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78:1절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시편 78편은 총 72절에 이르는 긴 시입니다. 수 일에 걸쳐 메시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12절(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과 68절(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을 볼 때 이 시의 제목으로 ‘소안에서 시온까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출애굽부터 다윗 왕의 통치까지 이스라엘의 격동기를 되새겨 보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마지막 노래(신32장)처럼, 이 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만 하는 그 ‘신앙 양심’을 살피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기억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과 기적들의 이야기이며, 또한 심판 가운데서도 은혜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선택된 도시와 왕을 통해 그 은혜의 징표들을 보여주셨습니다(68-72). 이 시를 읽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역사가 반복되었다는 것과 마침내 주님이 선택하신 지파-유대지파(68)-가 선택된 도시 예루살렘에서 주님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한 약속을 지키신 것은 물론, 그 이상을 행하심으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갈4:26)인 시온 산(영원한 부활의 나라)을 세우셨음을 압니다. 이 시는 다윗 왕을 언급한 뒤 돌연 끝나지만, 그 목적은 다음 세대가 그것을 완성하고 그로부터 배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신약의 이야기 역시 같습니다. 복음서에서 시작된 우리 주님의 이야기는 사도들의 전파로 이어지고 로마의 한 셋집(행28:30,31)에서 돌연 끝나버림으로, 다음 세대인 우리가 신실하게 그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어, 우리는 그들처럼 악한 일을 즐겨하지 말라는 경고가 됩니다.”(고전10:6,쉬운성경).
시편78:6절
“미래에 태어날 자손에게도 대대로 일러주어, 그들도 그들의 자손에게 대대손손 전하게 하셨다.” (새번역)
72절이나 되는 이 시편은 도입부분(1-8)에서 목적을 밝힙니다 : 각 세대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5-6) 다음 세대로 신앙 유산을 흘려보내라. 그것은 각 세대의 거룩한 의무이다. 시편 기자 역시 전 세대로부터 전해 받았습니다(3-4). 전할 내용은 주님의 행적(4)과 말씀(5) 두 가지입니다. 출애굽 시 행하신 10가지 기적과 홍해를 가르신 구원의 행적들은 구속자로 당신을 계시하시고,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직접 선포하시고, 두 돌판에 기록하신 것은 좋은 예입니다. 전달해야 할 목표는 오는 세대들이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7), 그분의 행적과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여서 과거의 잘못들 – 신실하지 못한 삶- 을 피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8).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과거에 대한 참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참된 이해를 위해서는 ‘가르침(율법)’과 ‘지난 날의 역사’가 요구됩니다. 가르침(교훈)은 당연히 문학적 기교를 통해 전달됩니다. 잠언, 시편, 욥기 등이 그렇습니다. 에스더는 뛰어난 문학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반을 둔 우리 믿음은 ‘문학, 역사, 철학’에 기반을 둔 인문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인문학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신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은 신앙이 과학까지 그 대화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세상의 모든 실체보다 더 확실한 보이지 않는 실체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과학과 인문학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히11:1,2).
