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2/07/04 – 08)

2022/7/4-8
잠언18:13절
“다 들어 보지도 않고 대답하는 것은, 수모를 받기에 알맞은 어리석은 짓이다.”(새번역)

18:13-21절은 새 단락을 형성하면서, 미련한 자 보다도 갈등과 언어에 초점을 맞춥니다. 잠언의 제자는 정의를 세우며, 갈등을 해결하고 언어를 힘있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단락의 구조입니다: 13-15절(서론), 16-19절(법정에서 분쟁해결), 20-21절(언어의 힘). 바보가 보여주는 교만한 태도(12a)는 무례하고 성급하게 말하도록 만들어(13a), 수모를 받게 마련입니다(13b). 이는 명예와 존귀가 겸손한 자를 찾아온다는 교훈(12b)과 대조됩니다. 본 잠언은 현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천박하게도 말을 중단시키고 자신의 의견을 내뱉는 어리석은 자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18:2참조). 바보의 그런 경솔함을 보는 모든 사람이 ‘어리석다’는 평가를 내립니다. 좋은 예가, 시험을 보는 학생입니다. 자신이 다 안다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함정이 들어 있는 문제를 끝까지 읽지 않고 성급하게 답을 적는 자는 ‘0’점이라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급히 결론을 내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은 교만한 바보 앞에 놓인 특별한 유혹이자, 미성숙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길에서도 같습니다. 지금은 작고 하신  K 목사님은 독일에서 귀국 비행기를 간발의 차이로 놓쳤습니다. 너무나도 당황하여 공항에서 서성일 때, 우연히 아는 집사님을 만났고, 이어 그 지역의 부흥회를 인도하여 큰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후 그분은 “중간 결산 하지 말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인생은 주님이 인도하십니다. 성급하게 속단하는 신자는 어리석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잠언18:14절
“사람이 정신으로 병을 이길 수 있다지만, 그 정신이 꺾인다면, 누가 그를 일으킬 수 있겠느냐?”(새번역)

즐거움과 근심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한 잠언15:13및 17:22과 같이, 이 잠언도 심리적 상태와 신체의 건강 사이의 관계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물론 구약에는 육체-영혼이란 이원론은 없습니다. 다만, 긍정적인 태도가 개인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상한 마음(우울증이나 불안 등)은 건강을 더 악화시킬 수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문제는 열등감이나 우울증을 가진 사람은 역경이 없더라도 패배로 향하는데, 하물며 역경 속에서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견인불발) 힘을 어떻게 가질 수 있겠습니까? 최고의 답변은 좋은 소식이나 지혜를 듣고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지혜(좋은 소식)는 병을 이길 수 있는 정신적(영적) 생명을 낳습니다. 수용소에 갇혀 절망하는 포로들이, 은밀히 숨겨둔 단파방송 수신기로 연합군의 소식을 들었을 경우 절망은 대번에 소망으로 바뀝니다. 사도들이 전한 좋은 소식(복음)은 ‘지혜’의 정수입니다. 복음에는 환란, 역경, 궁핍, 죽음, 죄의 수용소에 있는 인간의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주님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요한복음이 기록한 오병이어의 기적, 물 위를 걸으신 기적,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기적,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기적들이 의미하는 바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분이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만유의 주님은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지혜, 지식, 희락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주님의 교제 방법입니다. 믿는 자는 이런 기대감 때문에 모든 우울증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롬8:37,새번역)

잠언18:15절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지식이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를 말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베이컨의 말이 있지만, ‘지식’은 영적 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그분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 잠언은 지식 얻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서론(13-15절)을 매듭짓습니다. 전단의 ‘마음’ 후단의 ‘귀’는 ‘분별하는 힘’과 관련된 기관으로, 지혜자를 특징지우는 양도불가능한 자산입니다. ‘분별력’은 지식을 떠나서는 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지혜자가 되고자 하면 지식을 갖추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통상 착한 사람은 지식이 결여 되어 있습니다. 이는 보물을 얻듯이 지식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10 호의 마을에도 자신 정도의 인품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자신 만큼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반면 지식을 가진 사람은 인품을 갖추지 못하고 교만하기 쉬운데, 이는 사랑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고전8:1). 본 잠언의 ‘명철한 자’’는  양자를 다 갖추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잠언의 제자들은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배워 알고 있습니다(욥12:13;잠8:14). 즉 지식의 원천이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에 교만할 수 없습니다. 지식을 주신 목적은 사랑의 수고를 위함입니다. 이런 진리는 오직 성경에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지식도 갖추어야 하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을 계시한 성경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딤후 3:17,새번역)

시편103: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본 시편의 각 구절마다 놀라운 감사의 탄성이 퍼져나와 모든 은혜의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있습니다. 104편도 같아, 두 시편은 하나님을 구세주와 창조자, 아버지와 보존자, 자비로우시며 권능을 가진 분으로 찬양드립니다. 시편의 은하계 중 이 두 개는 마치 쌍둥이 별과 같은데, 특히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대권을 가지신 우리 주님을 전제하고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다윗입니다. 이 시편은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1)로 시작해서 주의 천사들(20)과 천군들(21) 그리고 온 우주에 창조된 모든 것들에게 주님을 찬송하라는 외치고, 다시 한 번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22)는 말로 끝맺음 합니다. 시의 구조입니다.

A    개인적인 찬양 (1–2절)
B    각 인에게 베푸신 선하심을 찬양 (3–5절)
B′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의로운 통치를 찬양 ( 6–18절)
A′   우주적이며 개인적인 찬양(19–22절)

다윗은 인생의 영고성쇠를 모두 경험하였습니다. 20살에 군대장관이 되었고, 위대한 왕이자, 시인이요 음악가였습니다. 또한 인간의 심리를 통찰한 심리학자요, 하나님을 아는 신학자요, 하나님의 계시기관인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충신의 가정을 파탄시켰기에, 다윗의 가정은 칼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인생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에 불과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강자인 주님을 경외하여 그분의 뜻을 행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눅11:28). 마지막 날 평가 기준은 “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는가?”입니다. 도착되어진 것에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약1:9,10).

시편104:24
“주님,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지혜로 만드셨으니, 땅에는 주님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합니다.(새번역)

104편의 주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103편이 ‘구속자-왕’의 측면을 노래한다면, 이 시편은 ‘창조주-왕’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광대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십니다. 시인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기사를 따라, 그분의 지혜, 능력, 인자하심을 묵상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편은 창세기 1장의 서사시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의 구조입니다:       

A    야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1–4)
B    피조물의 다양한 존재형식(5–26)
B′   만물의 주인되신 하나님(27–30)
A′   야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31–35)

어떤 목사님은 한려수도를 관광할 때 맑은 바다 속으로 수 많은 물고기를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수 없이 많은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왔을 터인데, 넉넉하게 어부의 요구에 응해 준 바다는 풍요롭구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저 바다를 늘 채워 놓으시는 하나님의 광대함과 너그러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누구를,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하는 고백을 하였다고 합니다. 주님이 공중에 날아다니는 까마귀를 예로 들면서 삶을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주님을 실제로 경험하는 장소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맡겨주신 가정, 직장, 기타 삶의 현장은 물론 여행도 영적 생활에 필수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주님을 노래할 것이다. 숨을 거두는 그 때까지 나의 하나님께 노래할 것이다.” (시편103:33,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