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2/10/31-11/4)

잠언20: 8절
“재판석에 앉은 왕은 모든 악을 한눈에 가려낸다.
”(새번역)

본 잠언은 정의롭고 현명한 왕을 전제합니다. 그 왕은 냉철한 판단력과 통찰로써 그의 왕국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색출, 제거하여 정의를 구현합니다. 정조 대왕이 어느 선비의 시집간 딸이 억울하게 죽자 수사하여 범죄자들을 색출(시어머니, 조카)하여 악을 제거한 뒤, “과인이 통치하는 이 조선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말한 것은 좋은 예입니다. ‘한눈’으로 의역된 ‘왕의 눈’은 어떤 불의도 왕의 심판을 피해가지 못함을. ‘가려낸다’의 원어 ‘메자레’는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해 내기 위해 ‘키질하다, 까부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왕은 선과 악을 분별하여 악을 제거함으로 그 세력을 소멸시켜야 합니다. 필요한 자질은 지혜로서, 지혜는 올바른 법적 판단을 내릴 때 특히 요구됩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한 아이를 두고 다투는 두 창녀의 소송을 지혜로 해결한 사례도 있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이 잠언이 적용된 예는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이스라엘도 왕을 통해 정의가 달성되지 못하였는데, 인류 전체의 역사의 경우 왕권이 얼마나 남용되었겠습니까?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이 국가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누고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도록 제도화한 것은 역사에서 얻은 지혜라 하겠습니다. 지금은 악의 완전한 제거가 불가능하지만, 마지막 날 우리 주님은 그 영광의 보좌에 앉으사 ‘모든 악을 한눈에 가려내어’ 영원히 없앨 것입니다, 그 날을 소망하면서 우리는 신실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합2:4,새번역)

잠언20: 9절
“누가 “나는 마음이 깨끗하다. 나는 죄를 말끔히 씻었다”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새번역)

9절은 지혜자를 일깨우는 잠언으로, 그들은 의롭게 살지만 때때로 자기 의와 같은 유혹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들 역시 죄와 씨름을 해야만 합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그러하였습니다(욥9:2). 그러므로 현자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늘 인식하여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주의하며 사는 자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자신을 잘못 평가하여, 그의 행동과 언어 속에 미련한 자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다윗 역시 잠시 경계를 늦추자, 우리아를 죽이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에게 죄를 지적 받자마자, 회개하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시51:7). 이것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의 차이입니다. 회개한 후 다윗은 “주의 성신을 내게 거두어 가지 마시옵소서” (시51:11)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이는 주의 제자들은 성령께서 스승이 되셔야만 탐심과 죄된 자아를 이기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토록 연약한 본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고백과 함께 자신을 낮추어야 비로서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롬8:13-14).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자기극복의 종교가 아닙니다. 자기극복을 위해 주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은 후에, 비로서 믿을 수 있는 지혜의 종교입니다. 비록 우리 힘으로는 죄에서 깨끗함을 얻을 수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피 안에서 깨끗함을 받을 수 았음을 성경은 선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요일1:7,새번역).

잠언20: 10절
“규격에 맞지 않은 저울추와 되는 모두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다.
”(새번역)

신명기는, “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신25:13-15a)고 규정합니다. 이런 바른 상도의가 행해지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에,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신25:15b)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정직’은  상인의 이웃사랑의 핵심입니다. 잠언은 요약합니다: ‘돌과 돌, 에바와 에바 그 둘 모두 주님이 미워하신다’(원문직역). ‘돌’은 천칭과 같은 양팔 저울로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추로 사용되었고, ‘에바’(약22L)는 밀과 같은 부피를 재는 말이나 되를 의미합니다. 만약 동일한 ‘저울추와 되’를 사용하지 않고, 상대에 따라 다른 것을 사용한다면, 거짓을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런 자를 미워하십니다. 물건을 파는 상인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으나, 만약 군인들이었다면 “강제로 빼앗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아라”고 가르쳤을 것입니다(침례요한). 이런 가르침들은 십계명의 ‘탐내지 말라”로 귀결됩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이미 도착되어 있기 때문에, 도착되어진 것에 만족하십시오. 자족의 마음이 있으면 우리 믿음 생활은 큰 유익을 얻습니다. 그리고 속여서 남의 것을 취하기보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 필요함을 주님께 기도드리시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2b-3).

