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2/07/25-29)

잠언18:22-19:7절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18:22) 
앞으로 여러 날 동안 묵상할 부분은 잠언18:22-19:22절입니다. 주제는 “재판정과 가정에서 재물과 지혜”에 관한 내용입니다. 3단락(18:22-19:7, 8-15, 16-22)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다룰 첫째 단락은 18:22-19:7절입니다. 서론으로 남편과 아내라는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말한 뒤(22절), 부 혹은 재물이 가지는 애매모호한 도덕적 특성을 교훈합니다 (18:23-19:7). 본론은 다시 셋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첫째, 실패한 친구관계(18:23-24) – 가난한 자의 간구(23)와 친구관계의 실패(24). 둘째, 도덕과 재물(19:1-3)- 가난할지라도 성실하게 살아가야지(1), 성급하게 재물을 쫓지 말아라(2). 왜냐하면 주님은 어리석은 자를 벌하시기 때문이다(3). 셋째, “재물과 친구”관계의 도덕적 모호성 –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고(4a,6), 가난하면 친구를 잃어버리게 되지만 (4b,7), 거짓된 자들은 벌을 면치 못한다. 이 구절들은, 눈에 보이는 친구관계는 현명하지 못한데, 돈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친구들을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다(18:24)는 의미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유일한 소망은 현명한 사람들 중에 있는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18:24b)입니다. 단락의 마지막 구절 (19:7)은 다시 한번 가난한 자의 측면에서 “가난, 부, 그리고 친구”의 역학관계를 규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세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너희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6:20)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난하면 친척도 그를 싫어하는데, 하물며 친구가 그를 멀리하지 않겠느냐? 뒤따라가며 말을 붙이려 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잠언19:7, 새번역). 

잠언18:22절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솔로몬은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에 관한 교훈을 시작합니다. 그 첫 주제가 배우자라는 가장 친밀한 관계입니다. 주목할 것은 ‘아내’ 대신 ‘지혜’를 넣으면 잠언 8:35절의 메시지가 나옵니다:“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8:35). 그러므로 “이 구절은 마치 ‘ 좋은 아내를 찾는 것은 지혜를 찾는 것과 같다’고 주석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선한 분이시고, 그런 하나님을 본받는 좋은 아내와 함께 주님을 경외하는 남자를 복주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31:10, 30). 좋은 아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지혜처럼(2:1-6), 좋은 아내는 주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에(19:14), 당연히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갈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하와를 아담에게 보내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라고 말씀하시고, 한 명의 여자,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서 남자가 풍성한 삶을 누리는 길은 한 명의 아내와 함께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복의 좋은 예시가 잠언31:10-31절에 나와 았습니다. 실로 그런 아내의 가치는 진주보다 더 귀합니다. 물론 여자의 경우에도 좋은 남편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역시 같습니다. 잠언의 예외가 신약에 나옵니다. 바울은 주님의 일에 전력하기 위해 혼자 사는 것이 더 좋다는 권면을 합니다(고전7장). 이는 남녀의 결혼 자체도 주님과 신자의 영적 결합의 모형이고, 도래 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결혼도 없기 때문입니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지만, 슬기로운 아내는 주님께서 주신다”(잠언19:14,새번역). 

잠언18:23절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사무엘상 25장에는 도망자 다윗이 마온 부자 나발에게 부하 10명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나, 나발은 거만한 말로 못주겠다고 엄히 대답합니다. 그러자 그동안 나발의 재산을 보호해주던 다윗은 격분하여, 나발을 죽이려고 하다가 지혜로운 아비가일 때문에 중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우리가 늘 보는 광경입니다. 23절의 중심에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와 부자를 배치하고 바깥에는 ‘간절한 말’과 ‘엄한 말’을 대조하는 문학적 기교(교차대구법)가 들어있어 메시지를 명료하게 깨닫습니다. ‘가난하다’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여 몸과 마음이 괴로운 상태에 있다’는 의미로서 ‘결핍’을 묘사하는 형용사입니다. 그러므로 가난을 나타내는 원어(루쉬)는 ‘부족함’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간절한 말’의 원어(타샤누님)는 ‘마음이 두려움에 휩사여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한다’는 뜻입니다. 한편, ‘엄한 말’이란 통상 ‘강력한, 힘있는’을 의미하지만 현 잠언의 문맥에서는 “맹렬한, 거만한, 철면피’ 를 뜻합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의 요청에 엄한 말로 거절하는 것은 재물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만약 부자가 자신의 삶의 안전을 주님께 두었다면, 그는 주님을 두려워하여 가난한 자를 멸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물질적으로는 부유하여도 영적으로는 매우 가난한 사람입니다. 성경 메시지의 중요성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궁핍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시34:6), “긍휼히 여기는 자만 긍휼을 받을 수 있다”(마5:7)고 가르치기에,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부요한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5:3,새번역).

시편107:1절
“주님께 감사드려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새번역)

107편은 시편 5권(107-150)의 첫 시입니다. 감사와 지혜를 다루면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주님(야훼)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시는 중심부에서 인간의 곤경과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4번이나 반복한(4-32) 뒤, 구속자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매듭짓고 있습니다. 시의 구조입니다.

A   감사로의 초청 (1–3)
B     감사의 이유들(4–32)
B′     찬양의 이유들(33–42)
A′    지혜를 얻자는 호소( 43)

1-3절에서 시인은 구속받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확증하면서, 언약에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이것은 신앙고백의 한 형식이나 내용없는 고백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으로부터 구속받은 백성”들은 각 지역(바벨론, 앗시리아 등)으로 사로잡혀 가서 많은 고난을 겪는 중 주님의 구원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시인은 주께서 다양한 방식과 장소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셨음을 선포하는데에 이 시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 영적, 정신적, 혹은 물질적이든지 간에 – 의 사랑을 경험한 우리 모두도 같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구원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량에서 완전한 성취가 이루어집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시편107:4,5절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107편은 중심(4-32절)에 성도들이 겪은 4 종류의 곤경과 각 곤경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구조 역시 교차대구법을 사용하여 운율을 살려놓았습니다.

A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들(4–9)
B   감옥에 갇힌 자들(10–16)
B′  병든 자들 (17–22)
A′   바다의 선원들(23–32)
그 첫번 째가 광야로 상징되는 세상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들의 영상입니다. 광야는 영구히 살 곳은 전혀 아닙니다. 목적은 오직 하나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는 것입니다. 거기는 짐승이나 적으로부터 보호해줄 성이 없고, 음식과 물은 핍절되기 일쑤입니다(4-5). 그곳의 삶은 무의미함을 거듭 거듭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갈 때의 경험이며, 범죄한 유대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서 이방 땅에 살아가는 모습 그자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고, 바벨론에서 영적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오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도 종종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하며(4), 주님이 지으신 참된 성에서 정착하고 싶어합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한 아브라함이 그러하였습니다 (히11:9-10). 그러나 실타래 같이 얽혀 있는 삶의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의 바른 인도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갈 경우, 어느듯 목적지에 도착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5-7). 이것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방법입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들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 (시편107:8,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