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2:15절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본절은 이른바 ‘사랑의 매’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얽히다’는 ‘줄로 단단히 매다’라는 의미로, 아이의 마음에 단단히 매어진 ‘미련한 것’을 채찍으로 쳐서 제거하도록 교훈합니다. 물론, 그 전에 타이르고, 모범도 보이는 등 주님의 교양과 훈계를 가르쳐야 하나, 미성숙한 아이의 몸에 가해진 충격은 마음 속 깊이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징계의 채찍은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징계하기를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의 인격을 다듬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도록 도울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징계하지 않아 아이가 잘못되는 것과, 마지막 날 주님의 심판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또한, 자녀들은 주님의 은혜로운 선물로서, 자녀라는 은사를 지혜롭게 교육하여 많은 의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가정에서 세워져야만 합니다. 그 나라의 본질은 그분의 계명이 실천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한편, 본절은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는 성인이나, 정신적, 영적인 면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에 비추어 볼 때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격에 견고하게 묶여져 있는 영적 우둔함, 징크스에 대한 두려움, 죄의 성향들을 제거하기 위해 강한 채찍이나 회초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징계 후에는 의의 평강한 열매가 맺어질 것이기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7:14).
잠언22:16절
“이익을 탐해서,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사람과, 부자에게 자꾸 가져다 주는 사람은, 가난해질 뿐이다”(새번역)
22:1-16절의 주제는 ‘부와 도덕’에 관한 교훈입니다. 온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재물 역시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신8:17,18). 따라서 겸손히 그분의 뜻(도덕)을 행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15-16절은 이 단락의 결론이며, 아이들에 대한 바른 교육(15)과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주님의 주권(16)을 교훈합니다 . 만약, 주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많은 재물 보다’는 ‘좋은 이름’을 추구해야 합니다(22:1). 사람이 부를 증식시키고, 세력을 확대하는 두 가지 방법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부자에게 자꾸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절은 그 반대의 결과를 말합니다: “가난해질 뿐이다.” 왜 이런 역설이 성립할까요? 부자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부자의 호의를 얻기 위함입니다. 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아주 냉정하게 차 버립니다. 따라서,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한 그는 가난해지기 마련입니다. 또, 가난한 자를 학대하여 그들의 삶에 긴요한 재산을 빼앗는 자는 선물이 필요 없는 부자에게 주는 사람과 같은 바보입니다. 그는 주님의 심판의 칼을 멸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4:31). 주님은 불의하게 재물을 모으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며, 가난한 자를 보호하시는 ‘도덕적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입니다. 따라서 권력, 명예, 재물을 가질수록 주님을 경외해야만 한다는 교훈이, 22:1-16 단락의 결론입니다. “겸손한 사람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받을 보상은 재산과 영예와 장수이다.” (잠언22:4,새번역).
잠언22:17절
“17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10:1-22:16은 솔로몬 잠언의 모음집이지만, 22:17- 24:34은 익명의 현자들의 교훈집으로, 주님(야훼)을 경외하는 실천적 지혜의 삶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구조는 도입부(22:17-21), 30개의 교훈(22:22-24:22), 그리고 6개의 추가적인 교훈(24:23-34)으로 되어 있습니다. 17절의 ‘지혜있는 자의 말씀’이라는 문구는, 전통적으로 전해진 익명의 현자들의 가르침이며, 이집트를 비롯한 근동의 교훈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 기원이 외국이라고 하더라도, 내용은 주님 중심의 이스라엘의 지혜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한편, ‘지혜자의 말씀’을 들으라는 권면은 바로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라는 표현으로 바뀌어집니다. 이것은 어느 현자가 전통의 교훈들을 묵상하고 실천하여 자기 것(지식)으로 만들고 제자들에게 전달하면서 순종하도록 권면하는 모습입니다: ‘마음을 둘지어다.’ 우리는 지혜의 말씀으로부터 유익을 얻도록 그 가르침에 몰두하여야 합니다(1:8). 그러나 모든 지혜의 말씀의 정수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으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롬1:116). 실로,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죄인을 구원시키고 믿음으로 신실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삶이 변화되기 마련입니다. 본절을 포함한 모든 현자의 가르침의 목적이 여기(하나님의 뜻을 행함)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1:28).
시편146편
“할렐루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1절, 새번역)
146편에서 150편까지 다섯 편의 시는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과 끝을 맺으면서, 오직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또한, 개인적 차원의 찬양(146편)이 공동체로(147편), 그리고 하늘과 땅으로 확대 되고(148편), 진정한 찬양의 주체인 영광을 얻을 성도들의 찬양(149편)에 이어, 호흡이 있는 모든 것들의 찬양(150편)의 촉구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146편의 구조입니다.
A 찬양의 초대(1–4)
B 창조주 하나님(5–6)
C 보존하시는 하나님(7–9)
B′ 왕이신 하나님(10a)
A′ 찬양의 초대(10b)
‘할렐루야- 너희들은 야훼를 찬양하라’는 외침은 복수형이지만, 곧 단수로 바뀌어 시인의 개인적 찬양의 이유가 열거됩니다. 죽을 인간은 의지할 가치가 없으나(3-4), 하나님은 창조주이자 변치않는 분이기에 신뢰해야 합니다(6). 주님은 긍휼과 정의를 베푸시며, 갇힌 자를 해방시키며, 맹인의 눈을 여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며, 의인을 사랑하시며,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7-9). 끝으로, 시인은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시고…대대로 통치” 하시기에 참으로 그분을 찬양하자고 초대합니다(10). 아직 현실은 사망이 왕노릇하고 있지만, 마지막 부활의 새창조 때에는 이 시편의 찬양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승천하셨고,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심’(눅1:33)으로 이 찬양을 성취하고 계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편146:5,새번역).
시편147편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1절)
이 시편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합니다. 먼저, 주목할 표현은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입니다. 도움을 받으면 감사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마땅한 일이란 자연스럽고 이치에 맞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들게합니다. 시편기자가 창조, 보존, 구속의 사건들을 묵상해 보니, 하나님은 지극히 선하시고, 아름다운 일을 행하신 분이시며, 그분에 대한 찬양과 찬송은 ‘마땅한 일’이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 7, 12절에는 각각 찬양의 선포가 나오며, 시는 이를 중심으로 3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1-6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은 별의 수효를 세실 정도로 전지전능하고 위대하신 분인 동시에, 도덕적 분별력을 가진 백성을 돌보시는 분임을 증거합니다. 7-11절에서, 시인은 그분이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도 먹이를 공급하시는 넉넉한 분이므로, 당신의 백성들은 군대(기병과 보병)나 힘이 아니라, 당신을 경외하며 당신의 인자를 바라고 살기 원하시는 분임을 선포합니다. 12-20절은, 창조세계를 통제하는 핵심적 요소는 그분의 말씀임을 묵상한 뒤, 이방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백성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분의 ‘법도(말씀)’를 간직하는가의 여부임을 밝히면서, ‘할렐루야’로 끝맺습니다. 본시에서 흐르는 주제는 신구약 전체를 관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적 재물, 명예, 권력, 지혜를 가진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행하는 자들입니다 (중생). “주님은 말씀을 야곱에게 전하시고, 주님의 규례와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알려 주신다.” (시편147:19,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