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2/12/19-23)

마태복음1: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월 25일은 성탄절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주님이 인간이 되신 목적 즉 메시야의 사명을 밝히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께서 세상에 들어오셨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이 사명은 33년 후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길에,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 좌우편에 앉게 하여달라고 어머니를 통해 간청을 드릴 때 주님이 직접 선포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8)고 확증하신 후,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물론 이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고대하였지만, 제자들을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죄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이 그분의 사명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침례 요한조차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를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정도라면, 성육신은 불필요하고, 미가엘 천사만 보내면 족합니다. 아무리 로마를 몰아내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함하여 모든 인류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고, 죄와 사망은 물론, 이를 근거로 죄를 짓게하여 자신의 종으로 삼는 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심판과 사망입니다. 주님은 절망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성탄절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겨야 합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2:26)

마태복음1:24,25절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성탄절이 오면, 우리는 두 분을 꼭 기억하게 됩니다. 모친 마리아와 양부 요셉입니다. 두 분 모두 다윗의 자손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한 동네 나사렛의 청년으로, 처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통상의 약혼 기간은 1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3개월 동안 유대에 갔다온 뒤, 임신한 정황이 나타나자 의로운 요셉은 조용히 파혼하고자 하였습니다(1:19). 마리아 역시 설명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은 꿈을 통해 개입하셨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만, 꿈은 이 당시 계시의 한 수단이었습니다. 그 요지는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으로 된 것이며, 그녀가 낳을 아들은 당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의 성취이니 아내로 데리고 와라”(1:20-23)는 분부였습니다. 요셉은 순종하였습니다만, 일평생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하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이 같이 우리의 믿음의 삶은 이해받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의하여 초자연적 순종의 열매를 맺는다는 점이, 단순한 도덕적 순종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요셉은 예수께서 12살 될 때까지만 나타납니다. 사람이 알기에는 요셉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만은 알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맏아들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점을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 분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중생).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누가복음 1:31절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누가복음은 모친 마리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천사장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마리아는 목수 요셉과 정혼한 사이로서 통상의 행복을 꿈꾸었지만, 이보다 더 큰 행복을 계획하신 하나님은 구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실 메시야를 보내시고자 개입하셨습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1:32,33). 그러나 성령님의 능력으로 잉태하여도, 잉태한 사실 자체와 그 낳은 아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키울 것인가는 심각한 과제였습니다. 정혼자 요셉의 순종 역시 요구되는 순간입니다(38). 두 분은 믿음의 비밀을 간직하고, 어려운 세상살이에도 메시야를 키우는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그 후 마리아는 요셉의 자녀를 여러 명 낳았고, 주님은 형제들 사이에서 정상적으로 자라나셨습니다. 예수가 계신 마리아의 가정이 부자나 권력자가 된 것은 전혀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들은 성전의 헌물로 드렸거나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엄청난 계시와 보물들을 받았지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자신의 본분을 지키어 남편 요셉과 장남 예수의 목수의 일을 통해 평범하게 살아갔습니다(막6:1-6). 이것이 이 세상에서의 믿음의 모습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과 섬김. 외형적으로는 똑같아 설명할 수 없지만, 예수가 계신 사람과 가정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

요한복음 7:5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은 양부 요셉과 마리아의 소생으로 4명의 남동생들(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과 누이들이 있었습니다(마13:55,56; 막6:3). 물론 세상에서 보기에는 예수님조차 요셉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중 야고보(행1:14; 15:13; 21:18; 고전15:7; 갈1:19; 2:9)는 가장 중요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수십 년 동안을 가족으로 살았고, 요한의 침례 후 행하신 많은 표적과 뛰어난 가르침을 보고 들었습니다(요7:4). 그러나 이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미쳤다는 말에 주님을 붙잡으러 친척들이 나섰을 때, 모친과 동생들 역시 염려되어 설교하시는 집의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부른 적도 있었습니다(막3:21, 31-32)). 어떻게 보면 수긍이 갑니다. 표적과 가르침은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예언된 그 다윗의 자손 메시야라는 선언은 육신으로 보면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눅4:16-30). 그러나 주님은 친절하셨습니다(요7:7-9). 그들 역시 당신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목격한 모친 마리아는 물론 모든 동생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고전15:7), 승천을 경험한 뒤에야, 비로서 당신의 형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으로 순교하였고, 야고보서도 썼으며, 유다서는 역시 주의 동생 유다의 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 주님의 충실한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성령께서 눈을 열어주셔야 가질 수 있습니다(고전2:12; 중생).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친절히 대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4).

누가복음 2:11절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지식, 재산, 권력, 명예, 건강, 친구들 등이 있어도, “공연히 구체적인 사실이나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에 대하여는 형사상, 민사상 책임 모두 다 인정되어 처벌을 받습니다(명예훼손죄-형법307조). 그러나 이 죄는 형법전의 수백 가지 중 오직 하나입니다. 누구든지 이 수백 가지 죄 중 하나만 범해도 평생 두려움의 종이 됩니다. 벗어나는 방법은 죄값을 치루거나, 대통령이 사면·복권해 주는 것입니다. 그 사면·복권의 행사가 주님이 베푸시는 속죄와 칭의로 인한 구원과 유사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여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요5:29;롬3:23). 인간이 참되신 하나님을 부인하고, 피조물인 우상을 섬기거나 자신을 주인으로 둠으로써, 마귀의 손아귀에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이간질시키거나(마귀의 원어인 ‘디아볼로’ 의 의미), 욕망을 부추키거나, 죽음의 논리로 위협하여 인간으로 죄의 길, 탐욕의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요일5:19). 하나님은 너무나 인간이 불쌍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진리, 즉 살아계신 하나님과 다가올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요일5:20). 그리고 친히 우리 죄를 담당하게 하셨습니다(요3:16; 롬3:24-26).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와 같이 혈육에 함께 속하신 이유이며, 성탄절의 가장 중요한 의미입니다.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조차 내려와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 불렀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 깊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