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3/3/13-17)

잠언21:28
거짓 증언하는 사람은 망하지만 진실한 증인의 말은 힘이 있다.”(공동번역)

본잠언은 거짓 증인과 진실한 증인을 대조시켜, 바른 증언의 중요성을 교훈합니다. ‘증인’이란 특정의 사실에 대하여 증명하는 사람이며, ‘증언’이란 그가 경험한 바를 있는 그대로 진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후단의 ‘진실한 증인’의 원문은 ‘들은 자’로서, 어떤 상황을 직접 보고 들은 목격자를 가르킵니다. 목격자의 증언은 확실하기 때문에,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개정개역)로도,   ‘진실한 증인의 말’(공동번역)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또한, ‘힘이 있다’는 말은 히브리어 ‘라네차흐’를 번역한 것이며, 이 단어는 ‘탁월하게’와 ‘영원히’의 두 개의 뜻이 있습니다. 문맥상 후자가 어울립니다. 그렇다면, 본절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는 진실한 증인의 말은, 거짓 증인의 말이 탄로나고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될 운명과 달리 영원토록 효력이 지속될 것임을 강조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법정은 증언에 의존하였습니다. 만약 증인이 거짓으로 말한다면 판결이 그릇될 것이고, 그 해악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나봇의 살해사건).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의 헌법에 해당하는 십계명은 ‘거짓 증언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동시에 출애굽기(23:1,2), 레위기, 신명기에도 반복하여 경계합니다. 특히 레위기24장에는 아버지는 애굽인이요, 어머니는 이스라엘 여성(슬로밋)인 어떤 자가 야훼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자 그를 들은 증인들의 말에 근거하여, 재판하고 이스라엘 회중은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레24:10-23). 한편, 대한민국도 형법에 위증죄(152조)를 두고 처벌할 정도로, 법정에 선 증인의 말은 진실하여야 합니다.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잠언19:5).

잠언21:29
악인은 자기의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삼가느니라

본절은 24절 이후 등장하는 악인의 유형들, 즉 교만한 자, 게으른 자, 거짓말하는 자, 뻔뻔한 자 중 그 마지막입니다. ‘굳게 한다’에 해당하는 원어 ‘헤에즈’는 ‘강하게 하다’입니다. 만약, 이 단어가 ‘얼굴’과 함께 사용되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으로, 악인은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임을 말합니다. 그러나 ‘얼굴을 강하게(굳게)한다’는 표현은 상대방을 속이려고 얼굴을 꾸미는 모습이나, 다른 사람의 현명한 충고를 무시하는 완고함을 묘사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후단의 해석이 중요합니다. 후단의 ‘삼간다’의 원어는  사본에 따라 다릅니다. 하나는 ‘케티브- 확립하다’와, 다른 하나는  ‘케레- 분별하다’입니다. ‘케티브’를 따르면, 겉과 속이 다른  악인과 달리, 의인은 신실하게 정도를 걷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경우 “악한 사람은 얼굴이 뻔뻔스러우나, 정직한 사람은 신실하게 살아간다”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케레’를 따르면, 의인은 자신의 길을 분별하기 위해 타인의 충고도 살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경우, ‘얼굴을 굳게 한다’는 의미는 완고함이며, 본절은 ‘악한 사람은 완고하지만, 정직한 사람은 자기의 행위를 잘 살핀다”로 번역됩니다. 악인은 완고하여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24). 이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입니다. 악인의 완고함과 의인의 사려깊음을 대비시키는 것이 본절의 취지라 볼 때, ‘케레’를 따른 후자가 좀 더 낫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려깊음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므로 주님의 뜻을 먼저 고려하기 마련입니다. “귀를 기울여서 지혜 있는 사람의 말을 듣고, 나의 가르침을 너의 마음에 새겨라.”(잠언22:17,새번역)

잠언21:30
어떠한 지혜도명철도, 계략도, 주님을 대항하지 못한다.”(새번역)

