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0:20절
“부모를 저주하는 자식은 암흑 속에 있을 때에 등불이 꺼진다.”(새번역)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전 우주적 진리로서, 십계명에 규정되었습니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주 너희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다.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 살면서 복을 누린다”(신5:16). 이 계명은 ‘부모공경’이라는 긍정적인 의무와 함께, ‘장수와 형통’의 약속을 줍니다. 사도 바울 역시 ‘부모공경’의 계명을 ‘약속을 가진 첫 계명’으로서,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잘되고 장수하는 비결임을 가르칩니다(엡6:1-3).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저주하는 자녀들의 피를 그들의 손에 넘겨 놓으시고 심판하도록 규정하셨을 정도로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심각한 범죄였습니다(출21:17). 잠언은 지혜라는 시각에서 그 이면을 밝힙니다. 학교가 없던 시절, 부모는 지혜의 주된 원천이었습니다 (잠언1:8,9). 따라서, 그런 부모의 말씀에 순종은커녕 저주하는 자녀들은 바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나아가, 본 잠언은 자신의 부모를 저주하는 자들을 저주합니다. “등불”이란 사람의 운명을 상징합니다. ‘암흑 속에 있을 때 등불이 꺼진다”는 문구는 패륜 자식을 기다리는 무서운 결과를 말하며, 사망과 영원한 형벌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만, 부모에게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기 위한 근거로 인용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성경주석가 고 박윤선 목사님은 결혼한 자녀들에게 잠언30:17절을 인용하여, 부모를 비판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지만, 자녀들의 큰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우리의 타산지석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 슬기의 근본이다.”(잠언9:10,새번역).
잠언20:21절
“처음부터 빨리 모은 재산은 행복하게 끝을 맺지 못한다.”(새번역)
흔히들 창업과 수성(지키기) 중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창업은 좋은 아이디어와 사업적 수완을 결합하여 기업을 일으키게 되는 단발적인 노력인데 비해, 수성은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 맞추어 끊임없이 회사를 적응시켜야 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사업 시작부터, 혹은 젊은 나이에 큰 노력 들이지 않고 빨리 재산을 모은 사람은 수성의 지혜를 갖추기 어렵습니다. 좋은 예가,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입니다. 돈을 관리하는 법을 몰라, 가족 간의 갈등은 물론, 모르는 사업에 투자하여 당첨된 돈 전부를 잃어버렸다는 보도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 나중 형편은 처음보다 훨씬 못합니다. 왜냐하면 돈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직업, 건강, 가정 모두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본 잠언은, 전 절(20절)에 등장하는 ‘부모를 저주하는 자식’의 행동 이유를 말해줍니다. 그 불효자식은 부모의 재산을 빨리 받아내려고 패륜적인 행동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렇게 얻은 재산으로 어떻게 행복한 삶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탕자의 비유가 잘 말해줍니다(눅15장). 물론, 주의해야 할 사례도 있습니다. 삼성 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20초반에 만석의 부자인 아버지에게 자신의 몫을 요청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오늘의 삼성그룹을 일구어냈습니다. 정주영 회장 역시 10대에 아버지의 소 판 돈 70원을 훔치는 등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끝에 오늘날의 현대그룹을 세웠습니다. 물리법칙이 아닌 인간의 문제에 예외 없는 일반원칙은 없지만, 이분들 역시 많은 난관을 겪고 사업적 지혜를 갖춘 분들입니다. “올바른 사람의 앞길은 동틀 녘의 햇살 같아서 점점 밝아져 대낮처럼 환해진다” (잠언4:18, 새번역)
잠언 20:22절
“악을 갚겠다” 하지 말아라. 주님을 기다리면, 그분이 너를 구원하신다.” (새번역)
이 잠언은 바보들의 나쁜 말을 듣고 어리석게 대응하지 말고,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주님을 신뢰함으로써, 지혜롭게 반응하라고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심판자 되신 주님은, 당신을 믿고 기다리는 경건한 백성의 손해를 보상해주시며, 그에게 잘못 행한 자에게 공정한 벌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리고 언제 이루어질까요? 마지막 날 내려질 최후의 심판 전까지, 모든 상과 벌은 섭리를 통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시간이 올 때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겸손히 기다려야만 합니다(합2:3). 시편25:3, 27:14, 37:14, 그리고 마태복음5:38-48, 누가복음18:7,8 등을 보면 같은 취지입니다. 물론 로마서 12:17-21도 빼놓을 수 없는데, 사도 바울 역시 믿음 때문에 고난당하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같은 명령을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복수의 감정이 치솟으면, 오판은 물론, 죄에 비하여 지나친 보복이 가해지는 사례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1963년 한국 사회를 떠들석하게 한 고재봉 상병이 죄 없는 일가족을 살해한 사건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본 잠언의 명령이 율법이나 형법 등에 형벌이 규정된 범죄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범죄들은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나 재판부의 권한 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잠언의 명령이 적용되는 범위는, 참을 수 있는 사소한 모욕이나 부당한 조치들, 잘못은 분명하나 규정된 벌칙이 없는 경우, 그리고 네로와 같이 너무나 권력이 강하여 법률이 집행될 수 없는 경우 등이라 하겠습니다.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마5:41,새번역).
