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0:14절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아담 스미스는 물은 효용이 큰데 교환가치가 적고, 다이아몬드는 효용은 적은데 교환가치가 높은 데서 알 수 있듯이(가치의 역설) 상품의 가치와 효용은 비례하지 않고 노동이 가치의 척도라고 주장하였습니다(공급측 강조). 100년 후, ‘가격은 한계효용에 결정된다”고 주장한 한계효용학파가 등장하여 이 역설을 해결하였습니다(수요측 강조). 오늘날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됨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 보다 2,800년에 지어진 본잠언의 목적은 경제현상을 논하는데 있지 않고, 경제활동을 통해 나타난 인간 심리를 파악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순진하게 살아가면 안 되고, 그 이면을 꿰뚫어 볼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에 매우 민감합니다. 그러므로, 거래 현장에서, 판매자는 손님이 생각하는 ‘이익’ 혹은 ‘심리’를 간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구매자는 사고 싶은 물건을 발견하면, 좀 더 싸게 사려고 여러 가지 흠을 들추어 내면서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판매자는 손님이 지불하고자 하는 금액과 판매하려는 물건의 적정가치를 비교형량하여, 할인 폭을 결정합니다. 그러면서, 손님에게는 ‘이런 가격으로는 도저히 팔 수 없지만, 당신에게만 특별히 드리겠습니다’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구매자는 속으로 기뻐하며 돌아가서 싸게 샀다고 자랑하지만, 판매자는 그 위에 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입니다. 겉모습과 실재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잠언의 취지를 고려해 볼 때, 어릴 때부터 거래나 아르바이트를 시켜서 실제 삶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깊은 물과 같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낸다.”(잠언20:5,새번역).
잠언20:15절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삼국지』를 읽으면, 유비는 자신을 도울 지혜자 제갈공명을 얻고자 애를 쓰는 장면이 나옵니다 (삼고초려). 사업에 입문한 사람 역시, 경험 많은 상인에게 장사의 비결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좋은 판단력을 갖고 적절한 권고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희귀한 보배입니다(15). 이런 보배와 같은 사람을 얻으면,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지식과 지혜로 인하여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입술은 소유하기 쉽지 않습니다. 본절에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값진 금속들로 이루어진 장인의 작품들(목거리, 반지 등)은 단순한 금이나 진주 보다 훨씬 귀합니다. 귀금속이 이들의 재료인 것은 물론, 훌륭한 기술을 가진 장인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정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입술’도 같습니다. ‘생각이 담긴 언어’는 하나님이 확립하신 도덕질서에 맞는 지혜를 담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고된 훈련과 교육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귀금속들이나, 귀금속 장식보다 훨씬 귀중한 지혜가 나오는 ‘입술’입니다. ‘귀중한 이유는’ 지혜를 얻으면, 부, 명예, 장수 그리고 화평 모두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잠3:15). 다만, 지혜나 명철도 주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에 모사로 초청받은 아히도벨은 다윗의 진영을 파할 좋은 지략을 주었지만, 아렉 사람 훗세의 반론에 막혀 채택되지 못하였습니다. 다음날 아히도벨은 고향으로 내려가서 집안을 정리하고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나, 지혜자 아히도벨은 주인을 잘못 택하였고 실패하였습니다.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이다.” (잠언25:11,새번역)
잠언20:16절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공동번역)