시편119:25-32절 ‘달레트(דּ)’ 연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25)

 ‘달레트’ 연은 ‘기멜’ 연이 고백한 낯선 환경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시인의 현실을 토로합니다. 굴욕감(25), 곤비함(28), 거짓 행위에 대한 유혹(29), 주님의 증거를 지키다가 수치를 당할 수도 있다는 당혹감(31) 등이 그렇습니다. ‘진토’란 죽음을 상징합니다(창3:19). 시인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한 고난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경건한 신자이기에, 주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고 호소합니다. 경건한 신자인지 아닌지는 이때 확연히 보여집니다. 전자에게는 인생이 너무나 힘들다(28) 느껴지는 환난의 때는 절망하는 순간이 아니라, 기도의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달레트’ 연은 7 개의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살아나게 하소서’(보전, 25), ‘율례를 배우게 하소서…깨닫게 하소서’(지식, 26-27), ‘나를 세우소서’(힘, 28), ‘주의 법을 은혜로이 베푸소서’(은혜, 29),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결과, 31) 등입니다. 한편, 환난의 때는 특별한 헌신의 때입니다. 시인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30)하며 헌신을 다짐합니다. 또한, 환난의 때는 안식의 때인데,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말씀에 신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5b,28b,29b). 그래서 시인은 ‘주의 말씀대로’ 구원받아 주님의 뜻대로 살 것을 믿습니다. 여기에 신자의 기쁨이 있습니다. 고난의 시기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주님의 신실하심과, 주님의 계명의 참된 의미를 배우는 좋은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시편119:32)

시편119:33-40절 – ‘헤(ה)’ 연
“주님, 주님의 율례들이 제시하는 길을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언제까지든지 그것을 지키겠습니다.”(33,새번역)


‘헤’연은 선생과 지도자 그리고 구원자로서의 주님(야훼)의 행위를 강조합니다. 3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33-35절 (전적인 헌신 다짐) 36-37절(탐욕에 흐르지 않도록 간구), 38-40절(주님의 보살핌과 공급하심을 요청함).  ‘주님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겠다는 시인의 결심(32)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적대적인 환경(‘기멜’ 연)도 아니고, 인생의 환난(‘달레트’ 연)도 아닙니다. 마음의 불순종입니다. 순종하기 원하지만(34), 탐욕이나(36), 안목의 정욕은 가장 큰 적입니다(37). 불순종하려는 마음에 의하여 순종하려는 마음이 위협을 받기 때문에, 시인의 마음에는 늘 긴장이 감돌고 있습니다. 시인의 해결책은 ‘기도’입니다. 시인은 9 번이나 간구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오직 주님만이 순종의 그 길을 지켜주시며(33), 마음을 깨닫게 하셔서 그분의 법을 준행할 수 있게 하시며(34), 우리로 참된 기쁨의 삶으로 이끄시고(35), 무가치한 것들을 추구하지 않게 막아주시고(36-37), 우리를 실망에서 건지시며(39), 의롭게 보존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40). 어두운 밤에 조명을 비추면 동상이 보이는 것처럼,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어 순종으로 이끄는 깨달음을 주십니다. 어떻게요? 사도 바울 역시 그 해답은 ‘기도입니다. 그는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서 교인들 모두에게 성령님을 통해 나오는 지혜와 총명을 받아 하나님을 알도록 기도합니다 (엡1:17;빌1:9;골1:9). 이것은 곧 우리의 기도입니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편1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