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8:10절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10절과 11절 모두 보호와 안전에 관한 내용이나, 10절은 주님 안에서 얻어지는 의인의 안전을, 11절은 재물을 의지하는 부자의 거짓된 안전을 다룹니다. 9절은 ‘패망하는 자’란 단어로 끝나고, 10절의 첫 단어는 ‘견고한 망대’입니다. 이로써 잠언은 어떤 경우에도 패망하지 않고 안전을 누릴 수 있는 견고한 망대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제자들이 묵상하도록 합니다. 게으르지 않는 정도 갖고는 변화무쌍한 인생에서 확실한 안전을 누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부자가 의지하는 미국 달러, 국가(재정파탄 가능), 은행(5천만원만 보호), 부동산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위기 때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하는 안전 자산, 피난처는 주님의 이름입니다. ‘이름’이란 성품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주님(여호와)의 이름’은 솔로몬의 잠언이나 주님과 사도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고(3:5), 출애굽 사건, 십자가와 부활 등을 통해 본질과 속성을 보여주신 바로 그 하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의인(그리스도인)은 바로 주님께 달려가서 참된 안전을 누립니다. 10절이 위치한 문맥이 좋은 예를 제공합니다. 지금 신실하게 살아가는 의인이 불의와 험담 그리고 풍문으로 큰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때 그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55:22)는 약속과 노아, 아브라함, 욥, 다윗 등의 구원 사건을 마음에 간직함으로, 견고한 망루 안에 들어가게 되고, 만유의 주님을 믿고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잠4:23).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잠언 18:11절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11절은 의인의 참된 안전보장책에 대비되는 부자의 거짓된 안전보장책(재물)을 말합니다. 부자는 어리석게도 속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물이아말로 ‘견고한 성’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많은 재물을 쌓아둡니다. 고대에는 적이 공격할 때를 대비하여 성벽을 높이 쌓습니다. 헬라의 도시국가들도 모두 아크로폴리스라는 산 위의 요새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평상시에는 평지에서 살다가, 전쟁이 터지면 모두 아크로 폴리스로 들어가서 적과 대치합니다. 실제로 아테네에 가서 본 아크로폴리스는 점령하기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포의 발명은 그런 방비책을 무용지물로 만들었습니다. 부자가 쌓아논 재물도 이와 같습니다. 물론 가난한 자보다는 훨씬 안전할 것입니다(10:15). 그러나 재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크게 당황합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지혜보다 못합니다. 재물로는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나, 지혜는 생명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의사의 권고를 따르는 환자가 아무래도 더 빨리 회복하여 건강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혜의 근본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부자는 자신의 재물로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없지만,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은 세상에서는 주님의 돌보심을 받다가, 마지막 심판에서 주님의 긍휼을 받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보이는 재물을 안전책으로 삼는 부자의 생각은 망상입니다만(말기 암 환자는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호자로 삼는 의인의 안전은 확실합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잠언18:12절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요사이 전세계는 물가상승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전혀 물가가 오르지 않던 일본에서도 바나나 한 상자가 1,800엔에서 올해 2,700엔으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언제 물가가 잡힐까요? 한 경제 전문가는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연준)가 기준금리 인상을 멈춘 시점이다”고 대답하였습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1.75%이나, 연말에는 3.5%로 예측됩니다. 그러나 물가가 잡히더라도 내년에는 경기침체가 우려됩니다. 우리는 이를 대비하면서 경기 연착륙을 위해 주님께 기도하여 할 것입니다. 이같이 경기는 금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사람이나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의 교만 여부입니다. 교만한 사람이나 국가는 반드시 패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2절은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다”고 교훈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눈밖에 났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좋은 예로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을 들 수 있습니다. 그가 바벨론 제국과 도시 건설의 공을 자신에게 돌리자마자 정신병자가 되어 7년이나 밖에서 소처럼 풀을 먹었습니다. 그 후 겸손한 자세로 하늘을 우러러 보자, 주님은 다시 이성을 주셔서 그는 인간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이와 반대로 존귀가 오기 전에는 반드시 겸손이 먼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요셉입니다. 바로가 해몽을 요청하였을 때, 요셉의 첫 마디는 “해석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하면서 겸손하였습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만백성의 생명을 구함으로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언11:2).
시편102:3절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니이다”
응답되지 않은 기도만큼 힘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있을 때만큼 우리의 진정한 믿음이 드러나는 경우도 없습니다. 응답이 없다고 생각될 때, 주님의 완전한 지혜에 비추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주님의 말 없는 ‘대답’은 ‘NO’이며, 이는 분명하고도 단순한 응답입니다. 물론 ‘아직 아니다’라는 결론도 주시는데, 이는 우리와 주님의 시간표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고(24), 병들고 쇠약한 상태에서 적들로부터 계속된 비방을 받아 너무나도 괴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3-9). 그는 이 모든 일은 자신에 대한 ‘주님의 분노와 진노” 때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10). 자신의 날은 이미 기울어졌습니다(11). 그래서 시인은 서두부터 부르짖었습니다. 주님께서 귀를 기울여 속히 응답하여 달라고 말입니다(1-2). 그러나 시인은 영원하시며 만유를 창조하신 주님을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는 주님의 위대함과 그분의 목적하신 영광을 묵상합니다. 이것이 본 시의 중심축입니다(12-22). 우리가 고난에 처하나 낙담하지 않는 근본적인 힘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만약 이 하나님의 약속과 영광에 대한 신뢰가 우리 믿음의 중핵을 이루지 않으면,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질 것입니다. 우리가 시인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한편, 본 시편 25-27절에 나오는 영원하신 주님을 히브리서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합니다(히1:10-12).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시102:27).
시편102:26절
“하늘과 땅은 모두 사라지더라도, 주님만은 그대로 계십니다. 그것들은 모두 옷처럼 낡겠지만, 주님은 옷을 갈아입듯이 그것들을 바꾸실 것이니, 그것들은 다만, 지나가 버리는 것일 뿐입니다” (새번역)
세상의 모든 것들은 반드시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무리 큰 채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국가가 법으로 정해 놓은 한계 내에서만 행사가능합니다. 이에 위반시 국가의 벌이 두렵기 때문에 채권자는 행동을 삼가합니다. 지혜자란 자신의 한계를 잘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겸손이 나오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만유의 주님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온 우주 만물이 모두 사라질 것이고, 새롭게 변화될 대상일 뿐입니다. 변하지 않는 분은 오직 한 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영존하시는 주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살아가야만 합니다. 본 시편에 등장하시는 영원하신 주님의 정체를 히브리서 기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0-12절은 본 시편을 인용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에 관하여, “온 우주의 옷을 바꾸시는 주님”으로 선포하십니다. 마치 물리학자가 소립자 세계의 놀라운 존재와 법칙을 발견하고 실험하여 확신을 얻은 뒤 학회에 보고하듯이, 사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3년 6개월 동안 주목하여 자세히 관찰하고 그분이 죽고 부활 승천하신 것과 그 의미를 확인한 후(요2:22), 목숨 걸고 증언한 내용이 복음입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성령님을 보내사 교회를 세우시고, 각 사람의 마음에 당신과 복음을 증거하고 계십니다(요15:26).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