하도록 교훈합니다. 그렇다고, 본절에서 말하는 지혜에 예법, 군사, 경제, 농사, 목축, 통치술 등 삶의 지식이 제외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잠언은 자신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임을 또한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18:9). 문제는 이런 일에 탁월하여도 그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권력과 이익만을 도모하여 타인을 해친다는 사실입니다. 역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려고 자신의 일은 물론, 타인의 이익까지 고려하면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실로,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며 그 주된 결과는 정직한 삶으로 나타납니다. 내일 살펴볼 16절은 이를 확증합니다.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잠언23:16).
잠언23:16절
“네가 옳은 말을 하면 내가 정말 즐거워할 것이다”(새번역)
15-16절은 마음과 언어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음을 가르치는데, 지혜로운 마음은 정직한 말을 이끌어 내고, 듣는 자는 그가 지혜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선생은 제자가 여인으로 의인화된 ‘지혜’처럼 말하기를 바랍니다: “내 말은 건전하고 참되며 하나도 잘못되었거나 악한 것이 없다.”(8:6). 잠언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상의 출세지상주의, 성공지상주의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정직한 말과 올곧은 삶을 지향하도록 교훈합니다. 한마디로 세상에서 추구하는 석사, 박사와 같은 ‘든 사람’이나 출세하여 입신양명을 이루는 ‘난 사람’이 아닌 잠언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 ‘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자녀양육의 첫 번째 목적이요 가장 우선된 길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즐거워하는 일은 우리가 정직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소위 하나님 사랑을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그것이 우리가 자녀 양육 시 첫째에 놓이고, 다음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마지막으로 겸손히 성령님과 동행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미가6:8). 미가서의 이 구절은 지혜의 시작이고 방법이며 목적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심오한 곳이 아니며 너무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지 말라고 전도서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을 발견해 내도록 구조가 짜인 곳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지혜를 갖고, 도착되어진 것에 만족하고, 늘 겸손하나 신실하게 살아감으로써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