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1:16절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에 거하리라”
‘명철(明哲)’이란 ‘총명하고 사리에 밝다’는 뜻입니다. 원어는 ‘분별력 또는 뛰어난 식견’’을 지칭하는 ‘세켈’로서, 지혜(호크마)의 본질 중 하나입니다. 다윗이 남편 나발을 죽이려고 올라올 때 급히 떡과 포도주를 마련하여 영접을 나간 아비가일의 모습에서 ‘세켈’의 전형을 볼 수 있습니다. 잠언은 지혜(명철)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9:10)이라고 교훈합니다. 그렇다면, ‘명철의 길을 떠난다’는 것은 만유를 지으시고 통치하시며 모든 도덕과 윤리의 원천이신 주님과 상관없이 살겠다는 의도이고, 타락한 아담의 원죄의 발현입니다. 당연히 악(자기존중)으로 치닫게 되고, 그 귀결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은 빛과 생명이시기에, 빛을 떠나는 순간 어둠 속을 다니게 되고, 생명을 버리는 순간 사망하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을 떠난 사람은 필연적으로 ‘사망의 회중에’ 살게 됩니다. 본 잠언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죽은 자들의 무리에 속하게 된다고 교훈한 이유입니다. 여기 역설이 있습니다. 이탈자는 자신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서 떠났지만, 그의 마지막 도착지는 죽음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죽지만, 여기서의 죽음은 때 이른 죽음이나, 죽은 뒤 찾아 오는 영원한 죽음(심판)을 의미합니다. 복음이 이것을 밝히 선포합니다. 사망의 핵심은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삶이고, 생명의 핵심은 주님을 알아가는 명철(지혜)의 삶입니다(요17:3). 그러므로,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간 것은, 명철의 길을 떠난 신약의 예입니다(딤후4:10).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욥28:28).
잠언21:17절
“향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사람도 부자가 되지 못한다.”(새번역)
잠언은 가난하게 되는 여러 원인을 알려 줍니다. 가장 일반적인 원인은 ‘게으름’이지만, 17절은 과도한 지출을 또 다른 원인으로 제시합니다. 전단은, 쾌락에 사로잡혀 사치와 향락을 쫓으면, 결국 빈곤하게 된다는 일반적인 진술이며, 후단은, 그 일례로서 오늘날 우리가 ‘파티’라 부르는 여러 축하 행사를 적어 놓았습니다. ‘술과 기름’은 이 당시 사치스러운 향연을 위해 이용되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술이야 지금도 파티에 늘 등장하는 요소이지만, ‘기름’은 손님의 머리나 의복에 부어 환대를 표시하는 매우 값비싼 물건이며, 흔히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성경은 술을 반대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적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의인 노아도 술에 취해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왕 르무엘의 어머니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 것을 아들에게 훈계합니다. 왕의 지위에 앉아 술 때문에 법을 잊어버리고 송사를 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31:4,5). 한편, 잠언은 정당하게 모은 재산과 부는 하나님의 축복임을 밝혀줍니다(10:22). 다만, 그 부로 인해 교만해져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으려고 하는 그 자세가 문제입니다. 따라서, 향락을 좇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없애고 있는 것입니다. 재산은 한 번 떠나면 다시 모으기 어렵습니다. 본 잠언은 전도서9:7-9절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거기서 솔로몬은 향 기름을 바르고, 먹고 마시고,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며 열심히 일하도록 권고합니다. 성경적 삶은 고행도 방탕도 아닌 감사와 경건의 삶입니다“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딤전5:6).