하나님은 가난한 자가 겉옷을 담보로 제공하더라도 해질녘까지는 돌려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신24:10-13). 그래서 이스라엘의 전통은 겉옷은 담보로 취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예외규정이 등장합니다. ‘취하라, 잡을지니라’는 명령형은 본잠언의 메시지를 잘 전달합니다. 그 방향은 채권자에게입니다: “어리석은 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라.” 잠언은 아무관계도 없으며 낯선 타인의 빚 보증을 서지 말라고 누차 경고하나, 이를 무시한다면 어리석은 자입니다. 갚을 것이 없으면 누운 침상조차 빼앗기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잘모르는 낯선 ‘타인’은 물론, 아무관계도 없는 외국인(‘외인’)의 빚보증을 서려고 하는 사람은 철이 없거나 바보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2:26,27). 잠언은 통상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교훈하며, 그런 행위는 주님께 꾸어드리는 의로운 삶임을 밝힙니다(14:31;19:17). 그러나, 타인 혹은 외인의 빚의 보증물로 제공된 자의 의복이나 몸을 취할 경우는 아닙니다. 자기 빚도 아니고 잘모르는 남을 위해, 외국인을 위해 보증을 서는 바보의 의복이나 몸을 취하는 채권자는, 하나님의 정의를 대신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채무불이행이 있을 때, 채권자는 가차없이 의복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종으로 삼아야 합니다. 만약 어리석게 보증을 선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열렬히 그리고 부지런히 채권자에게 가서 자비를 호소하는 길이외에는 없습니다(잠언6:1-2).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는 채권자, 채무자, 보증인의 관계를 잘 규율하고 있습니다만, 본잠언의 메시지를 우리 마음에 새겨야만 지혜로운 비즈니스의 삶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오만한 사람에게는 심판이 준비되어 있고, 미련한 사람의 등에는 매가 준비되어 있다.”(잠언19:29,새번역)
시편119:57-64절 – ‘헤트(חֵָ)’ 연
“주님, 주님은 나의 분깃, 내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겠습니다.” (57,새번역)
‘헤트’연의 주제는 ‘순종의 원천과 모습’이며, 주님(야훼)에 대한 신뢰로 시작하고(57), 주님의 신실한 사랑(헷세드)으로 맺습니다(64). 시인은 주님의 ‘인자’하심이 온 세상에 충만함을 고백합니다 (64). 그 ‘인자’ 하신 주님 자신이 시인의 분깃(한 몫으로 받은 유산)임을 고백하는데(57), 가나안에서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 지파와 같습니다 (수13:14,33). 이것이 시인의 순종의 원천이며, 순종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말씀에 대한 헌신, 약속에 대한 신뢰, 율례에 일치되는 삶 등(55-56). 지금 시인은 역경 속을 헤쳐가지만, 순종은 지속됩니다. 그는 ‘주님의 증거를 따라 갔고’(59), 계명을 서둘러 지켰으며(60), ‘악인들의 줄(권모술수)이’ 두루 얽혔어도 주님의 법을 잊지 않은 것은 물론(61), 주님의 의로운 규례 때문에 밤중에도 벌떡 일어나 감사를 드렸습니다(62). 한편, 시련 가운데서 시인은 은혜를 간구합니다만, 주님의 구원은 지체되고 있습니다(58). 그럼에도 그는 충성스러웠습니다(61).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밤에 오히려 감사의 노래를 합니다(62). 광풍이 몰아친 갈릴리 바다가 생각납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제자들이 깊은 잠을 자고 계신 주님을 깨우자 비로서 일어나셨고,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즉시로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없다고 야단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시인의 순종과 믿음의 길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 주님의 인자하심이 온 땅에 가득합니다. 주님의 율례를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시편119:64,새번역)
시편119:65-72절 – ‘테트(ט)’연
“주님,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나를 잘 대해 주셨습니다.” (65,새번역)
‘테트’ 연의 주제는 ‘주님의 선하심’입니다. 5개 절이 ‘선하심, good’(토브)으로 시작됩니다: 주님은 시인을 ‘잘 대해 주셨고’(65), ‘좋은 명철과 지식’의 원천이며(66), ‘선하신 분’이며(68), 고난조차도 ‘유익이며’(71), 그분의 율법(토라)은 금은보화보다 더욱 ‘귀하다’(72)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시인의 배움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모함을 당하는 등 여러 사건 속(69,70)에서 주님의 지혜와 돌보심을 경험하자, 모두 싫어하는 고난조차 긍정적인 가치가 있음을 배웠습니다(71).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고 자부하다가, 억울한 고난을 당하면 실망과 분노는 통상의 사람보다 더 합니다. 욥은 그 좋은 예입니다(욥6:1-4). 그러나 그 자체가 자신의 연약임을 깨닫게 되면, 질투와 미움에서 돌이켜 주님의 그 길을 곧장 가게 됩니다. 시인은 학교에서 국어와 산수를 배워 문장을 짓고 셈을 하게 되듯이, 삶의 길(율법)을 배우고,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빌4:12,13). 이것이 신자들의 보화로서, 시인은 ‘주의 입의 법이 천천 금은보다 좋습니다’ 와 같이 그 깨달음을 노래합니다(72). 그러나, 악한 세상에서 주님의 계명을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올바른(good) 통찰력과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따라서 시인은 ‘좋은 명철과 지식을 가르쳐주십시오’(66)하고 기도를 드리는 바, 이 또한 우리의 기도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