잠언16:23절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이 잠언은 사려깊은 자에게 생명샘이 되는 가르침(22)은 지혜자의 마음에서 발원됨을 강조합니다. 이는 우리가 잠언의 교훈을 받아들여 ‘지혜자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도전적인 상황에 처할 때마다 우리 입술에 올바른 가르침들을 끊임없이 둘 것입니다. 올바른 가르침은 설득력 있게 말하는 지혜자의 입술을 통해, 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가게할 것입다. 그런 지혜자를 가진 공동체나 사회는 복이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선진국에 진입하였습니다. 그러나 빈부의 격차가 OECD에서 4번째로 심하고,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은 탑의 위치에 있습니다. 국민소득은 높으나 행복 지수는 밑바닥입니다. 정부는 고성장의 시대에서 저성장의 시대로 진입한 것을 인지하여, 성장과 분배라는 문제를 사회 전체적 관점에서 논의하여야 합니다.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는 상당한 진통과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적 과정은 푸틴이나 시진핑과 같은 권위적인 정치가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사회와는 전혀 다른 열매를 맺습니다. 타협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기 마련인데, 인간의 본성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지혜의 샘인 그리스도의 모범과 가르침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이미 우리를 섬기신 그리스도로부터 자기부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루게 하실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 가운데 와 계십니다. 성령님과 보조를 맞추어 살 때 우리 사회에 화평의 열매가 맺어지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잠언16:24절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고, 쑤시는 뼈를 낫게 하여 준다.”(새번역)
선하면서도 지혜롭게 말하는 사람이 되라는 주제의 결론으로 24절이 기록되었습니다. 선하고 지혜로운 말은 즐거움을 주며, 엄청난 치료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본 잠언은 이를 꿀송이에 비유합니다. ‘선한 말’은 ‘친절한, 은혜로운 말’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고, 이 ‘은혜로운 말’은 ‘악한 생각들’과 대조될 경우 그 의미가 분명합니다: “악한 사람의 꾀는 주님께서 역겨워하시지만, 친절한 사람의 말은 정결한 제물처럼 받으신다. (15:26,새번역). 여기서 ‘선한 말’에는 순결하며, 아름다움의 요소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꿀송이’의 히브리 원어는 ‘넘쳐흐르는 꿀덩어리’를 말합니다. 그렇게 비유한 것은 꿀만이 유일하게 달콤하기도 하며 치료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24절후단). ‘마음에 달콤하다’는 뜻은 그 말을 듣는 자들을 기쁘게 하고 또 매력적임을 표시합니다. 또한, ‘낫게 하여 준다’는 표현은, ‘선한 말’의 치유능력을 알려줍니다. 선한 말은 어리석은 자가 쏟아내는 말로 상처입은 마음을 치료합니다. 약은 입에 쓰며, 달콤한 것은 약이 아니나 ‘뼈’로 표현된 전 인격을 회복 시키기 위해서는, ‘선한 말’이 두 요소를 모두 갖추어야만 합니다. 이는 조언자의 말이 듣는 자를 거북하게 만든다면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꿀을 너무 많이 먹으면 사람을 병들게 하지만(25:16), 선한 말은 아무리 들어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본 잠언이 ‘선한 말’을 꿀송이에 비유한 한계를 깨달아야만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잠언16:25절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6:16-30절의 주제는 ‘선한 말과 나쁜 말’의 교훈입니다. 지금까지 선한 말(20-24)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25절부터는 ‘나쁜 말’(25-30)에 대한 교훈이 시작됩니다. 25절은 야누스적 구절로, ‘선한 말’의 주제를 이어가면서, 파괴적인 언어 사용의 주제로 넘어가도록 다리 역할을 합니다. 그 내용은 네 자신만의 의견을 고집하지 말고 어디까지나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행할 것을 권면합니다. 같은 교훈이 이미 14:12절에서 언급되었습니다. 거기서는 여행길에 나서는 사람이 여정을 살펴보는 것과 같이, 자신의 생활방식이 초래할 결과를 생각해 볼 것을 교훈합니다. 요사이 모든 운전자는 네비게이션의 인도를 받아 목적지로 갑니다. 네비게이션이 보여주는 경로로 가다가는 골목길로 다녀야 할 경우도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더 늦게, 불편하게 가게됩니다. 그래서 미리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경험, 철학, 그리고 신념으로 만든 네비게이션은 자신이 보기에는 바르지만, 잘못된 경로와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사망으로 귀결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최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이는 특히 교만한 사람에게 적절한 교훈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판단이 바르다고 여기나 거기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숨겨있을 여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교만에 속게 되는 것입니다. 본 잠언은 이 교훈을 언어 사용에 적용합니다. 다른 이를 대할 때는 늘 섬기는 마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경우에 맞는 ‘선한 말’을 하여야지 ‘나쁜 말’로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16:18).