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3/5/22-26)

잠언 22:26,27절
“이웃의 손을 잡고 서약하거나,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아라. 너에게 갚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네가 누운 침대까지도 빼앗기지 않겠느냐?”(새번역)

잠언은 보증을 서서, 타인의 빚에 얽혀들지 않도록 경고합니다. 고대의 보증은, 보증인이 채무자의 손을 잡고 채권자 앞에서 서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현자는 경고합니다. 만약 자기가 보증을 선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자신의 재산으로 갚아야 하는데, 그때 재정에 문제가 있을 경우 침상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자신은 맨 땅이나 마루에서 자게 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자신과 가족의 몸을 노예로 팔아 보증빚을 갚아야만 합니다. 이는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참고 6:1–5; 11:15; 17:18; 20:16).  한편, 잠언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라고 권고하며, 주님께서 갚아주실 것을 선언하나(19:17), 보증은 예외입니다. ‘관대하다’는 말은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도와주는 것을 의미하나, 보증인은 거저 주는 관대함 대신에 채무자가 변제를 하여 자신을 보증채무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보증인은 늘 불안합니다. 특히 잘모르는 낯선 사람을 위해 서는 보증이 그렇습니다(20:16). 그러나 사회에는 대출에 대한 수요와 함께 보증에 대한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상대방의 신용과 위험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이런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돈을 버는 은행업, 보증업 등은 법제화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에 비상한 발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연히 사업의 영역에서는 본잠언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남의 보증을 선 사람은 자기의 옷을 잡혀야 하고, 모르는 사람의 보증을 선 사람은 자기의 몸을 잡혀야 한다” (잠언20:16,새번역).

잠언 22:28절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지계석은 토지의 경계와 그 소유주를 알려주는 경계선 돌입니다. 고대 근동은 토지가 기반이된 농업 사회로서 지계석은 중요하였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이래 제비를 뽑아 각 지파별로 토지를 분배받았고, 영원히 팔 수 없도록 율법에 규정되었습니다. 심지어 왕이라 할지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나봇의 포도원).  만약 가난  등의 이유로 타인에게 귀속된다면, 모세 율법은 친족이 되사올 수 있게 하는 고엘제도와 더 나아가 희년이 되면 반드시 원 소유주에게 그대로 귀속되게 규정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이 토지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모든 백성들은 균일한 경제적 기반을 갖고, 하나님만 섬기며 상호간에는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이래 지파별, 가족별로 분배받은 땅은 그대로 후손에게 대물림되어 갔습니다. ‘지계석’은 이런 토지 소유권을 확정해 주는 아주 중요한 증표로서, 지계석을 옮기는 행동은 심각한 범죄였습니다(신27:17). 그러나, 악인은 지계석을 한 번에 조금씩 이동시켜 마침내 약자의 밭을 상당부분 잠식하는 묘수(?)를 발견합니다. 원한에 사로잡힌 고아와 과부를 누가 돌보아줄 것입니까? 잠언은 이런 악인을 멸망시키고 그들의 경계선을 지켜주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밝힙니다(15:25). 물론, 대행자는 왕이지만, 주님 자신도 섭리 가운데 도우실 것입니다. 이런 배경 하에, 주님은 과부처럼 불의를 당하여 기도할 때 신속하게 응답하실 것을 믿고 인내하라고 가르치시셨음을 유념해야 합니다(눅18: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18:8).

잠언 22:29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앞에 것이요 천한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본절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맡은 일을 능숙하게 해 내어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라는 권면입니다. ‘보았느냐’는 능숙한 사람을 간파할 정도로 예리한 분별력을 지녔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능숙한’ 이란 신속하면서도 숙련된 일꾼이 지닌 뛰어난 재능을 의미하며, 그는 왕 앞에 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에 반해, ‘천한 자’앞에 선다는 말은 그 능력이 인정받지 못하여 무시당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잠언의 이 교훈은 인간이 사는 어느 곳, 어느 시대에서나 참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노력하여야 합니다. 벤자민 프랭크린의 어머니는 본절을 벤자민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서  행하게 하였고, 벤자민은 그 당시 최첨단인 인쇄술에서 탁월한 기술을 갖추고  늘 이를 자랑하였지만, 그는 이신론자이지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한편, 어떤 회사의 인사팀장은 가능하면 기독교인을 신입사원으로 뽑지 않았는데, 열심인 신자일수록 회사에 대한 애정도 책임감도 없어 촌각을 다투는 일에도 교회를 핑계로 퇴근해 버리는 일을 여러 번 경험하였다고 합니다. 예배도 좋고 일도 좋습니다. 이 모든 일에 균형을 잡을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세상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나 다니엘이 이방 사회에서 왕의 총애를 받는 총리가 된 것은 신실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일에 능숙하고 민첩하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어려움에 봉착하면 당황합니다. 그러나 ‘왕앞에’ 서도록 노력해야만 하며, 또 성경은 우리를 위해 좋은 약속을 갖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5).

잠언 23:1-3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목에 칼을 것이니라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본절은 관원의 식사 초청 시 긴장하여  의도를 파악하라는 현자의  7번째 교훈입니다. ‘관원’이란 ‘다스리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평민이나 하급관리가 아닌 통치자를 보좌하는 궁정의 고위직을 말합니다. 이들은 사람의 생명이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대단한 권세와 권모술수에 능한 자들입니다. 따라서 말과 행동에는 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으므로, 제자들은 잔치에 초청받은 속내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화려한 대접에 마음이 팔려 경솔히 행동한다면, 큰 화를 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자나 권세 있는 자들은 결코 공짜로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제자는 마땅히 숙고하면서 초청에 응해야 하고, 식사 시에도 ‘목에 칼을 두라’는 현자의 명령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관원의 면전에서 식탐을 부리면 관원의 속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어 올무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식탐 때문에 리브가와 야곱에게 이용당하였고 결국 에서를 축복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였습니다.  따라서, 현자의 권고에는 음식에 대한 하찮은 식탐 때문에 정의를 그릇치기 보다는 네 목을 긋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를 상기시킵니다. (1) 탐내지 말라는 계명과, (2) 범죄하게 이끈다면 몸의 일부라도 잘라내겠다는 결의로 살아가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5:30).

잠언 23:4,5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본절은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도록 권면합니다. ‘애쓰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힘써 일하다’ ‘곤비하다’라는 뜻으로, 본문은 부자가 되기 위하여 지칠정도로 과도하게 노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가난이 나쁜 것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듯이, 부자와 행복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시기와 기회라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재물은 인간의 노력만으로 안되고(전9:11), 하나님이 재물얻을 능력을 주셔야만 가능함을 깨닫는 것입니다(신8:18). 또한, 부자가 재물을 맡은 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그 재물은 독수리처럼 날아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를 목표로 산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히려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돈에서 안전과 의미를 추구하려는 것이 인간 본성이기에 인간은 탐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을 주인 삼은 뒤에, 비로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 안에서 안전을 추구할 것입니다 (마6:24,25). 그러므로, 부가 현명한 노력, 즉 부지런히(10:4), 절제하며(21:17),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선물로서 획득된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축복입니다(3:16).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마음으로 획득된다면, 부는 저주가 됩니다(10:2;11:4). 우리는 늘 주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