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1:2절
“사람의 행위는 자기의 눈에는 모두 옳게 보이나,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꿰뚫어 보신다.”(새번역)
본 잠언은 사람의 판단이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반면, 주님의 판단은 완전하고 공의로우심을 대조합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근거로 판단하기에 불완전하나, 주님은 ‘마음’의 동기까지 꿰뚫어 보시므로 공의로우십니다. 동일한 교훈이 잠언16:2절입니다: “사람의 행위는 자기 눈에는 모두 깨끗하게 보이나, 주님께서는 속마음을 꿰뚫어 보신다”(새번역). 다만 각 절이 위치한 문맥이 다릅니다. 16:2절은 사람이 계획하나, 축복하시는 분은 주님이시기에(3). 주님을 경외하고(동기), 주님의 뜻 안에서 그 계획을 펼쳐나가야(행동) 성공한다는 가르침입니다. 21:2절은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행동한다는 측면은 같으나, 주님은 당신의 대리자인 왕을 통해 축복한다는 교훈입니다. 왕(=지도자, 권한 있는 자)의 마음은 주님에 의해 인도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1). 주님은 왕과 그 신하들이 옳게 여기는 가치에 맞추어 행동하는 자들에게 ‘생명의 물줄기’가 흘러가게 하실 것입니다. 요약하면, ‘자기 기만’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주님을 감안하여 판단하라는 격려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갔을 때였습니다(삼상16:7). 장자 엘리압의 큰 키와 훌륭한 용모 때문에 사무엘은 “이 사람이 바로 사울 대신 왕이 될 자가 아닌가?” 생각하였으나, 주님은 “겉모습과 큰 키만 보지 말라. 나는 중심(마음)을 본다”고 하신 뒤, 막내 다윗을 택하여 기름을 붓게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과 현자의 조언에 귀 기울이면, 분별력을 갖게될 것입니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갈6:7,새번역).
시편119:145-152절–‘코프(ק)’ 연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145절)
‘코프’ 연의 주제는 “위기와 신자의 반응”입니다. ‘반응’은 기도, 고백, 결단, 헌신, 감사 등을 포함합니다. 이 연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하나님께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약4:8)와 상응됩니다. 첫 부분(145-148)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모습입니다. 위기를 맞이한 시인은 전심으로 주님께 부르짖고, 주님의 교훈을 지킬 것을 약속하며(145,146), 새벽에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의 약속 성취를 고대합니다(147,148). 기도는 순종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순종 없는 기도는 혼자 중얼거리고 외치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한 여호수아가 장로들과 함께 심히 근심하며 하루 종일 주님 앞에 엎드렸을 때, 주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고 질책하셨습니다. 그들의 패배는 불순종(아간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순종을 위해서는 계명이 전제되며, 그렇지 않은 기도는 헛될 뿐입니다. 둘째 부분(149-152)은 가까이 오신 하나님입니다. 위기가 짙어질 때 주님은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계십니다. 원수는 해를 가하려고 주님은 구원을 위해 가까이 오십니다. 시인이 의지하는 주님은 약속대로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을 주신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기반을 두는 증거는 영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인간이 되셔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원한 구원을 이루시고, 지금 만유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우리 믿음의 고백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나는 그 증거를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152절,새번역).
시편119:153-160절–‘레쉬(ר)’ 연
“내가 주님의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내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져 주십시오” (153절,새번역)
‘레쉬’ 연의 주제는 ‘신실함과 구원’입니다. 세 가지 신실한 대상이 보입니다: 주님의 법(말씀)을 잊지 않은 신실한 시인(153), 언약, 인자, 그리고 구원에 신실하신 주님(154,156,159) 그리고 결코 변치 않는 신실한 그 말씀(160). 그러나 인간의 신실함은 당연하게 여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시인이 신실하게 살려고 하여도, 인생에는 고난이 존재하며, 악하고 신실치 못한 사람들로 인한 위협 때문에 불안정합니다. 우크라이나가 야망을 가진 푸틴에 의해 침공당하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따라서, 시인이 부르짖는 것 같이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 약속 그리고 결정에 근거한 갱신과 구원이 계속 필요합니다. 따라서, 시인은 ‘건지소서’ ‘살리소서’와 같이, 구원을 위한 기도를 반복적으로 드리는데, 이는 ‘레쉬’ 연의 핵심을 이룹니다. 그것은 또 우리가 고난을 통과할 때 드려져야만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신실하신 주님으로부터 오는 응답을 기다리고 그분의 계명을 신실하게 지키며 살아가야 하지만, 주의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주님의 구원의 근거는 주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적 관계이고, 이 언약적 관계는 주님의 피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이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Yes’가 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고후1:20). 끝으로, 본 연은 그분의 말씀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언하면서 마칩니다. “주님의 말씀은 모두 진리이며, 주님의 의로운 규례들은 모두 영원합니다” (160절,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