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3/4/17-21)

잠언22:9절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랍비들의 격언 모음집’은 관대함, 겸손, 자신을 낮추는 태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의 3대 특질이라고 말하는 바, 본 잠언에서 ‘선한 눈’이라 함은 ‘관대한 사람’을 말합니다. 관대한 사람은 8절에 언급된 악을 뿌리는 사람과 대조됩니다. 전자는 자신의 소유조차 남에게 주는데, 후자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9절 후단은  ‘가난한 자에게 양식을 준다’는 말로 관대한 자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실로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긍휼한 마음으로  자신의 고기와 곡식을  필요한 사람에게 베푸는 모습이야말로 그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본 잠언은 축복의 성격과 축복을 주시는 분에 대하여 상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축복의 장본인이시고, 겸손하며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재물, 영광,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22:4)생명 속에는 그분과의 교제가 들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분이었기에 ‘주의 벗’으로 불렸습니다(사41:8).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그 가족이 포로로 잡혀가자, 가신들을 이끌고 추격하여 승리하고 일체의 재물을 되찾아 예루살렘 근처 왕곡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제사장이요 살렘 왕 멜기세덱이 영접하자, 그는 모든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드렸지만, 악한 소돔 왕에게는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돌려주었습니다. 악인의 소유는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14-15장). 이런 행동은 아브라함이 관대함을 넘어 하나님을 아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재물, 영광, 생명(장수)도 누렸지만, 실로 하나님의 친구였습니다. 이는 우리 믿음의 삶이 지향할 목표를 보여줍니다.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잠언29:7).

잠언22: 10
거만한 사람을 쫓아내면 다툼이 없어지고, 싸움과 욕설이 그친다.”(새번역)

‘다툼’이란 특정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으면 잘 나타나는 현상으로, 10절에서 말하는 ‘거만한 사람’이 그런 종류의 사람입니다.  ‘거만한 사람’의 원어는 ‘레츠’이며 조롱을 뜻합니다. ‘거만한 사람’은 죄(잠 14:9)와 심판(잠 19:28)을 비웃으며, 자신을 위한 길을 고집하는데,  그의 분별력을 흐리게 만드는 중심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만한 자’의 특징적 악은 ‘교만’입니다. 그는 미련한 자임에 틀림 없지만 고칠 수가 없는 것은, 어떤 책망이나 지혜로운 말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들을 조롱하시고 쫓아내십니다(잠3:34).  반 루엔이 말합니다: “한 공동체의 가입과 탈퇴 기준은 중요하다. 그것 없이는 하나님의 교회를 포함한 어떤 단체도 온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때때로  구성원을 추방시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거만한 백성을 심판하여 추방시키거나 멸절시킨 예로 가득차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첫 번째 예로, 그들을 추방시킴으로 에덴 동산은 비로소 평화를 찾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던 일곱 족속들은 그들의 범죄로 거의 멸절되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 역시 거만하게 모세 율법을 도외시 하다가,  1천년 동안 살던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전 세계에 흩어졌습니다. 이는 또한 최후의 심판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많은 무리에게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눅14:26)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우리 자신의 이기적 욕망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섬길 것입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6:2).

잠언22: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개정개역)

오래 전 미국 여행 시 차량 접촉 사고가 났을 때, 미국 사정에 밝은 처남 가족이 근처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인이 아니라, 권력자인  왕과 친분관계가 있다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런 관계에 호소하여 국법질서가 어지럽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왕은 친구가 없고, 혹 있어도 마음이 청결한 사람만을 친구로 삼을 것입니다. 왕의 친구는 통상 고결한 지혜자로서, 그의  입에서는 왕이 감탄할 만한 덕스러운 말이 나옵니다. 히브리 원문은 두 가지로 번역되나, 정결한 마음의 소유자는 자연히 품위 있게 말한다는 취지의 개정개역이 타당합니다. 언어는 마음의 거울이기에, 청결한 마음의 소유자는 말도 품위 있게 하기 마련입니다(16:23). 다윗 왕의 친구로 아렉 사람 후새가 있었습니다. 그는 압살롬의 반역 시에도  충성스럽게 예루살렘 성 내에 머물면서 당대의 모사 아히도벨의 급습 전략을 막아 다윗을 돕습니다. 한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도,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주저 없이 모리아 산으로 향한 것은  불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다락방 강화에서 제자들을 자신의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요15:13-16). 그리고 그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고 이어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 역시 친구되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마지막 날 부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행하십시오! 그러면 만 왕의 왕이신 주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시편143편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6절)

이 시의 저자는 다윗으로, 매우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시는 주님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 온 시인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요청으로 시작됩니다(1). 시인은 이 고난이 혹시 내 죄로 인한 심판은 아닌가 고민합니다(2). 이는 고난 당하는 모든 사람이 갖는 갈등이며, 우리를 좀 더 경건하게 합니다. 한편, 시인은 원수의 추격을 받아 언제 발각되어 죽을지 모르기에 낙담합니다(3-4). 그러나, 시인은 믿음을 갖고 주님의 과거 구원의 행적들을 되새기며 마음을 진정시키다가(5), 드디어 6절의 기도에 이르러 비상할 준비를 합니다. 지금 다윗은 주님의 은총과 구원이 절실합니다. 따라서 7절부터 시인은 11개의 탄원을 쏟아내며 더욱 열정적인 기도를 드립니다(7-12). 절실하면 절실할수록 우리의 기도가 활화산과 같이 나오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푸른 풀밭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막11:22-24).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 시편의 구성입니다.

   A1 (1–2) 관계- 주님의 성품
    B1 (3–4) 위험- 낙담하기 쉬운 인간
      C1 (5–6) 신뢰- 주님의 행적들
         D (7) 절박감 – 오직 주님뿐!
      C2 (8) 신뢰- 주님이 주시는 사랑
    B2 (9–10) 위험-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
  A2 (11–12) 관계- 주님의 성품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시편143:10).

시편143편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2절)

“감옥은 의인들로 붐비고, 교회는 죄인들로 넘친다”는 말도 있습니다. 범죄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대며 억울해 하는 반면, 훌륭한 시민들은 교회에 가서 오히려 죄를 회개하는 모습을 풍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 앞에 서면 의가 아니라 죄에 대한 지식을 갖게 마련입니다(롬3:20).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다 만군의 주님을 보자 자신의 입술이 부정함에 절망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주 예수님의 신성을 깨닫자, ‘주여 나는 죄인이니 나를 떠나소서’라고 고백합니다(눅5:8). 본 시편 2절은 주님의 거룩하심을 여실히 느낀 다윗이 긍휼을 탄원하는 장면입니다. 그런 내용이 “(언약적) 은혜와 믿음’을 강조하는 바울에게 이르렀을 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는 선포가 나왔고, 갈라디아서2:16과 로마서 3:9, 20에서는 죄의 보편성을 단언하는 구약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나면, 복음의 소망을 간직하고 사랑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20대에 살인범으로 몰려 25년 간 복역하다가 DNA 감식으로 무죄가 입증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처음에는 복수심으로 불타 10여년을 복역하는 중 어릴 때의 기독교 신앙을 되찾았습니다. 그 후 무죄로 석방되는 날 “이제 남을 미워할 시간이 없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쓰고 싶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말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