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2022/03/14 – 18)

시편80: 12절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시의 배경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 보다 150년 전에 일어난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비시722년)입니다. 3연(1-3절, 4-7절, 8-19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시의 처음과 마지막은 목가적이고 평온합니다. 그러나 중간 중간 깊은 고뇌의 질문들이 제기됩니다 특히 세 번째 연은 북이스라엘의 황폐와 약탈을 언급하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망과 구원을 반복해서 간구합니다. 시인에게서 있어, 이스라엘 민족의 곤경은 언제나 신앙의 문제로 귀착이 됩니다. 그 곤경이 자연재해든 외적의 침입이든 아니면 내적 분열이든 관계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든 내가 원하는 것만 얻으면 된다는 생각도 불신앙이지만, 지금 내가 겪는 고난을 전부 자신의 능력이나 운 탓으로만 돌려서도 불신앙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악이 왜 허용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않은 고난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처럼 고뇌에 찬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7). 중요한 것은 기도 자체는 하나님에게 아무런 지식도 더하지 못합니다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는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는 사실입니다. 고난이 올 경우, 그 불편한 심기를 주님께 토하십시요. 그러나 계명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구원의 소망 가운데 인내하십시요. 그 믿음의 시련들은 우리의 인격에 절대 필요한 인내를 만들어낼 것입니다(약1:3-4).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시편80:3).

시편81: 11,12절
“내 백성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은 내 뜻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고집대로 버려 두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게 하였다.”(새번역)

이 시는 명절 특히 장막절을 축하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장막절은 애굽에서 인도를 받은 뒤, 장막을 짓고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역사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시는 백성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규례에서 시작하여(1-5), 행위(6-7)와 말씀(8-10)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적으로 이동합니다. 이어 백성의 불순종에 따른 비참한 결과(11,12와 순종(13)할 경우 주어지는 승리와 풍요로움(14-16)을 강조하면서 순종을 택하라는 하나님의 요구(11-16)로 끝맺습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구속과 그에 대한 응답이 주제입니다. 노예살이를 하던 애굽에서 구원받은 백성(6)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 놓인 백성이 됩니다(8-10). 왕이 바로에서 하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8, 13). 그 핵심되는 계명은 9절입니다 :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하나님은 큰 능력으로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뒤, “내가 마음껏 먹여 주겠다”(10)고 약속하셨으나,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고집대로 가도록 버려두셨습니다. 그들은 고통의 길로 들어갔고, 승리와 축복에서 멀어졌습니다(10-12). 이 시는 이스라엘 역사의 반추이며, 우리 삶의 그림입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지금 확인할 때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잠언16:29절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좋지 아니한 길로 인도하느니라

폭력은 어리석은 자들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이웃을 꾀어 나쁜 길로 인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친구나 연인 관계 등을 맺고 악인과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범죄하려고 친구를 꾀는 모습을 잠언 1:8-19절은 잘 보여줍니다. ‘10아이들아, 악인들이 너를 꾀더라도, 따라가지 말아라….”함께 가서 숨어 기다렸다가, 이유를 묻지 말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자….우리는 온갖 값진 것을 얻게 될 것이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의 집을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14너도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 사이에 돈주머니는 하나만 두자.”’ 잠언은 그런 악인들과 교제하지 말것을 잘라말합니다(잠언20:19). 비시 860년 경 북 이스라엘 왕국을 지배한 아합 왕은 남 유다 왕국의 왕 여호사밧과 결혼동맹을 맺었습니다. 북왕국은 남왕국보다 강대하였고, 그 왕 아합은 악한 자였습니다. 그는 바알 숭배자 왕비 이세벨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세벨은 강포한 여인으로 의로운 나봇을 서슴없이 죽여 포도원을 빼앗을 정도였습니다. 그 반면 유다 왕 여호사밧은 의로웠지만, 아합과 이세벨의 나쁜 영향력을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 왕국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남 유대 왕국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 전쟁에 참여하도록 권유를 받자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 결과 아합은 죽었고,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유다로 돌아온 여호사밧 왕은 주님이 미워하는 자를 도왔다고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탐욕을 버리고 주님의 약속에 주의해야만 합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잠4:18).     

잠언16:30절
“눈짓을 하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이미 우리가 살펴 본 27-29절은 불량한 자, 못돼먹은 자와 강포한 자들이 사회질서와 이웃을 해롭게 하는 사악한 술책에 초점이 있습니다. 30절은 이 세 가지 묘사에 대한 결론 혹은 주석입니다. 특히, 30절은 29절과 쌍을 이룹니다. 30절은 29절의 ‘강포한 사람’의 임무수행 모습을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은 서로 눈짓을 하여 희생자를 고르고, 피해자 배후에서 굳게 입을 다물어 음흉한 결의를 다집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얼굴과 목소리 등을 통해 표출된 그들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워야 미리 대처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과 삶의 경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얼마 전 부산사상경찰서 이 경장은 택시 운전사로부터 2000만원이 든 손가방을 수탁받았습니다. 분실물을 찾아 주려고 콜 택시 이용내역을 분석한 뒤, A씨에게 연락하였습니다. A씨는 그 돈이 할머니 수술비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반환절차상 통장내역 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에 A씨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자, 보이스피싱임을 직감하였습니다. 이 경사는 즉시 현금 묶음에 날인된 인출은행이 소재한 울산 북부경찰서에 연락하였습니다. 이미 보이스피싱 피해신고가 접수되었으며, 고성경찰서에서는A씨를 보이스피싱 전달책으로 수배 중이었습니다. 이 경사는 A씨에게 경찰서 방문을 안내하고, 돈을 찾으러 오자 바로 검거하였습니다. 현금 2,000만원의 원래 주인은 울산에 거주하는 B(50)씨로, 저금리 안내에 속아 A씨를 직접 만나 현금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순진한 마음만 가지고는 생존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잠언16:31절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16:31-17:6은 한 단락을 이룹니다. 시작은 공의로운 길을 인내하면서 간 결과 얻어지는 영화의 면류관이 백발이라는 선언입니다(16:31). 이를 위해 걸어가야만 하는 공의로운 길 7가지를 나열합니다(16:32-17:5). 마지막은 그렇게 걸어간 결과 그들이 늙었을 때 얻게 될 손자 손녀들이 영광의 면류관임을 밝힙니다(17:6). 잠언은 제자들로 하여금 노인의 권위를 존중하고,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아름다움, 품위, 그리고 권위를 획득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런 미덕이 없이 머리만 백발인 사람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본 구절에서 언급된 ‘영화의 면류관’이 그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31절은 중요하고 본질적인 진리를 가르치나, 모든 진리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때때로 의인이 일찍 죽습니다.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유대인들의 불신의 죄악을 지적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것과 같습니다(행7장). 또 노인이 되면 육체와 마음이 약해집니다(전12:1-8). 더구나 현대 사회에서는 심지어는 비도덕적인 기술을 통해 건강한 노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백발이 미덕과는 관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백발이 영화의 면류관이고 공의로운 길을 걸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건강하게 90세에 이른 사람은 모두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이다”는 말은 곰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건강하게 90세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32절에서 답을 줍니다: ‘인내’입니다. 즉 백발과 인내는 암묵적 관계가 있으며, 전자는 후자를 통해 얻어집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잠16:32,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