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9:22절
“사람이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가난함이 낫다.”(현대인의성경)
본절은 “야훼 잠언들”인 21절과 23절 사이에 놓여 있어, 자녀들로 하여금 특히 가난한 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도록 교훈합니다. 부자는 재물에는 높은 가치를, 사람, 특히 가난한 자에게는 무시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전단은, 사람들은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을 바란다는 진실을 말합니다. 여기서 사랑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헷세드’입니다. 이 단어는 ‘언약적 관계’의 핵심을 묘사합니다. ‘언약적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 혹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모두 언급할 수 있으나, 문맥상 여기서는 후자입니다. 후단은 재물보다는 인격의 온전함(고결함, 정직)이 낫기에, 인격적 고결함을 잃어버릴 바에는 가난(재물의 상실)을 선택하라는 권고입니다. 물론, 그것이 부를 비하한다는 말은 아니며, 오직 재물과 부의 가치는 상대적임을 밝혀줍니다. 이에 반하여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준수되어야 할 절대적 가치입니다. 후단을 전단에 비추어 생각하면, ‘헷세드-언약적 사랑’이 내포하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람 사이에 신실하라는 교훈입니다. ‘헷세드’는 많은 미덕을 내포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사람 사이에는 ‘신실하라‘ 혹은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며, 여기서의 주된 의미입니다. 언약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거짓말은 신뢰를 근본적으로 깨뜨려 버리는 행동으로, 잠언은 이를 상당히 경계합니다((6:16–19; 13:5; 14:5; 25:18).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잠언 19:23절
“주님을 경외하며 살면 생명을 얻는다. 그는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며, 재앙을 만나지 않는다.”(새번역)
본절은 16절에서 시작한 “궁핍한 자에게 친절하라”는 주제를 다루는 단락(19:16-22)의 결론입니다. 16절에서 죽지 않고 생명에 이르기 위해 ‘부모의 말씀”을 지키라고 교훈하는데, 23절에서는 ‘주님을 경외하라’고 교훈함으로써, 부모는 주님을 경외하는 지혜자의 표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의 가르침으로부터 자녀들은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계명에 머무르면 성경이 약속한 모든 축복을 다 받습니다. 계명 가운데 머무르는 자를 보시고 축복을 주시고 재앙을 만나지 않게 하시는 분은 결국 우리 주님입니다. 다른 면에서 보면, 주님이 정하신 길은 이웃 사랑의 삶으로, 이웃과 화평하게 지내게 되며, 술은 물론 도덕적으로 유해한 환경에는 가지 않기 때문에 제도적인 보호장치가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위험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때도 성경은 이 가르침을 간직한 제자들은 주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아 결코 주리게 되거나 재앙에 빠지지 않고, 만족스럽게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은 구원받지 못하는 실례를 증언합니다. 고대에 여행은 위험하였습니다. 짐승도 많았지만, 도적 떼나 강도 그리고 불량한 사람들의 문제는 더 컸습니다. 좋은 예가, 창세기18장에서 소돔을 방문한 두 천사를 해하려고 모여든 소돔사람들과 사사기 19장에서 기브아를 지나는 레위인의 첩을 빼앗고 그를 죽이려고 한 베냐민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의로운 롯을 불과 유황의 심판에서 건져주셨으나, 첩을 둔 레위인은 재앙에서 건져주시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4:9).
잠언19:24절
“게으른 사람은 밥그릇에 손을 대고서도, 입에 떠 넣기를 귀찮아한다.”(새번역)
잠언19:24-20:11절은 새 단락으로 주제는 “어리석은 자에 대한 교육과 벌”입니다. 19:24-20:1절과 20:2-11절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며, 전자는 교정이나 벌이 필요한 바보들의 목록을 나열하고, 후자는 바보들과 이들을 다스리는 의로운 왕에 관한 것입니다. 24절은 게으른 자의 행태를 아주 냉소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먹기 위해 그릇에 손을 넣을 수 있는 만큼 충분한 힘이 있지만, 배고픔조차도 음식을 입으로 들어 올려 먹는 일을 끝내도록 동기를 부여하지 못합니다. 즉, 게으른 자는 기회가 있음에도 게으름 때문에 굶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13:4절, “게으른 사람은 아무리 바라는 것이 있어도 얻지 못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의 마음은 바라는 것을 넉넉하게 얻는다”, 역시 본 잠언과 유사한 교훈을 줍니다. 게으른 자는 게으르기 때문에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브리지가 한 적용입니다: “희생 없는 믿음, 근면 없는 믿음은 결코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지 못할 것이다!” 타당합니다. 게으른 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겠습니까? 아마 온갖 구실을 대고 이웃을 섬기는 귀찮은 일을 실천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개미는 어떤 두령도 감독자도 통치자도 없지만 여름 동안에 먹을 것을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아 추운 겨울을 대비합니다. 그러므로 게으른 사람은 개미에게 가서 배우고 그 미물의 지혜를 내면화 해야 합니다(잠6:6-8).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언6:10-11)
시편115:16절
“하늘은 주님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다.”(새번역)
시편115편 중 특히 16절은 세상에 대한 성경의 관점을 잘 보여줍니다. 시편 기자가 축복, 번성 그리고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확신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분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15b). 주님(야훼)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피조물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분은 능력과 통치에 어떤 제한도 받지 않고 가장 높은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인간 손으로 만든 우상들과는 전혀 다른 분입니다(3-8)? 시인은 주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자유를 노래하다가, 16절에 이르러 창조물의 일부인 “땅”에 대한 그분의 주권적 뜻을 밝힙니다. 여기서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전체를 말합니다. 주님은 은혜로우시게도 이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다만, 인간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수단으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짐승, 식물, 흙, 나무, 해, 달, 별 등을 그 창조 목적에 맞도록 관리할 권리와 의무가 인간에게 있습니다. 이는 아담의 타락 전에 주어진 인간 창조를 위한 고유 목적 중 하나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수단이 바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인간 자신의 필요를 채우도록 계획하셨기에, 일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고, 그분이 자신들의 아버지됨을 인식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따뜻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고, 먹을거리를 주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행14:17,새번역)
시편116:10절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우냐?” 하고 생각할 때에도,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새번역)
116편은 경건하고 밝게 빛나는 감사의 노래입니다. 시인은 질병, 모함 등으로 사망에 처한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3,8,10). 어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그 상황에서도(11), 시인은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1,4). 은혜로우시게도 하나님은 순진한 시인을 지키셨고 그 어려움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시를 읽으면, 시인의 경우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비록 쓰라린 추억이었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지키는 자를 구원하시는 분이며, 신실하시고 위대하신 분임을 체험하는 계기였습니다. 또한 그런 긴박하였던 상황에서 구출된 후에, 시인은 자신이 누리는 일상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것이 얼마나 소중히 간직되어야 하는지를 노래합니다(9). 시인의 감사의 증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감사에는 영생의 축복이 포함되어야 합니다(딤후4:17-18). 시의 구조입니다.
A 구원에 대한 감사(1-3)
B 구원자 하나님과 신실하신 성품(4-6a)
A′ 구원에 대한 감사(6b-7)
B′ 구원자 하나님과 신실한 믿음(8-13)
A″ 구원에 대한 감사의 서원(14-19)
주목할 것은, 본 감사의 시는 정열적인 사랑의 노래와 같이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관해 기록된 성경의 진리들을 – 신실하심, 능력, 지혜 등 – 시인이 여실히 체험하여 살아움직이는 현실이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 보시는 앞에서 살렵니다.”(시편116:9,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