잠언21:18절
“악인은 의인의 속전이 되고 사악한 자는 정직한 자의 대신이 되느니라”
본 잠언은 악인의 계획과 행동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전단의 ‘악인’은 하나님의 성품에 반대되며, 공동체에 적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자를 지칭하고, 후단의 ‘사악한 자’라 함은 악인의 한 유형으로 인간관계에서 신실치 못한 사람(배신, 속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거짓의 함정에 빠뜨려 멸망시키려는 악인의 계획을 돌려서, 의인은 구하시고 그 대신 그 악인이 자신의 덫에 걸려 멸망케 하신다는 교훈입니다. 그 섭리의 집행자는 왕 같은 지도자들로서, 에스더서에 나오는 페르샤 왕 아하수에로가 그 좋은 예입니다.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의 고관으로서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몹씨 미워하였습니다. 모르드개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한 바 있지만, 자신의 질녀가 황후임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사건 진행 중에 하나님의 섭리로 모르드개의 선행이 밝혀지고, 뒤 이은 황후 에스더의 고발로 하만은 결정타를 맞습니다. 격분한 왕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운 장대에 하만 자신을 매달아 죽였습니다. 이 기사는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첫째, 모르드개의 선행입니다. 그는 왕의 암살을 막았으나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둘째,에스더가 가진 왕비라는 합법적 신분입니다. 이 두 요소는 하나님의 섭리의 테이블이 돌아가는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집행하시면서 의인을 보호하고 계심을 믿고, 우리 사회에 인정되는 합법적인 신분을 갖도록 성실히 일하면서, 묵묵히 선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14:43)
시편128:1절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명에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나 복을 받는다.”(새번역)
경건한 사람은 주님을 두려워 하여, 그분의 뜻에 따라 삶을 확립합니다. 그의 삶에 보이는 참된 행복의 요소를 시인은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경외(하나님에 대한 바른 관계,1a)와 순종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습관들,1b), 그리고 수고한 만큼 받는 번영입니다(2). 뱀은 “너는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창3:5)라며 아담을 유혹하여 타락시키자, 인간은 “각기 제 길로 갔고”(사53:6),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경건한 자의 삶은 그 반대였습니다. 이어 시인은 그의 가정으로 가 보았습니다. 가정의 중심에는 신실한 아내와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장래이며(3), 경건한 가정은 공동체의 견고한 구성원입니다(127:4-5). 진실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4). 만약, 경건을 한 사람이나, 한 가정에만 맞추면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보일 수 있기에, 시인은 신실한 자들의 모임인 시온, 즉 이스라엘로 그 눈을 돌립니다. 그곳의 평안, 번영, 축복은 경건한 자와 그 가족의 행복 조건이기에(5), 시인은 이스라엘의 평강을 구하며 시를 맺습니다(6). 신약에 이르면, 주님을 믿는 신실한 자들의 모임인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하고, 영적 이스라엘로 불리웁니다 (갈6:16).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서로 간에 장벽을 쌓지않고 성령님 안에서 하나가 됨으로, 영적 예루살렘의 참된 시민임을 보여줍니다 (히12:22이하). 그들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한 소망과 충만한 기쁨이 있습니다(엡4:2-6).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편128:3).
시편129:1절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129편은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1-4)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감사/ (5-8)하나님의 심판을 기도. 1-4절에서 시인은 고난과 구원을 회상하고, 5-8절에서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생각합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의 침략을 많이 겪었으며, 매우 위협인 순간들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중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의로운신 주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원수들을 몰아내신 구원을 여러 번 체험하였습니다 (4). 주님은 결코 이런 기준에서 벗어나신 적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은 이집트 왕국, 늘 괴롭혀온 블레셋, 무섭게 압박한 앗시리아, 그리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시킨 바벨론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스라엘은 보존되었습니다. 지금 시인은 원수들의 심판을 위해 기도합니다(5-8).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일시적이며(6), 성공하지 못하며(7), 이웃의 호의조차 받지 못하고, 축복의 공동체로부터 배제될 것입니다(8). 물론, 여기서 시온이란 모세를 통해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민족을 뜻하지만, 그 옛 언약은 그리스도로 인한 새 언약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이 함께 모이는 영적 이스라엘, 즉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오히려 이미 끊어진 옛 언약에 충실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시인이 드린 심판의 기도는 그들 위에도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율법 해석을 통해 영생을 추구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