20:29-21:31의 주제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라’는 교훈이며, 30-31절은 “주님의 절대 주권을 생각하라”는 가르침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30절은 주님을 무시한 인간의 노력은 헛되다는 일반적 선언이며, 31절은 전쟁에서의 구체화입니다. 잠언에서 통상 지혜를 말할 때, 거기에는 주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자세가 들어 있습니다(잠1:7). 따라서, 주님을 대항하는 지혜는 타락한 인간의 ‘지혜’를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30절은 29절 전단에 언급된 악인의 길, 즉 뻔뻔하게 하나님과 그분의 교훈을 무시하는 악인의 노력은 성공할 수 없고, 29절 후단의 지혜자라 할지라도 주님과 독립하여 자신의 지혜로 행한다면 실패함을 선포합니다. 북왕국과  황금송아지 예배를 동시에 창시한 여로보암 왕이 앞부분의 예이며,  반역한 압살롬에게로 돌아선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이 뒷부분의 예입니다. 두 명 모두 실패하여 몰락하였습니다. 한편,  ‘지혜-호크마’는 제사장의 옷이나 금속공예 기술 등 ‘전문적 기술’을, ‘명철-테부나’는 ‘분별’을 본질로 하는 ‘실용적 통찰력’을, ‘계획(모략)-에차’는 ‘지혜로운 계획’(출18:19)을 말하나, 이는 강조를 위한 문학적 기교일 뿐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말을 부리려면 승마 기술이 필요하듯이, 본 잠언은 인간의 지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다만, 제대로 된 시각을 갖고 모든 것을 생각하라는 경고입니다. 즉 전지전능 하신 주님 앞에 인간의 능력은 하찮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신다” 하였습니다.”(고전3:19,새번역)   

시편135: 1절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새번역)

120-134편까지 ‘순례자의 노래’가 끝나고, 이어지는 두 편의 시-135편과 136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안전하게 성전에 도착한 순례자들의 마음에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양으로. 시편은 적절하게 배열되었습니다. 135편의 구성입니다.
A1 (1–4) 선택하시는 주님(야훼) 찬양
B1 (5–7) 창조주 주님(야훼)
C (8–14) 주님(야훼)의 행적
B2 (15–18) 우상숭배의 어리석음
A1 (19–21) 함계 계시는 주님(야훼) 찬양

135편은 먼저,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주님의 은총을 찬양합니다 (1-4). 그런데 그 주님은 위대한 창조주이시며(5-7), 야곱의 자손들을 큰 권능으로 애굽에서 이끌어 내사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8-14). 이 같이 언약에 신실하신 권능의 주님에 비하여 이방의 우상들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헛된 것들이며, 따라서, 우상숭배는 어리석은 짓입니다(15-18).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는 주님을 찬양하면서 마칩니다(19-21). 본시에는 주님을 찬양하는 분명한 이유들이 제시되어 있고, 이를 근거로 찬양과 순종의 메시지가 울려퍼집니다. 주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 주권자, 구속주되시기에 찬양을 받으셔야하고,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헛된 우상들 믿고 불순종한 모든 왕과 이방은 멸망 당하였습니다. 이런 결론 하에,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배로 초청하고, 또 예배로 마치면서 일관된 찬양의 구조를 우리 삶에 구축하도록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시편136:1절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새번역)

본시(26절)는 매 절마다 창조, 이스라엘의 구속, 그리고 온 인류의 보존에 깊이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언급하고, 이는 그분의 영원한 인자하심 때문임을 반복하는 일종의 돌림노래입니다. ‘인자’의 히브리어는 ‘헷세드’로서, ‘언약에 근거한 신실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후렴을 통해, 시인은 이스라엘의 이야기(애굽에서 구속,광야의 여정, 가나안 정복 등)가 형성되는 순간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임을 깨닫고 ‘인자하심’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인류에게도 적용되기에, 시인은 양식을 주사 육체의 생명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지만(25),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에게 영생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요3:16). 시의 구성입니다.
A (1-3)도입 찬송-신들의 하나님
B (4-9)창조를 찬송
C (10-24) 이스라엘의 구속을 찬송
B′ (25)창조를 찬송
A′ (26)맺음 찬송- 하늘의 하나님

시에서 강조되는 ‘인자=사랑’이 주님 속에 없다면, ‘신들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지위나, 창조의 경이로움, 구속의 능력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산을 옮길만한 모든 능력과 많은 지식을 갖고, 구제를 심히 많이 하여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고전13:1-3).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은사를 과시하려는 고린도교인들을 경계합니다. 또한, 우리가 신앙의 연단을 받을 때 고난 역시 ‘주님의 사랑의 이야기’의 한 대목임을 잊지 말고, 주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롬5:3-5).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