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78: 42절
“그들이 그의 권능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이 시편은 과거의 경험 속에 있는 교훈을 분명히 밝혀내어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등불로 삼고자 하고 있습니다. 적들의 위협(9-11)이나 자연의 위험(40-42)을 포함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그들을 구속하셨고, 향후에도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실 것’을 믿었어야만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분의 진노를 두려워 하면서 동시에 그분의 사랑을 자각할 줄 알아야만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같습니다. 그런 자각 능력은 우리를 구속하셨고, 공급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에 대하여 늘 기억을 새롭게 할 때 비로서 나옵니다. 여기서 ‘구속’(12-14,43-53)은 주님이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구출하셔서 자유를 주신 것을 말합니다. ‘공급’(15-16,54-55)은 모든 상황에서 주님이 공급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급 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심판’(17-33, 56-64)은 그분을 아버지로서 알고 있는 자들이 경건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사랑’(34-39, 65-72)은 우리가 그분에게 돌아갈 때,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을 내포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언제나 우리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삶의 비밀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에 있는데, 그것들은 기억에 의하여 촉진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1:1,2)
시편79:5절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영원히 노여워하시렵니까? 언제까지 주님의 진노하심이 불길처럼 타오를 것입니까?”(새번역)
이 시의 배경은 유다 왕국과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되고, 모든 유대 지도층들이 바벨론으로 잡혀 간 비시 586년 이후로 추정됩니다. 패전국 유다의 현실은 참혹하였습니다(1-4). 여기에 더하여 신앙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우상을 섬기는 이방 백성들을 향해야 마땅하나,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심판의 대상이어야 할 이방인들이 ‘야곱’을 삼켰습니다(7). 그들은 ‘도대체 이스라엘이 믿는 야훼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라고 비웃고 있었습니다(10). 시인은 그 때문에 더욱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 자리에 주저 앉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영원한 언약,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레26:12),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13). 이것은 현재가 유복해서도 아니요, 미래가 예측되서도 아닙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될 수 없는 영원한 약속에 근거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시인은 그 하나님께 먼저 조상들의 죄(8)와 당대의 죄(9)를 회개합니다. 또한 시인은 주님의 성품과 영광에 근거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 현실을 바로 잡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우리 역시 나의 죄나 부족함을 인정하고 긍휼을 구할 수도 있지만, 주님의 영광과 성품을 내세우고 상황을 바로잡아 달라는 간구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을 때 이렇게 드린 히스기야 왕의 기도는 응답되어 하루 밤에 185,000명의 앗시리아 군사가 죽었습니다. 소망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시편79:13).
잠언 16:26절
“고되게 일하는 자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특히 생존의 욕구-을 충족시키기고자 열심히 일합니다. 잠언26절이 관찰하는 바 입니다. 후단의 ‘입’은 전단의 ‘식욕’과 함께 생각할 때 입의 기능 중 말이 아니라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먹는다’는 어구는 생존 욕구 충족이라는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조직체, 특히 회사의 경우, 이윤 극대화는 노동자의 복지보다 중요합니다. 임금 노동자는 자산이 없습니다. 따라서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본가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적은 급여를 제공하여 일을 시키고자 합니다. 이 잠언이 악한 목적을 위해 쉽게 뒤틀어질 수 있는 좋은 예입니다. 칼 막스는 ‘자본론’에서 이것을 대전제로 삼아 노동자의 정당한 대가를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멸망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물론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고 공정한 경쟁과 노동자 복지를 위해 국가적 노력을 경주하여, 파국을 막고 오히려 번영하고 있습니다. ‘중대 재해 처벌법’ 제정의 근거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이런 ‘식욕’도 이겨내고 일을 하지 않습니다. 막스가 주장한 공산주의가 빠진 함정으로, 모든 공산주의 국가가 100년도 안되어 멸망한 이유입니다. 중국은 정치체제만 공산주의고 경제는 자본주의입니다. 운영철학이 틀린 하이브리드 국가입니다. 많은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 잠언을 전도서와 함께 읽으면 생존을 위한 노동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노동이 궁극적으로 허무함을 깨닫게 됩니다(전1:3). 이것은 특히 하나님을 떠난 인류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사람이 먹으려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지만, 그 식욕을 채울 길은 없다.” (전6:7,새번역).
잠언16:27절
“불량한 사람은 악을 꾀한다. 그들의 말은 맹렬한 불과 같다.”(새번역)
사람은 됨됨이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27-29절은 ‘이쉬-사람’로 시작하여 ‘사람’을 강조합니다. 그 중 27절은 불량한 사람에 초점을 맞춥니다. ‘불량한’의 원어는 ‘벨리얄’로서 ‘가치 없다(worthless)’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불만이 많아 사회 질서를 뒤집어 엎으려고 합니다. 그들의 특징은 악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악은 선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선동가들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작은 불만이라도 놓치지 않고 증폭시킵니다. 듣는 사람들은 그 마음에 불 같은 분노가 솟아올라옵니다. 그 결과 무질서한 행동이 나오게 되고, 약탈 방화와 같은 집단적 파괴행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심판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롬12:19).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폭력을 써서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참거나 사랑으로 감싸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선동되지 않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선동가들이 있지만 최악의 선동가는 마귀입니다. 마귀의 원어는 ‘디아볼로’입니다. ‘디아’는 ‘사이에’를, ‘볼로’는 ‘던지다’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마귀란 ‘사이에 던져 서로를 이간질 시키는 존재’입니다. 마귀는 천사 1/3을 선동하여 하나님께 반역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 와서 작은 불만을 발판으로 하여 분노하게 만듭니다. 마귀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사람을 지배하여 자기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고독한 사람들은 마귀의 전략에 걸려들기 쉽습니다. 이단에 빠지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바로 그 좋은 예입니다. 성도들의 교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6,27)
잠언16:28절
“못돼먹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수다쟁이는 친한 친구를 갈라 놓는다.”(현대인의성경)
‘못돼먹은’ 혹은 ‘패역한(perverse)’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와 사회적 질서를 뒤집으려는 자를 말합니다. 그의 못돼먹은 행동은 마음에 근원이 있고 말과 눈짓은 그 표현입니다. 그는 다툼을 일으킵니다. 이 진리는 잠언6:14절, “그 비뚤어진 마음으로 항상 악을 꾀하며, 싸움만 부추긴다”에서 거듭 언급됩니다. ‘악한 자는 정의를 위협한다’는 의역이 가능합니다(시리아역). 후단의 ‘수다쟁이’의 동사형은 ‘흠을 찾는다’ 혹은 ‘불평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사야는 이 단어를 사용하여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는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였습니다(사29:24). ‘수다쟁이’가 하는 말들은 악의적인 험담으로 그것을 듣는 자들은 왜곡된 상황 인식을 갖게 마련입니다. 결과는 대단히 파괴적이어서, 가장 친밀한 관계조차 갈라지게 만듭니다. 모세가 10계명의 두 돌판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가자,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 산 속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예배하였습니다. 이 백성들은 며칠 전에 ‘우상숭배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듣고 맹약한 자들입니다. 홍해의 기적, 만나와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의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악한 자들을 이용하여 마귀는 백성들에게 못돼먹은 생각을 집어 넣었습니다(출32:1). 결과는 참혹하였습니다. 모세는 내려와서 우상숭배에 가담한 3천명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전세계에 흩어질 전조였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는 믿음은 마음이 할례 받은 증거입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