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19:19절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은 벌을 받는다. 네가 그를 구하여 준다고 해도 그 때뿐, 구하여 줄 일이 또 생길 것이다.”(새번역)
본 잠언은 주님에게 벌받는 사람을, 아들로부터(18) 성격이 불 같은 자로 대상을 바꾸었습니다. 잠언은 대답할 가치가 없는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대답하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26:4), 습관적으로 맹렬히 노하는 사람은 돕지 말라는 암묵적인 지혜를 줍니다.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사람은 교만한 바보의 특징 중 하나로서, 훈계없이 양육된 자녀의 미래 모습입니다. 그러나 본 잠언의 대상은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도와 곤경에서 구해준 사람입니다. 이는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습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도와준다고 고칠 수는 없으며, 벌을 받아 보아야, 비로서 행실을 바로잡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을 동정하는 것도 좋으나 그런 동정이 지혜로운지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은 지혜 안에서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빌1:9-11). 미국에서는 아동 학대와 관련한 처벌이 엄격하기에 공개적으로 아이를 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몰에서 너무나 말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하자, 그 아이의 어머니는 차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엉덩이를 꽉 물어 나쁜 버릇을 고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부모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나님이 확립하신 ‘벌과 치료’라는 도덕 질서의 작동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섵부르게 뛰어들었다가는, 그의 자녀들은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건강한 성장은 어려울 것입니다. 한편, 자녀들이 훈계를 받아들여야 비로서 의미가 있기에, 잠언은 20절에서 교훈의 대상을 아들로 바꾸었습니다.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잠언19:20)
잠언19:20절
“충고를 듣고 훈계를 받아들여라. 그리하면 마침내 지혜롭게 된다”(새번역)
지혜자는 하룻밤에 혹은 자동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이는 학식과 인품 갖추어진 스승이나, 그 분야에 지혜로운 자에게 배우고, 교정받아야만 합니다. 즉 “충고를 듣고 훈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혜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던 모세도 장인 이드로의 조언을 받아 재판업무를 위임하여 과중한 업무에서 벗어난 것이 좋은 예입니다. 학문, 인격, 신앙 모두 같습니다. 학문을 위해 한석봉의 어머니는 10년을 목표로 유학을 보냈으나, 3년만에 돌아온 아들과 세기의 대결을 펼칩니다.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도 고른 두께로 떡을 썰은 뒤 엉망인 글씨를 보인 석봉을 야단쳐 돌려보냅니다. 석봉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절치부심, 결국 남은 7년을 채워 조선의 명필이 되었습니다. 인격의 경우입니다. 퇴계의 제자 이함형은 전주에서 안동까지 와서 유학하고 돌아갈 때 부부간 불화를 호소하였습니다. 퇴계는 “난 두 번 장가들었지만 내내 불행했다. 그러나 부부간의 문제는 크게 보면 모두 남편에게 달려 있다”는 편지를 주었습니다. 이함형은 ‘웬만하면 남편이 참으라’는 의미임을 깨닫고 애처가로 거듭났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배운 것입니다. 한편, 신앙도 같습니다. 우리가 은혜로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지만 (행18:27-28), 반드시 성경의 가르침을 배우고, 삶의 굴곡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각고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태초부터 계신 분을 깨닫게 되고(요일2:12-14), 마침내 아비의 신앙에 이를 수 있습니다(고전4:15). 늘 성령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대는 배워서 확신하고 있는 진리를 따라 계속 생활하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이것을 배웠는지 알고 있습니다” (딤후3:14,현대인의성경).
잠언19:21절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어도, 성취되는 것은 오직 주님의 뜻뿐이다.”(새번역)
본잠언의 교훈은 삶의 현장에서 자주 목격됩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번 로마로 가려고 계획하였으나 좌절되었습니다(롬1:13; 15:21). 드디어 AD58년경,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해 드린 구제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고,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도착 후 얼마 안 되어 성전에서 체포되었고, 기약 모르는 연금을 당하였습니다. 2년 후 로마 황제에게 호소를 하였고, 죄수의 몸으로 로마를 향하였으나 배가 난파되어 구사일생으로 도착하였습니다(행28장). 잠언 16장은 이 진리를 잘 가르칩니다: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16:1,새번역) “사람의 행위는 자기 눈에는 모두 깨끗하게 보이나, 주님께서는 속마음을 꿰뚫어 보신다.”(16:2) “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기면,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16:3)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16:9)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16:33). 사람들은 많은 전략을 수립합니다만, 결국 하나님의 조언을 따르지 않는다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당연히 이런 체험들은,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3:5)는 교훈을 탄생시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의지하고 모든 길에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두려움과 사람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물론, 주님께서 우리의 길을 곧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3:6).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여라.” (잠언3:7,새번역)
시편114: 8절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본시는 ‘애굽 할렐(찬양)”시들 중 하나로서(113-118), 유월절을 기념할 때마다 불리워졌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속하여 가나안 땅을 주시기까지 보여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현현-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시내산에 강림하시고, 요단강을 가르신 역사 등 – 을 근거로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부르그만은 “시편114편은 각 세대가 세상을 변혁시킨 이 사건들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함으로, 출애굽 세대의 전통과 믿음의 삶에 동참시키게 한다.”고 적절히 표현하였습니다. 시의 구조입니다.
A 언약의 백성(1-2)
B 자연에 행하신 이적들(3-6)
A′ 언약의 주님(7-8)
시인은 가나안 정복 후의 세대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을 믿었습니다. 믿음과 감정은 차이가 있습니다. 합격통지서를 받아들고서 합격한 것을 믿고 기뻐하는 학생 같습니다. 시인은 성경에서 자신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을 읽고 믿었습니다. 그분은 과거에 르비딤에서(출애굽 당시), 그리고 가데스에서(38년 후) 바위로부터 물을 내신 선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맹인이나 절름발이 귀먹은 자 말 못하는 자가 고침받은 적은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직접오셔서 고치신다는 약속만 있습니다(사35:4-6). 그렇게 오신 분이 주 예수입니다. 중요한 점은, 맹인 등을 치유하신 표적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죄와 사망으로부터 죄인들의 구원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풍성한 축복을 우리에게 흘려보내시는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거지 바디매오)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막10:52)
시편115: 11절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님은, 도움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다.”(새번역)
시인은 “어찌하여 뭇 나라가 그들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2)라고 질문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은, 조롱하는 세상 앞에서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아마 최근의 승리를 왕이나 군대에게 돌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1). 또한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조롱합니다(4). 그러나 시인은 천지만물의 창조주는 야훼라는 신앙 고백을 하고(15,16) 그분만 의지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려 노래합니다. 시의 구조입니다.
A 인자와 진실의 야훼 찬양(1-3)
B 우상과 그 추종자들(4-8)
B′ 야훼와 그분의 백성(9-15)
A′ 창조주이신 야훼 찬양(16-18)
본시의 9,10,11절은 각각 돌림 합창 노래로서, 주제는 신뢰입니다. 신뢰의 히브리어는 ‘바타’이며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를 의지하면, 그 대상으로부터 평강, 복지, 안전이 온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방인들은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이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으나, 생명 없는 우상이 도와줄리 만무입니다. 시인은 그들을 조롱합니다만(4-8), 현대인은 돈이면 제일이라는 맘몬 우상을 경계해야 합니다. 한편, 우리 역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분은 아들을 보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두려움이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항상 의지하여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