시편119:89-96절 –‘라메드(לְ )’연
“주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으며, 하늘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89,새번역)
‘라메드’ 연의 주제는 ‘주님의 영원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첫째 행(89)에서 출발하여 전체 연을 이끌고 나가다가, 마지막 행(96)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됩니다. ‘영원히’라는 단어는 주님이 한결같이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심을 뜻합니다. 그 증거는 그분의 말씀이 창조한 하늘이 굳건하고 영속적인데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은 더욱 확실합니다. 하늘을 지배하는 그 말씀은 하늘 아래의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존재에게 권위를 행사할 위치에 있습니다(90).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성품과 뜻을 표현합니다.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존재들- 하늘, 땅, 인간 등 -은 그분의 뜻을 준행하는 종들입니다(91). 시인 역시 주님의 종인 것은 피조물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그분의 영원한 말씀을 즐거워하였기 때문에 고난 속에서도 살아남았다고 증언합니다(92). 고난이 닥칠 때 사람들은 재물이나 권세 있는 사람을 의지하지만, 시인은 주님의 영원한 말씀을 보화처럼 즐거워하였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시인의 경험은 헌신의 동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굳건한 말씀이 시인을 멸망에서 지켜준 것처럼, 이제 갱신도 가져왔습니다(93). 이같이, ‘말씀에 대한 헌신’ 은 주님께 속한 자들을 구분하는 특징이며(94), 고난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적대적인 악인들은 아직 시인을 엿보고 있지만, 시인은 신실하게 주님의 증거를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95). 이것이 바로 시인이 살면서 발견한 생명의 길이며, 우리의 길입니다.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시편119:96).
시편119:97-104절 –‘멤(מְָ)’연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97)
‘멤’ 연의 주제는 “말씀에 대한 사랑”입니다. 간청은 없지만, 시인은 희열에 차서 참된 지혜의 원천인 ‘주의 법’(토라)에 대한 사랑을 노래합니다. 시인은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기에 종일 묵상하였고, 이로부터 많은 유익을 얻었습니다. ‘멤’ 연은 97-103절과 104절로 구분됩니다. 앞부분(97-103)은 두 개의 ‘어찌’로 묶여집니다: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97)와 ‘어찌 그리 단지요’(103). 뒷부분(104)은 결론입니다. 말씀을 사랑하여 종일 묵상하는 시인은, 원수보다 우월하며(98), 인간 스승보다 더 크고(99), 전통을 능가하는 지혜를 얻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로써 지성의 훈련은 말씀 묵상을 통해 주어짐을 깨닫게 합니다. 더욱이, 시인이 사랑하는 말씀은 그의 삶을 지도합니다(101-103). 즉, 그것은 시인을 가르쳐서 악한 길을 피하게 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 말씀은 주님 자신이 가르치는 음성이며 본질적으로 즐거움의 원천입니다(103). 요컨데, “말씀에 대한 사랑”은 건전한 마음(명철- 진리를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과 믿을 수 있는 감정(‘미워하다’)과 바른 삶으로 가는 길입니다. 묵상과 순종의 순서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일관된 묵상의 삶(97,98,99)은 순종의 삶을 낳기에(100), 말씀은 삶을 바꾸는 능력의 원천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를 깨닫고, 꿀보다 더한 기쁨을 맛보게 되기 때문입니다(101). 따라서, 신자의 순종에는 두려움과 기쁨이 함께 공존합니다. “주님의 법도로 내가 슬기로워지니,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합니다.” (시편119:104,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